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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바라 볼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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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6-02-15 06:33 조회 22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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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1-2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예루살렘에 성벽이 완공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일반적인 건축 구조물의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이방세롁들과의 물리적인 격리가 가능해집니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의 약탈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이집트와 유럽을 잇는 왕의 대로의 중앙에 위치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세워지면 성문을 통과할 때마다 통행세와 출입관세가 발생할 것이며 이는 오롯이 예루살렘의 몫이 됩니다.

또한 예루살렘 주변의 여러 이방 세력들의 교류가 막혀 서로 힘을 합치지 못하고 이들의 연합은 흩어지게 됩니다.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세력은 무조건 예루살렘 성벽 완공을 저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핵심 전략은 성벽 건축의 핵심 인물인 느헤미야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협력을 가장하며 서로 만나기를 제시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속셈은 예루살렘 바깥에서 느혜미야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계략을 알고 있는 느헤미야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그들은 느헤미야에게 인적 물적 보조를 제시하며 느헤미야를 유인했습니다.

마귀 사단은 결단코 순수하게 우리를 돕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자의 재물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지 않습니다.

일확천금을 약속하는 도박성 투자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불로소득을 약속하는 여러 감언이설들에 조금도 힌트를 주지 말고 휘둘리지 않도록 명심합시다.

회유가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거짓소문을 퍼뜨렸습니다.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편지가 봉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느헤미야의 주변인들에게도 노출되어 부정적인 영향을 퍼뜨리려는 산발랏의 꼼수입니다.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려한다는 헛소문으로 누명을 씌우려 했습니다.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만약 느헤미야가 놀라서 산발랏에게 구구절절 자신의 무고함을 해명하려 했다면 오히려 왜곡과 위조의 빌미를 제공하고 사안의 공론화를 야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짧은 말로 헛소문을 일축하였습니다.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악의적인 헛소문은 누명을 씌워 유죄 판결을 얻어내는 것보다 그 대상을 두렵게하려는 목적이 더 큽니다.

그러니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도 안되는 헛소문을 일단 퍼뜨리고 보는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과 SNS 로 이러한 가짜 뉴스의 파급력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구구절절히 해명함으로 그들과 엮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 대신 짧고 굵게 부정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가짜뉴스도 안통하자 이번에는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의 흠집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스마야 선지자는 느헤미야가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두문불출한 스마야를 찾아 집까지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 두 사람의 돈독한 사이를 말해줌과 동시에 아픈 척하여 느헤미야의 판단력을 흐리게하려는 스마야의 용의주도함을 보여줍니다.

그런 스마야 선지자가 산발랏의 돈에 매수되어 하나님의 성소로 도망가자며 느헤미야를 겁박하였습니다.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오직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성소에 제 목숨 살자고 일반인인 느헤미야가 들어간다면 이는 율법 상 심각한 범죄에 해당합니다.

느헤미야는 탄탄한 말씀공부를 바탕으로한 해박한 율법 지식으로 스마야 선지자의 거짓말을 간파해 냈습니다.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산발랏과 도비야는 종교계까지 동원하여 느헤미야의 흠집내려하였습니다.

그들이 매수한 선지자는 스마야 한 명뿐이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을 동원하였습니다.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종교계 뿐만 아니라 정치계 전반에도 산발랏과 도비야의 매수가 심어져 있었습니다.

17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

산발랏의 수하인 도비야와 유다 귀족들이 편지로 서로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암몬 사람 도비야는 결혼을 통해 유다 귀족들을 자기 편으로 엮었습니다.

에스라 9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이방여인들과의 혼인을 금지하였지만 얼마 안가 유다 귀족들은 다시 도비야와 사돈을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나라와 민족의 주권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킬 수 있다면 이방세력과 주저없이 야합하는 권력 중독 증상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유다 귀족들은 느헤미야에게 도비야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는 심리적 접근을 시도하는 교묘함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도비야에게 보고하여 느헤미야에게 압박을 가하도록 조직적으로 도운 것도 유다 귀족들이었습니다.

국권을 침탈당하고 36년의 식민지배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도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조직적인 매국행위가 있었기에 본문의 사건들이 낮설지가 않습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일사분란하게 연합하여 느헤미야를 죽이는데 혈안이 되게하였을까 본문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이들에게는 공통된 한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산발랏과 선지자들과 유다귀족들의 공통된 목적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두렵게 하는 것입니다.

두렵게 하는 것이 뭐가 대수라고 이렇게 한마음 한통속으로 발악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에게 마음을 강하게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해봤자 소용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솔직히 2026년 구정설을 맞이하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지만 동시에 두려운 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트럼프 푸틴으로 상징되는 힘의 논리의 시대 그리고 예측불가능한 AI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두려움은 당연한 것입니다.

누구나 다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우리를 지배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산발랏 일당이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했지만 뜻대로 안되자 느헤미야를 두렵게 함으로 느헤미야가 스스로 무너지게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느헤미야도 두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는 산발랏 일당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려던 산발랏 일당들이 성벽이 완공되자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고 했습니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본문은 그들의 눈을 잃어버렸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어 성경은 그들이 자신감을 잃어버렸다고 번역했지만 구약성경 다른 곳에서 이렇게 번역한 경우가 없기에 약간 무리한 의역입니다.

저는 히브리 본문대로 '그들의 눈을 잃어버렸다' 가 적절한 은유를 살리는 번역인 것 같습니다.

물론 눈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실제 그들이 시력을 상실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 앞에 그들의 희망을 잃었고 바라 볼 미래를 잃었기에 눈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를 통해 우리는 귀한 교훈을 얻습니다. 

바로 두려움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느헤미야도 우리처럼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사람에게서 위안을 찾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의 대적들과 산발랏 일당들에게 똑같은 방법으로 대응하거나 응징하지 않았습니다.

9절과 14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두려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성벽준공이라는 하나님의 사명만 바라보고 묵묵히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자 느헤미야의 대적들이 일시에 그들의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바꿔말하면 우리는 아무리 두려워도 절대로 우리의 눈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두렵더라도 희망을 놓치 말고 하나님의 사명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를 두렵게하는 세상을 비난하거나 맞대응하지 말고 그들에게 눈길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묵묵히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으로 우리를 두렵게하는 모든 대적들의 눈을 일시에 잃게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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