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음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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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작성일 09-09-05 12:01 조회 12,318 댓글 0본문
본문 5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구절이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가장 짧고 간결하게 표현한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예수그리스도를 닮고 본받아 사는 것이 가장 귀한 크리스챤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능력도 뛰어나고, 재물도 많고, 세상 명예도 누리고, 거기에다 갖가지 많은 은사를 가졌다고 자타가 공인한다고 해도 예수님과 닮지 않은 삶을 산다면 그리스도인으로 우등생은 결코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으로서 가장 값진 축복은 중심에 이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어 복 받아 부자 되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 한복판에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 이상 더 귀한 축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대대로 예수 믿고, 20년, 30년 교회 봉사해 왔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말을 하고 더욱이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한 행동을 한다면 부자가 된들, 명예를 획득한 들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오히려 우리 예수 가문의 명예를 손상하는 부끄러운 가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어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중심에 예수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더 귀한 성도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인생은 시계추가 아닙니다.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속에 예수의 마음이 없으면 쭉정이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람 부는 대로 날아다닙니다. 왔다리 갔다리 시계추 신자입니다. 그래서 약1: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에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또 8절에 그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따끔하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격언에 가다 중단하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아니 감만 못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답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계속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인생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의 목표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1. 자기를 비우는 생활이었습니다.(빌2:7절)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었다는 이 말씀은 다른 번역에 의하면 자기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결혼도 포기하고 생업도 포기하고, 장남으로서 책임도 포기하고 오래살고 편하게 살기 원하는 인간의 공통적인 욕망도 포기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체면도 포기하였으며 정치적 기회도 포기하고 한 교단의 교주나 어느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기회도 포기하였습니다. 싸움도 포기하고 생명조차 포기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표현된 그의 정신이고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즉 그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묻혔고 한 줌의 소금이 되어 녹아졌으며 한 개의 촛불이 되어 자신을 태워 버렸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한 어부가 아들과 함께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저녁때쯤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 덮고 비가 쏟아지며 폭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키를 잃고 나뭇잎처럼 사방으로 떠밀렸으며 캄캄해진 바다에서 방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경험 많은 어부도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어두운 수평선에 불꽃이 보였습니다. 희망을 찾은 어부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 방향으로 배를 저어 육지에 다 달아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상륙하고 보니 놀랍게도 자기 동네로 바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려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놀랬습니다. 아내는 바로 얼마 전에 자기의 실수로 집에 불이 나서 걷잡을 사이도 없이 이 작은 목조 가옥을 전소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부가 흑암 속에서 본 그 불꽃은 바로 자기 집이 타오르는 불길이었던 것입니다. 어부는 아내의 말을 듣고 오히려 밝은 얼굴로 아내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그 화재는 나와 우리 아들을 살린 불이었소. 집은 탔으나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요”이 이야기는 꼭 예수님이 죽음의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잃고 죽음 속에 허덕이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깨뜨리고 하늘 문을 열어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불태우고 어둠속에 목표가 되는 횃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이나 단체나 기업체나 나아가서 교회나 국가에도 이런 희생자가 없으면 중구남방으로 시끄럽기만 하지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신 분이었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어두운 폭풍우 속에서 활활 타오른 횃불처럼 자신을 불태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 해 주셨습니다. 그 희생의 횃불을 보고 따라가는 우리 크리스챤들은 또한 우리 속에 그 예수의 마음을 품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횃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요12:24) 썩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안 됩니다. 간만큼 이익입니다. 계속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갑시다. 우리들의 가슴 복판에 항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갑시다.
2.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빌2:8)
예수님은 자신을 한 없이 낮추신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겸손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땅의 말구유까지 자기를 낮추셨고, 하나님의 위치에서 죄인의 자리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죄인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고, 그것도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태어난 노동자가 되었으며 죄인들과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고에츠 박사는 “만일 기독교인에게서 겸손을 빼면 기독교는 세계에서 가장 못된 집단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에츠 박사의 말대로 기독교인의 가장 높은 덕(德)은 겸손에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을 우리에게서 제한다면 사실 예수님의 빛은 남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천한데까지 낮추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철저한 겸손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겸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기고만장합니까?
얼마나 이기주의적입니까? 교만합니다. 사탄도 겸손이 부족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까?
겸손하지 못하면 소유한 달란트나 장점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기로 악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하지 못하는 은사는 오히려 위험한 것이니 자신과 남을, 아니 평화를 파괴하는 악덕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이 왜 생깁니까? 처음에는 은혜를 받았으나 겸손이 빠져 나가자 자신이 하나님처럼 행세하려는 교만의 소산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중심에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겸손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2:8)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그 목적에 복종하는 생애를 끝까지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생활 철학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죽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어 가시면서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생애의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예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의 최고의 이상과 목표는 그 예수님을 닮은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가슴 복판에 그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합시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1:2-4) 고 당부한 지엄한 말씀을 준행합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예수님과 서로 마음이 통하고, 사랑이 통하고, 성품이 통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십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 우리의 이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크리스챤으로서 가장 값진 축복은 중심에 이 마음을 갖는 것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어 복 받아 부자 되고 세상의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슴 한복판에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갖는 것 이상 더 귀한 축복은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대대로 예수 믿고, 20년, 30년 교회 봉사해 왔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고, 엉뚱한 말을 하고 더욱이 세상 사람들 보다 못한 행동을 한다면 부자가 된들, 명예를 획득한 들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은 오히려 우리 예수 가문의 명예를 손상하는 부끄러운 가족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부터 예수를 믿기 시작했어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그 중심에 예수의 마음이 있는 사람이 더 귀한 성도인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인생은 시계추가 아닙니다.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는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속에 예수의 마음이 없으면 쭉정이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바람 부는 대로 날아다닙니다. 왔다리 갔다리 시계추 신자입니다. 그래서 약1: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에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또 8절에 그런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따끔하게 말씀했습니다.
여러분! 격언에 가다 중단하면 어떠하다고 했습니까? (아니 감만 못하다) 그러나 지금은 바뀌었답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간만큼 이익이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이 계속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인생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믿음의 목표가 확실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1. 자기를 비우는 생활이었습니다.(빌2:7절)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었다는 이 말씀은 다른 번역에 의하면 자기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적으로 볼 때 결혼도 포기하고 생업도 포기하고, 장남으로서 책임도 포기하고 오래살고 편하게 살기 원하는 인간의 공통적인 욕망도 포기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체면도 포기하였으며 정치적 기회도 포기하고 한 교단의 교주나 어느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 기회도 포기하였습니다. 싸움도 포기하고 생명조차 포기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로 표현된 그의 정신이고 생활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말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즉 그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묻혔고 한 줌의 소금이 되어 녹아졌으며 한 개의 촛불이 되어 자신을 태워 버렸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한 어부가 아들과 함께 먼 바다로 고기잡이를 나갔습니다. 저녁때쯤부터 검은 구름이 하늘 덮고 비가 쏟아지며 폭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배는 키를 잃고 나뭇잎처럼 사방으로 떠밀렸으며 캄캄해진 바다에서 방향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경험 많은 어부도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는데 갑자기 어두운 수평선에 불꽃이 보였습니다. 희망을 찾은 어부는 모든 힘을 다하여 그 방향으로 배를 저어 육지에 다 달아 구원함을 얻었습니다. 상륙하고 보니 놀랍게도 자기 동네로 바로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려오는 아내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시 한 번 놀랬습니다. 아내는 바로 얼마 전에 자기의 실수로 집에 불이 나서 걷잡을 사이도 없이 이 작은 목조 가옥을 전소시켰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부가 흑암 속에서 본 그 불꽃은 바로 자기 집이 타오르는 불길이었던 것입니다. 어부는 아내의 말을 듣고 오히려 밝은 얼굴로 아내를 위로하며 말했습니다. “그 화재는 나와 우리 아들을 살린 불이었소. 집은 탔으나 그 덕분에 목숨을 건졌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요”이 이야기는 꼭 예수님이 죽음의 풍랑 속에서 방향을 잃고 죽음 속에 허덕이는 인류를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깨뜨리고 하늘 문을 열어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게 한 구원의 진리를 설명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다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을 불태우고 어둠속에 목표가 되는 횃불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가정이나 단체나 기업체나 나아가서 교회나 국가에도 이런 희생자가 없으면 중구남방으로 시끄럽기만 하지 가야 할 방향을 상실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류구원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신 분이었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어두운 폭풍우 속에서 활활 타오른 횃불처럼 자신을 불태워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 해 주셨습니다. 그 희생의 횃불을 보고 따라가는 우리 크리스챤들은 또한 우리 속에 그 예수의 마음을 품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생명의 횃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한 알의 밀알이 되어(요12:24) 썩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가다가 중지하면 안 됩니다. 간만큼 이익입니다. 계속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갑시다. 우리들의 가슴 복판에 항상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아갑시다.
2.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빌2:8)
예수님은 자신을 한 없이 낮추신 겸손한 분이셨습니다. 참으로 겸손의 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늘 보좌에서 땅의 말구유까지 자기를 낮추셨고, 하나님의 위치에서 죄인의 자리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시나 죄인 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고, 그것도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 태어난 노동자가 되었으며 죄인들과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라는 별명을 받았던 것입니다. 고에츠 박사는 “만일 기독교인에게서 겸손을 빼면 기독교는 세계에서 가장 못된 집단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고에츠 박사의 말대로 기독교인의 가장 높은 덕(德)은 겸손에 있습니다. 그것 하나만을 우리에게서 제한다면 사실 예수님의 빛은 남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비천한데까지 낮추지 않았다면 어찌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철저한 겸손을 본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겸손을 모르는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기고만장합니까?
얼마나 이기주의적입니까? 교만합니다. 사탄도 겸손이 부족했기에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았습니까?
겸손하지 못하면 소유한 달란트나 장점이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기로 악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겸손하지 못하는 은사는 오히려 위험한 것이니 자신과 남을, 아니 평화를 파괴하는 악덕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이단이 왜 생깁니까? 처음에는 은혜를 받았으나 겸손이 빠져 나가자 자신이 하나님처럼 행세하려는 교만의 소산물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중심에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한없이 낮추셨습니다. 철저히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겸손하셨습니다. 그 마음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2:8)
예수님은 자신의 뜻과 그 목적에 복종하는 생애를 끝까지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생활 철학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죽는 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 못 박혀 죽어 가시면서도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무엇을 위하여 살았는가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정신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생애의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려는 그 하나님의 사랑 앞에 예수님은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그 예수님을 믿고 그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예수님의 자녀들이라면 우리의 최고의 이상과 목표는 그 예수님을 닮은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가슴 복판에 그 예수님의 마음을 소유합시다. 그래서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빌1:2-4) 고 당부한 지엄한 말씀을 준행합시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예수님과 서로 마음이 통하고, 사랑이 통하고, 성품이 통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십시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 우리의 이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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