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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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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댓글 0건 조회 2,357회 작성일 24-04-07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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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19:1-8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갈멜산에서 450명의 바알선지자들을 죽인 엘리야는 이제 무서울 것이 없어야 정상입니다.

많은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의 불이 임하여 제물과 열두 동이의 물을 태우는 기적을 일으켰으니 엘리야는 거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합왕의 왕비 이세벨의 한 마디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3절에 항상 자신과 동행하던 사환마저도 헤어지고 혼자 광야를 떠돌았습니다.

갑작스런 엘리야의 이상 행동을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많은 부분에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없는 부분을 인간의 상상과 추측으로 채워넣어야 하기 때문에 성경이 어려운 책입니다.

자기 마음대로 상상과 추측을 끼워넣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을 통해 성경 본문의 문화적 역사적인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또한 성경 본문의 장소를 지리적 생태학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성경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 구절들과 비교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성경해석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갑작스런 엘리야의 이상 행동도 성경해석을 통해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친 페니키아 정책의 영향으로 이세벨 왕비를 맞아들이고 본격적인 우상숭배와 동시에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탄압하는 시대적 상황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7-18 장에 걸쳐서 여러번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체포하고 죽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이 질문을 해결할 단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의 상황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위기와 절망의 시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았던 동료 선지자들이 이세벨에게 잡혀 죽는 것을 수없이 목격한 엘리야이기에 이세벨의 협박이 단순한 공갈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4절에 광야로 도망친 엘리야는 급기야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공포의 아이콘 이세벨 때문에 겁에 질려 삶을 포기한 엘리야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옵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이세벨과 같이 무력을 동원한 직접적인 종교탄압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2024년의 한국교회는 '위기와 절망의 시대'라고 부르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대적 상황은 이세벨이 주도하는 바알숭배가 만연했던 때였습니다.

바알은 돈의 신입니다.

바알 숭배로 인해 돈이 신이 되고 절대적인 가치가 되어 그 보다 더 숭고한 정신적인 가치들, 사랑, 의리, 도덕, 믿음, 긍휼같은 것들이 철저히 버려지는 시대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남유다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가족은 무너지고 신의는 사라지고 돈과 쾌락이 전부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놀라우리만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과 너무나 정확히 겹쳐보이는 것은 저만의 느낌이 아닐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은 것이 정상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정상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들은 주식으로 부동산으로 떼돈 벌었다고하지만 정작 떼돈 번 사람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열의 아홉은 빚만 잔뜩지게 되었습니다.

주식과 부동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홉사람 돈으로 한 사람에게 몰아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이 쉽지 성실하게 일해서 돈 버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육신적으로 고통스럽고 정신적으로도 상처를 받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마음 속에는 광야 한 가운데서 지쳐 쓰러져있는 엘리야를 품고 있습니다. 

다 포기하고 죽어가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떡과 물을 주어 먹고 마시게하자 엘리야는 무려 40일에 걸쳐 하나님의 산 호렙에 도착하게 됩니다.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천사가 가져다 준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음식물은 엘리야 뿐만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합니다.

한 번 먹고 소화되는 음식물로는 사십주야 행군을 버틸 수 없습니다.

위로 부터 오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말씀하신 그 음식이 위로부터 오는 음식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사십 주야를 걸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다른 음식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바람과 지진과 불에서 하나님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바람도 보통 바람이 아니었습니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술 정도의 강한 폭풍이었습니다.

지진은 한 구석에서만 발생해도 재해문자를 통해 거의 실시간 전국에 통보됩니다.

불이 나는데 그냥 지나갈 사람 없습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은 도저히 그냥 무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자연 현상입니다.

우리는 현상만 보고 현상에만 집착하다보디 오히려 본질을 놓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온 신경을 다 쓰지만 결국 핵심을 놓치고 맙니다.

자연현상이야 그렇다치고 정작 별 상관도 없는 각종 뉴스와 화제로 가득한 스마트폰 유튜브에 온 관심을 기울입니다.

최신 뉴스 최신 정보 모르면 큰 일이라도 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일이 있습니다.

바로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입니다.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들릴 듯 말듯 어디선가 '엘리야야, 엘리야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세밀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처럼 확실하게 불러주시면 좋겠지만 들릴 듯 말듯 세밀하게 부르십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강제로 억지로 귀에 대고 소리지르지 않으십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려는 우리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분주한 일상에서 잠시 멈추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아람의 하사엘을 통해 아합과 이세벨 정권을 압박하셨습니다.

그리고 예후를 통해 아합 정권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권을 세우게 하셨습니다.

또 다른 위대한 선지자 엘리사를 세워 나라를 구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외교, 정치, 종교 분야에서 계획하시고 이미 일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세벨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일 때 잠잠하시던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엘리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게되자 지금도 일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당시 북이스라엘 인구는 추정컨대 군대에 동원 가능한 남자만 최소 50만명에서 80만명이었습니다.

전체 인구로 환산하자면 최소 200만명입니다.

200만명 중에서 7,000 명이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사람이라면 경쟁률이 대략 285:1 입니다.

우리나라 인구 5천만 기준으로 175,000 명에 해당합니다.

물론 7,000 명을 문자적인 의미로 국한하지 않아도 매우 소수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인구가 천만명이라는데 그 중 175,000 명만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았다면 이는 매우 비극적인 일입니다.

나머지 982만 오천명이라는 숫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할지 괴롭습니다.

더 가슴아픈 사실은 982만 오천명의 대부분 자신이 바알에게 무릎꿇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돈을 더 벌까, 어디다 투자할까, 주식과 부동산과 코인 등에 시간과 관심을 빼앗기는 것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982만명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지극히 정상적인 크리스천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하나님께 받은 영혼 구원의 사명은 소홀히 한다면 백프로 바알숭배자입니다.

바알 숭배를 멈추라고 해서 직장과 사업에 소홀히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당한 경제활동과 정직한 노동은 인간의 기본 자격이며 조건입니다.

그러나 과도한 욕심에 사로잡히면 행복의 수단이어야 할 돈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버리고 우리는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주식, 부동산, 선물, 코인 등등 손 안대고 코 푸는 쉽게 버는 돈으로 보이지만 매일 매순간 모든 관심과 시간을 할애해야하는 진정한 중노동입니다.

분주함과 과욕은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가로막는 장애물로서 바람과 지진과 불보다 더 강력합니다.

멈출 용기가 없다면 다 잃어도 충격받지 않을 용기가 없다면 모험성 원금손실형 투자는 멀리해야 합니다.

돈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안 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은 안들으면 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존재이므로 살아가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천사가 준 음식물의 힘에 의지하여 엘리야는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음식은 세상의 썩어질 음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마음과 집중력으로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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