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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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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148회 작성일 09-10-2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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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서 서론

이 책은 구약 중에서 여덟 번째의 책이며 여덟이란 수는 시작의 수입니다.
B. C 1100년경 다윗시대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무엘 선지자가 사무엘 상. 하, 사사기, 룻기를 기록했다고 한다. (탈무드와 유대전승)

룻기서의 배경은 사사시대입니다. 그러나 사사기와 차이점은 폭력과 불법대신 부드러움과 사랑과 희생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서가 사사기와 사무엘서에 끼인 것은 사사기는 유대민족의 쇠퇴를 보여주며 사무엘서는 유대왕국을 보여주는데 룻기는 그리스도와 그의 신부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는 지금도 이방인들과 유대인들 중에서 그의 신부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1.나오미와 룻의 슬픔
(1) 잘못된 결정 (1-5절)
우리는 베들레헴(떡집)에 왜 기근이 닥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백성들의 죄 때문일 것입니다. 그 땅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대신, 엘리멜렉(하나님은 나의 왕)과 나오미(기쁨, 희락)는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땅으로 갔습니다.
아브라함과 (창12:10절이하) 이삭도 (창26장) 비슷한 실수도 했습니다.

원수의 빵을 먹는 것 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굶는 것이 났습니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단지 몰라도 쓴 쑥이 약인 것입니다.
이들을 얼마 동안만 여행 할 생각이이 있으나 아버지와 두 아들이 죽을 때까지 계속 머물러 있었습니다. 두 아들들의 이름은 이 여행의 슬픔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합니다.
말론은 “병약한” 이란 뜻이고, 기룐은 “고정시킨다”란 뜻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생각 때문에 이방지역 불 신앙촌으로 내려 간 것은 곧 실패와 사망을 자초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고생 좀 덜하고 기근을 피해 보려던 계획은 오히려 비통한 슬픔을 가져 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롬8:6)고 경고하지 않았습니까?
유대인들은 모압 인들과 혼혈을 이루지 않게 되어 있으므로 (신23:3) 이들의 잘못된 결정은 하나님의 징계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2) 잘못된 방향 (6-14절)
두 아들과 남편을 잃은 그 가정은 덜렁 세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양식을 주었다는 소문을 듣고 (6절) 본국으로 돌아가기를 갈망하지만 며느리들을 같이 가자고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도 단순한 인간적 판단으로 나오미는 한 번 더 실수를 합니다. 두 며느리를 함께 가자고 했어야 마땅합니다.
두 며느리를 우상에게로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 나오미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육적인 그리스도인의 자세였습니다.
큰며느리 오르바는 결국 우상 촌으로 돌아갔으니 나오미와 오르바의 유일한 관심은 육적인 것이었던 것입니다. (15절)
우리는 올라가는 생화를 해야 합니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육적인 것을 떠나 영적인 것을 지향해야 합니다.
(3) 끝까지 돌아가지 않은 룻 (15-18절)
룻은 어떠했습니까?  나오미를 따라 가 보았자 육적으로 아무 기대할 것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형사 취수제(兄死取嫂制 : 형이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의무를 다하는 제도 : 창38장, 신25:5-6절)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 마저 과부가 되었으니 알거지인 나오미를 따라간들 어느 구석 한곳이고 희망이 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빵과 호의호식을 조금도 바라지 않고 보다 높은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룻은 죽자고 나오미에게 달라붙었습니다. 그녀는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원하고 옛 이교도의 생활을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룻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17절)
“결단코 나는 함께 가겠나이다”는 단호한 결단을 하였습니다. 나오미의 방향이 영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경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생각 해 볼 교훈은

󰊉나오미가 인간적으로는 상당히 자애롭고 어진여인이었던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 정 떨어질 인간성을 가졌다면 오르바와 룻이 그처럼 어머니를 쫓으려 했겠는가? 하는 점입니다.
②나오미가 구원의 확신보다는 육적인 인정에 끌리는 생활을 한 것 같지만 그러나 나오미의 생활속에서 룻이 하나님을 발견했다는 것은 생활을 통한 여적 감동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활전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③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들어가면 자연 부모를 공경하는 효심도 지극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들어간 룻은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봉양 하려는 갸륵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과연 복 받을 그리스도의 신부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4) 하나님을 탓한 나오미(19-22절)
나오미와 룻의 귀환은 베들레헴성에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왜냐하면 나오미가 너무도 변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민들은 너무도 비참하게 몰락한 나오미를 보고 말문들이 막혔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망할 수가 있을까? “이가 나오미냐?” 몰라보겠다고 의아 해 했습니다.
이때 나오미는 비참한 심정으로 그들에게 “나를 나오미(기쁨)이라 칭하지 말고 마라(씀)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20절)고 자기의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이름으로 미루어 볼 때 딸이 귀한 집에서 태어났기에 나면서부터 귀염을 받고 부요한 가정 출신 인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 나오미가 불신지역으로 내려갔더니 마라가 되어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극단적 시험을 만나도 하나님께 탓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나오미의 비참한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먼저 자신들의 잘못 갔던 방향들을 돌아 보았어야 합니다. 불신자들도 잘 되면 자기 탓이요 잘못되면 공연한 조상 탓을 합니다.
하나님은 룻을 사용하셔서 “마라” 같은 시어머니의 삶과 하나님에 대한 태도를 바꾸게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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