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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세종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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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5-11-16 02:37 조회 24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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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7:1-5
1  이 일 후에 바사 왕 아닥사스다가 왕위에 있을 때에 에스라라 하는 자가 있으니라 그는 스라야의 아들이요 아사랴의 손자요 힐기야의 증손이요
2  살룸의 현손이요 사독의 오대 손이요 아히둡의 육대 손이요
3  아마랴의 칠대 손이요 아사랴의 팔대 손이요 므라욧의 구대 손이요
4  스라히야의 십대 손이요 웃시엘의 십일대 손이요 북기의 십이대 손이요
5  아비수아의 십삼대 손이요 비느하스의 십사대 손이요 엘르아살의 십오대 손이요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 손이라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한국 사람은 대부분 글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문화강국이 되어 작지만 세계를 호령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에스라가 이스라엘의 세종대왕 같은 인물입니다.

1-5절은 에스라의 출신 성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에스라는 사독 계열의 제사장 가문출신입니다.

6  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올라왔으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음으로 왕에게 구하는 것은 다 받는 자이더니

에스라는 페르시아 서기관이었으며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에게 총애를 받았습니다.

7  아닥사스다 왕 제칠년에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과 느디님 사람들 중에 몇 사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올 때에
8  이 에스라가 올라왔으니 왕의 제칠년 다섯째 달이라

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은 남쪽의 이집트와 시리아의 반란을 억제하고자 믿을 만한 인재인 에스라를 완충지역인 이스라엘로 보내 팔레스타인 지역의 질서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에스라는 이것을 기회삼아 함께 이스라엘로 귀환하려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되니 이것이 제 2차 포로 귀환입니다.

1차 포로귀환 때 스룹바벨이 주도하였듯 2차 포로귀환은 에스라가 리더였습니다.

1차 포로귀환과는 80년의 차이가 있습니다.

2차 포로 귀환자들은 1차 포로귀환자들과는 접점이 없는 다른 세대인 것입니다.

80년 간 예루살렘에 살아왔던 1차 포로귀환자들과 그 기간 페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2차 포로귀환자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내야하는 막중한 임무가 에스라에게 주어졌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이제 귀환하여 예루살렘의 실정을 잘 모르는 에스라에게는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그에 걸맞은 권한이 있어야 했습니다.

에스라의 손에는 당대 최대 제국 페르시아 황제 아닥사스다가 쓴 조서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이전 장에서도 고레스 왕의 조서가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허가를 받고 건축비까지 지원받은 사실을 배웠습니다.

11-26절까지 아닥사스다 왕이 쓴 조서가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스라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예물을 제공하고 세금을 면제해주고 에스라에게 이스라엘의 치리권과 형벌권까지 위임하였음을 증명하는 조서였습니다.

에스라는 왕의 조서를 손에 들고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에스라를 따라 이스라엘로 향했던 사람들은 1775명이었습니다.

1차 포로귀환자 5만명에 비하면 비교조차 안되는 작은 수입니다.

이조차도 이방인인 느디님 사람들 220명을 포함한 것입니다.

그러나 1775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이들은 1차 포로귀환자들보다 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1차 포로귀환 후 80년이 흘렀습니다.

페르시아에서 낳고 자란 사람들입니다.

모국어인 히브리어도 생소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인 페르시아를 떠나 변방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물론 모두가 다 자발적으로 합류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8:15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레위자손은 성전을 관리하고 찬양을 담당하는 예배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 레위자손들이 정작 포로귀환 때 생소한 예루살렘에 가는 대신 안락하고 윤택한 페르시아에 머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8:16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8:17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에스라는 이스라엘 족장 대표들을 느디님 사람들에게 보내어 레위사람들을 찾아 설득해 달라고 했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닌 이방인으로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사람들을 도와 물과 장작을 나르는 허드렛일을 담당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이방인들도 예루살렘을 향하는데 모범을 보여야 할 레위사람들은 한 명도 귀환에 동참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에스라는 느디님 사람들을 레위 사람들에게 보내어 레위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마음을 고쳐먹게 하였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이 대단하게 보입니다.

어차피 이스라엘 사람도 아닙니다.

성전을 맡은 레위 사람들을 도와 허드렛일을 감당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 조차도 바벨론에 의해 포로로 끌려와 150여년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페르시아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대도 레위인들조차 안가려고 했던 예루살렘에 스스로 가고자 하였고 안가겠다던 레위인들을 설득하여 그들을 부끄럽게 하였습니다.

느디님 사람들의 충성은 한 가지 원인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바로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페르시아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여러모로 하나님을 믿기에 어려운 여건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였습니다.

구약 39권을 정리하여 한데 묶은 엄청난 일을 해냈습니다.

연구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 느디님 사람들까지도 에스라에게 제대로 배워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포로귀환에 동참한 것입니다.

1차 포로귀환 때 스룹바벨은 예루살렘 성전을 세웠습니다.

2차 포로귀환 때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구약 39권으로 확립하였습니다.

3차 포로귀환 때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습니다.

1차 때 예루살렘 성전과 3차 때 예루살렘 성벽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지만 에스라가 세웠던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까지도 단단히 세워져가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세로워진 예배당 공사가 마무리 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눈에 보이는 예배당이 아닌 영적인 성전이 우리 마음에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7:10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

예배당 공사가 마무리되는 것처럼 곧 구약성경 강해설교가 그 끝을 향하기를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워진 예배당처럼 우리의 속사람도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워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성전을 세워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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