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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렙의 성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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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1-05-23 07:49 조회 8,77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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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13:25-33
"사십 일 동안 땅을 정탐하기를 마치고 돌아와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러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나아와 그들에게 보고하고 그 땅의 과일을 보이고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부터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기회를 무참히 발로 차버렸습니다.

이집트 바로에게 열번의 기회를 주셨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언급된 것만 8번 용서해주셨습니다.

오늘 바란 광야에서 가나안 땅 정탐꾼들을 보내게 하셨으며 그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기회를 또 발로 차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모든 일을 다 아시고 계획하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이집트 바로가 끝까지 반성하지 않을 것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끝까지 원망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열 두명의 정탐꾼들이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모두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부정적인 소식을 전할 것임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해봤자 소용없는 일을 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실패할 것이 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었을까요?

출애굽기서에서부터 이미 익숙해진 주제에 답이 있습니다.

14:34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에 대해서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실패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어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 뿐아니라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실패할 것이 뻔한 기회를 계속 주신 것입니다.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과 항상 실패하는 이스라엘의 구도 그 자체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나타내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전체 줄거리는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과 실패하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신약의 줄거리는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성공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존재이며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알게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구약성경을 읽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나 한심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 자신이 너무나 똑같아서 소름이 돋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늘날의 대한민국 국민들과 아니 나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1. 나는 어떤 존재인가?

1) 두려움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을 메뚜기로 여겼습니다.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메뚜기는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밑바닦에 위치하여 풀을 뜯어먹고 다른 곤충이나 동물들의 먹이가 됩니다.

현재 우리가 보는 자신의 자화상이 대부분 메뚜기에 해당합니다.

세상은 너무나 살벌합니다.

인간의 목숨이 소중하다고하지만 너무나 허무하게 사라지는 소식은 끊임이 없습니다.

약한 사람들 앞에서는 큰 소리치지만 조금 더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메뚜기일 뿐입니다.

메뚜기는 조금의 인기척에도 깜짝놀라 반응하며 도망칩니다.

두려움에 반응하는 것이 메뚜기의 생존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는 우리에게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것입니다.

건강을 잃을까 두렵고, 직장을 잃을까 두렵고, 사업이 망할까 두렵고, 가족을 잃을까 두렵고, 신망을 잃을까 두렵습니다.

안되면 안되서 두렵고 잘되면 잘되서 두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세상이 갈 수록 흉흉해져서 두려움은 더욱 커져갑니다.

그 만큼 두려움은 우리에게 익숙한 감정입니다.

남을 미워하거나, 시기하거나, 탐심이나 음란한 생각들은 우리의 양심을 거스릅니다.

그러나 두려움 만큼은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없이 드는 당연한 나만의 감정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언제부터 인간 본능의 구심점이 되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창세기 3: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두려움은 원래 인간의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어 하나님과 분리된 순간 인간은 그 즉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두려움이 나의 주인이나 친구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두렵긴 하지만 두려움과 싸워야 합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과 우리가 분리된 순간 끼어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심각하게 여기고 맞서 싸웁시다.


2) 두려움을 방치하면 악이 된다.

두려움을 가만히 내버려두면 어느 순간 강력한 악이됩니다.

14:1-5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두려움과 악은 뗄레야 뗄 수 없는 한 덩이입니다.

1923년 일본의 관동에 규모 6 이상의 지진이 이틀에 걸쳐 발생하여 14만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복구에 전념해야 할 일본은 놀랍게도 난데없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탓다며 집단적인 학살극을 벌였습니다.

지진과 조선인들과 무슨 관련이 있겠습니까?

2011년 후쿠시마 동일본 대지진 때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습니다.

15,899명이 사망하고 2527명이 실종되었고 228,863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NHK에 따르면 대피소에서 여성들이 무차별 성폭행을 당했으며 피해 여성의 40%는 10-20대였습니다.

두려움은 이렇게 사람을 죽이고 폭행하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래도 두려움을 가만히 내버려 두시겠습니까?

두려움은 악의 씨앗입니다.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합니다.


3) 두려움을 방치하면 고집이 된다.

14:41-45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산 꼭대기로 올라가며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가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곳으로 올라가리니 우리가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모세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여호와의 명령을 범하느냐 이 일이 형통하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 중에 계시지 아니하니 올라가지 말라 너희의 대적 앞에서 패할까 하노라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그들이 그래도 산 꼭대기로 올라갔고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영을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아말렉인과 산간지대에 거주하는 가나안인이 내려와 그들을 무찌르고 호르마까지 이르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두려움과 악에 대한 벌로써 40년 광야 유배를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늦게서야 가나안 땅을 차지하겠다고 공격에 나섰습니다.

이는 여지껏 저질러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들 중 가장 악질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차지하라고 허락하셨을 때는 두려워서 통곡하더니 허락하지 않으시니 이제는 차지하겠다고 나서는 미련한 고집이야말로 인간의 추악한 밑바닦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결과는 말 할것도 없이 당연히 패하였으며 이로인해 그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질 뿐이었습니다.

더욱 커진 두려움은 더욱 큰 악과 더욱 강한 고집을 낳는 악순환을 가속시킵니다.


4) 마음이 다른 이유

14:22-24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우리 인간은 두려움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는 실패하고 맙니다.

갈렙은 무엇이 대다수 실패자들과 달랐는가 알아봐야 합니다.

본문은 갈렙의 마음이 달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감정이나 기분이 아닙니다.

24절의 '마음'은 히브리어 원어로는 '영' '바람' '호흡' 에 해당합니다.

'하나님의 영' 이라는 표현에 쓰이는 단어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 성령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셔야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는 갈렙의 마음을 갖게됩니다.

우리 인생의 최대 선물은 '성령님'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심으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임하셨습니다.

성령님 없는 우리는 나이가 많을 수록, 경험이 많을 수록, 지식이 많을 수록, 두려움과 악과 고집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믿음이 없어 원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 중 이십세 이상은 여호수아와 갈렙 빼고 한 명도 가나안 약속의 땅을 밟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함으로 성령님께서 나를 주장하시고 내 마음에 충만하시를 원합니다.

갈렙의 마음, 성령 충만은 두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게 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로 시작하며 다른 마음, 성령님의 마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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