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을 살해하려는 사울(삼상19:1-24절)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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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을 살해하려는 사울(삼상19:1-2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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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115회 작성일 10-03-10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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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장은 다윗을 시기하던 사울이 다윗을 살해하려고 실행을 하는 내용과 그에 반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다윗 편에 서서 언약 신앙을 신실히 믿고 다윗을 보호 하는 참된 우정이 돋보입니다.


1. 참된 우정의 증거(1-7절)

역경은 우정의 시금석(試金石)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실한 벗은 어려울 때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날로 다윗의 인기가 상승하자(18:30절) 사울의 질투심도 불타올라 요나단과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때 요나단은 다윗을 심히 좋아했으므로 다윗에게 귓 띔을 해 주고 들로 피신시켰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우정의 증거였습니다. 사실 다윗이 살아있으면 요나단이 왕위에 오르기가 어렵게 될 수 있었습니다. 참된 우정이 시련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된 우정은 시기나 질투하지 않는 것이며 오히려 겨울의 사나운 폭풍도 그것을 공고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나단은 강자인 아버지 앞에서, 다윗이 없는 곳에서 다윗을 변호했고 포장(襃獎: 칭찬하며 권하여 힘쓰게 함) 했다고 했습니다.(4절) 요나단은 다윗의 업적을 상기시키며 사울을 진정하게 하여 다윗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얻어 내고 다윗을 사울에게 인도하여 화해케 했습니다. 요나단은 참으로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세상에는 네 종류의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①친구이면서 위장 된 적(敵)이 있고 ②경계해야 할 친구가 있고 ③번영의 때나 역경의 때나 동일한 친구

④좋은 조언과 동정을 베푸는 친구가 있다고 합니다. 요나단은 복 받을 수 있는 화평케 하는 자였습니다.(마5:9절)


2. 다시 악신에 접한 사울(8-17절)

다윗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자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사울에게 접하자 침전되었던 시기심이 다시 발동했습니다.(9절)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란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 해롭게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주권에 따라 강퍅하게 하시기도 하고 긍휼을 베푸시기도 합니다. 그것이 사울을 징벌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의 시기심과 권력욕을 제어하도록 은혜를 베풀지 아니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사람의 욕심대로 행치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시기심이 발동하자 이성을 잃고 단창으로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던졌으나 재빨리 피했고 아내 미갈이 창에서 달아내려 도피시켰습니다.(12절) 또 미갈은 우상을 취하여 침상에 뉘우고 염소 털 뭉치와 옷으로 위장 시켰는데 사울은 침상 체 자기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했고 미갈의 위장술은 탄로 났습니다. 노발대발한 사울에게 미갈은 다윗이 자기를 보내지 않으면 미갈을 죽이겠다고 하여 별 수 없었다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17절) 다윗은 3-4년간 궁중생활을 하였는데 이때부터 7년간의 유랑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삼하5:5절, “그가 70을 살았으니”) 미갈은 재치 있고 속일 줄도 아는 여자였습니다. 그는 재치가 있었기에 남편을 도피시킬 수 있었고 또 교묘한 화술로 아버지의 분노를 감소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성경말씀을 보면 변덕스러운 성격은 사울의 기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이 나그네 생활 중에 발디와 결혼했고(25:44절) 다시 다윗을 사랑했습니다.(삼하3:16절) 그러나 그녀가 우상(드라빔)을 소유하고 있었던 점등으로 미루어 볼 때 영적인 인물은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13절)


3. 다윗의 정치적 망명(18-24절)

18절부터 다윗의 정치적 망명이 시작됩니다. 사울은 다윗이 도피한 곳을 알아내어 그를 잡아오도록 사자들을 세 차례나 보내나(20-21절) 그들 모두 예언을 합니다. 이것은 분명 다윗을 보호하신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표적(sing)이었습니다. 그때 다윗과 사무엘은 나욧에 가 머물고 있었습니다.(18절) 사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하고 경고를 받아 들여야 했으나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울 역시 라마 나욧에 도착하여 예언을 하게 되었습니다. 24절에 보면 사울이 옷을 벗고 사무엘 앞에서 예언을 하며 종일 종야에 벌거벗은 몸으로 누워 있었기에 “속담에 이르기를 사울도 선지자 중에 있느냐?” 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 속담의 반복은 사울의 정신이 여호와의 다른 종들과 정신이 아주 상이하게 달랐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다윗은 무죄한 도피 객이 사무엘을 만나 절박한 위기에서 구원되었습니다. 사무엘과 다윗 또 사울 세 사람은 라마에서 이같이 만났고 사무엘 선지자의 조언과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사울의 기세가 꺾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누웠더라”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다”란 뜻인데 살기등등하던 사울이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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