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해 가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교회 작성일 08-02-20 00:48 조회 12,097 댓글 0본문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사도가 얼마나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살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의 경주는 결코 멈출 수 없었으니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갔다고 했습니다(13-14).
사람이 이와 같이 목표가 확신하고 목표를 향해 투신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일에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세상 생활이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만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자 입니다.
그런 사람은 승리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요, 그러기에 승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신앙문제는 내가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느냐?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음부에 떨어지느냐? 하는 영원한 결판문제를 앞두고 있는 경주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줏대 없이 흔들리면 믿는지? 안 믿는지?
신앙의 반거치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반거치리는 차라리 잘못 가다 실패한 사람보다 더 비참한 실패자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패한 사람은 깨닫고 변화될 수 있지만 반거치리는 그러한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분명히 살아야 합니다.
반거리치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하여 인생이나 신앙에 있어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인생을 똑바로 살고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에서 그 비결을 찾아봅시다.
1. 잊어버릴 것은 깨끗이 잊어 버려야 합니다
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고 했다.
잊어버린다는 말은 원어로 "에팔란다 노메노스" 인데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 앞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과거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보다 귀한 것을 위하여서는 사소한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에 더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자꾸만 지난날의 추억에 얽매여 머뭇거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다 시비하다 언제 천국 가실 것입니까?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만난 후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는 당시 대석학자 가브리엘 문화에서 학문의 최고 과정을 마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잊어 버렸습니다.
※과거의 귀족으로 떵떵거리며 살던 일, 율법주의자요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 자존심이 만만했던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의 슬프던 기억도, 쓰라렸던 아픔도 모두 잊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분명히 사는 사람들은 어제를 잊어버립니다.
특히 교회생활에서는 어제의 공을 앞세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의 공로, 어제의 봉사, 어제의 헌신, 희생 등을 잊지 못할 때 불만타령을 하며 오히려 교회의 문턱 노릇을 하거나 어렵살이 되어 가는 일도 묵은 암탉처럼 휘젖어 버리는 방해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제 출석했다고 눈치 보며 일을 못하는 기피꾼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어제 일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일찍 왔던 늦게 왔던 제대로 예수 쫓아가는 신자가 일등신자인줄 믿습니다.
※옛날 당나라에 송청이라고 하는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을 조제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에게 와서 약을 사먹고 병을 고친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송청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연말 하면 외상장부가 수십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약값을 독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외상 장부를 불태워 버렸고 두 번 다시 약값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대범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송청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40년동안 약장사를 하면서 수백 권의 외상장부를 태웠습니다.
그러나 크게 손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약값을 떼어먹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약값보다 훨씬 많은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그런 마음씨를 가졌기에 더 효험 있는 약을 조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막연히 살기보다 분명히 사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어제 일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쫓아가려면 바울사도와 같이 어제 일을 깡그리 잊어버려야 할 줄 믿습니다.
2. 앞에 있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기 앞에 있는 것을 잡는다는 말은 "카테이레 세나이"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사냥개가 짐승을 물고 죽을 때까지 놓지 않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버틴다는 의미입니다.
나무가지를 놓으면 죽습니다. 죽자 살자 붙잡고 매달려야 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고 죽어도 매달려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이신 조용기 장로님께서도 어느 청년에게 돈버는 방법도 돈을 그처럼 붙잡아야 된다고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캄캄한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밧줄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박쥐 떼에 놀라 밧줄을 놓아 버렸기에 10명이나 사망한 동굴탐험 기사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 어렵고 험한 세상, 앞이 안보이고 캄캄할수록 믿는 자는 예수 생명 줄 놓으면 파멸입니다.
결단코 믿음 줄 놓지 말고 붙잡으셔야 합니다. 인생을 기껏 살고 헛수고하면 안됩니다. 예수 생명 줄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4절에 어떻게 하였다고 했습니까?
3.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살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갔다고 선포했습니다. 쫓아간다는 헬라어도 "디오코"입니다.
σιοκο는 결승점을 앞에 둔 선수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가슴에 닿을 테이프만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목표물만 향하여 쫓아가려면 그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나는 공을 찰 때 공만 보았고 공을 차지 않을 때는 공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에게서는 물만 흘러나오듯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서는 건드릴수록 복음만 흘러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하여 내려 오다보니 "성령탕"이라고 적혀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설렁탕"을 잘못 보았더랍니다.
또 "생명수"라고 적혀 있어 자세히 보니 "생맥주"였다고 합니다.
또 예수로 충만한 사람이 길을 가다 "예수 에너지"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이상하여 가까이 가보니 "여수 에너지"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생각한데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항상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한대로 자연히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머슨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막연한 인생이 아니라 분명한 인생을 살고 싶으십니까?
♤목표를 성취하고 싶으십니까?
♤믿음의 승리를 거두고 싶으십니까?
♤예수 제대로 믿고 구원도 받고 세상살이도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바울사도처럼 예수로 푯대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쫓아가야 합니다. 잊어버립시다. 붙잡읍시다. 그리고 쫓아갑시다. 세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를 아마 모르시는 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50억 인구 중에서 달리기 1등을 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물론 제일 잘 달렸으니까 1등 했다고 생각하시면 간단하겠지요.
그러나 50억 인구 중에 일등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든지 달리다가 호수에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100리나 되는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좀 쉬고 싶은데 계속 운동을 시키는 코치를 죽이고 싶은 때도 있었답니다. 그때 코치가 경상도 분인데 빙그레 웃으면서 "영조야 니 힘드나? 너는 안 보이는지 모르지만 나는 보인데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네가 일등으로 들어오는 모습과 니가 월계관을 머리에 쓰는 모습이 보인데이" 그럴 때마다 황영조는 입술을 깨물었답니다. 아픔과 힘든 고통과 쓰라림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1등 월계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이깁시다. 여러분의 목표를 성취하십시오.
믿음의 목표를 성취합시다. 우리는 세상에서 최고 가치관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대열이 아니라 생명의 대열에서 행진하는 자들입니다.
그 예수님을 쫓아갑시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고백합시다.
바울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의 경주는 결코 멈출 수 없었으니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쫓아갔다고 했습니다(13-14).
사람이 이와 같이 목표가 확신하고 목표를 향해 투신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일에도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세상 생활이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그 목표만을 향하여 매진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행복자 입니다.
그런 사람은 승리의 확신이 있는 사람이요, 그러기에 승리할 수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기독교의 신앙문제는 내가 구원받아 영생을 얻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느냐?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아 음부에 떨어지느냐? 하는 영원한 결판문제를 앞두고 있는 경주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줏대 없이 흔들리면 믿는지? 안 믿는지?
신앙의 반거치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반거치리는 차라리 잘못 가다 실패한 사람보다 더 비참한 실패자인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패한 사람은 깨닫고 변화될 수 있지만 반거치리는 그러한 기회가 결코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분명히 살아야 합니다.
반거리치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하여 인생이나 신앙에 있어서 승리하는 비결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인생을 똑바로 살고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에서 그 비결을 찾아봅시다.
1. 잊어버릴 것은 깨끗이 잊어 버려야 합니다
13절에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고 했다.
잊어버린다는 말은 원어로 "에팔란다 노메노스" 인데 이것은 과거의 기억이 앞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사도는 과거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한 적도 있습니다.
보다 귀한 것을 위하여서는 사소한 것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내일에 더 큰 꿈을 가진 사람이 자꾸만 지난날의 추억에 얽매여 머뭇거리다가는 아무 것도 못합니다. 생명의 주이신 예수님을 쫓아가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다 시비하다 언제 천국 가실 것입니까?
※바울사도는 예수님을 만난 후 뒤에 있는 것은 다 잊어 버렸습니다
※그는 당시 대석학자 가브리엘 문화에서 학문의 최고 과정을 마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다 잊어 버렸습니다.
※과거의 귀족으로 떵떵거리며 살던 일, 율법주의자요 유대인중의 유대인으로 자존심이 만만했던 것도 잊어 버렸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앞잡이 노릇을 했던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과거의 슬프던 기억도, 쓰라렸던 아픔도 모두 잊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분명히 사는 사람들은 어제를 잊어버립니다.
특히 교회생활에서는 어제의 공을 앞세우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제의 공로, 어제의 봉사, 어제의 헌신, 희생 등을 잊지 못할 때 불만타령을 하며 오히려 교회의 문턱 노릇을 하거나 어렵살이 되어 가는 일도 묵은 암탉처럼 휘젖어 버리는 방해꾼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 이제 출석했다고 눈치 보며 일을 못하는 기피꾼이 되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며 어제 일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일찍 왔던 늦게 왔던 제대로 예수 쫓아가는 신자가 일등신자인줄 믿습니다.
※옛날 당나라에 송청이라고 하는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을 조제하는데 탁월했습니다. 그에게 와서 약을 사먹고 병을 고친 사람이 부지기수였습니다. 송청은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연말 하면 외상장부가 수십 권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한번도 약값을 독촉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는 연말이면 외상 장부를 불태워 버렸고 두 번 다시 약값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그를 어리석다고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대범한 인물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송청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나는 어리석은 사람도 대단한 사람도 아닙니다.
40년동안 약장사를 하면서 수백 권의 외상장부를 태웠습니다.
그러나 크게 손해 본 적은 없습니다.
약값을 떼어먹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나중에는 약값보다 훨씬 많은 보답을 해 주었습니다. 선을 베푸는 것이 손해 보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그가 그런 마음씨를 가졌기에 더 효험 있는 약을 조제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막연히 살기보다 분명히 사는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어제 일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제대로 쫓아가려면 바울사도와 같이 어제 일을 깡그리 잊어버려야 할 줄 믿습니다.
2. 앞에 있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여기 앞에 있는 것을 잡는다는 말은 "카테이레 세나이"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사냥개가 짐승을 물고 죽을 때까지 놓지 않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높은 낭떠러지에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목숨을 걸고 버틴다는 의미입니다.
나무가지를 놓으면 죽습니다. 죽자 살자 붙잡고 매달려야 합니다.
신앙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붙잡고 죽어도 매달려야 합니다. 가나안 농군학교 창설자이신 조용기 장로님께서도 어느 청년에게 돈버는 방법도 돈을 그처럼 붙잡아야 된다고 가르쳤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캄캄한 동굴에 들어간 사람들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밧줄을 놓아서는 안됩니다. 박쥐 떼에 놀라 밧줄을 놓아 버렸기에 10명이나 사망한 동굴탐험 기사가 있었지 않았습니까? 이 어렵고 험한 세상, 앞이 안보이고 캄캄할수록 믿는 자는 예수 생명 줄 놓으면 파멸입니다.
결단코 믿음 줄 놓지 말고 붙잡으셔야 합니다. 인생을 기껏 살고 헛수고하면 안됩니다. 예수 생명 줄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14절에 어떻게 하였다고 했습니까?
3.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살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주신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갔다고 선포했습니다. 쫓아간다는 헬라어도 "디오코"입니다.
σιοκο는 결승점을 앞에 둔 선수가 아무것도 보지 않고 가슴에 닿을 테이프만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목표물만 향하여 쫓아가려면 그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전 국가대표 축구선수 감독이었던 차범근은 "나는 공을 찰 때 공만 보았고 공을 차지 않을 때는 공만 생각했다"고 했습니다.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에게서는 물만 흘러나오듯이 예수 믿는 사람 속에서는 건드릴수록 복음만 흘러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산에서 기도를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하여 내려 오다보니 "성령탕"이라고 적혀 있어 이상하다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설렁탕"을 잘못 보았더랍니다.
또 "생명수"라고 적혀 있어 자세히 보니 "생맥주"였다고 합니다.
또 예수로 충만한 사람이 길을 가다 "예수 에너지"라고 적힌 간판을 보고 이상하여 가까이 가보니 "여수 에너지"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기가 생각한데로 보이기 마련입니다.
항상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생각한대로 자연히 행동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머슨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곧 그 사람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막연한 인생이 아니라 분명한 인생을 살고 싶으십니까?
♤목표를 성취하고 싶으십니까?
♤믿음의 승리를 거두고 싶으십니까?
♤예수 제대로 믿고 구원도 받고 세상살이도 성공하고 싶으십니까?
바울사도처럼 예수로 푯대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푯대를 향하여 쫓아가야 합니다. 잊어버립시다. 붙잡읍시다. 그리고 쫓아갑시다. 세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황영조를 아마 모르시는 분 없을 것입니다.
그가 어떻게 50억 인구 중에서 달리기 1등을 할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물론 제일 잘 달렸으니까 1등 했다고 생각하시면 간단하겠지요.
그러나 50억 인구 중에 일등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습할 때마다 얼마나 힘이 든지 달리다가 호수에 빠져 죽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100리나 되는 그 먼 거리를 달려와서 좀 쉬고 싶은데 계속 운동을 시키는 코치를 죽이고 싶은 때도 있었답니다. 그때 코치가 경상도 분인데 빙그레 웃으면서 "영조야 니 힘드나? 너는 안 보이는지 모르지만 나는 보인데이...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네가 일등으로 들어오는 모습과 니가 월계관을 머리에 쓰는 모습이 보인데이" 그럴 때마다 황영조는 입술을 깨물었답니다. 아픔과 힘든 고통과 쓰라림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뛰고 또 뛰었습니다. 그래서 이겼습니다. 1등 월계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세상을 이깁시다. 여러분의 목표를 성취하십시오.
믿음의 목표를 성취합시다. 우리는 세상에서 최고 가치관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죽음의 대열이 아니라 생명의 대열에서 행진하는 자들입니다.
그 예수님을 쫓아갑시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인 것을 고백합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