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와 모세의 세 번째 중재**(출33:1-23)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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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와 모세의 세 번째 중재**(출3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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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519회 작성일 08-06-1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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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두 번째 중재기도와 자신을 그의 백성들을 위한 희생으로 드리려 각오(32:32절)가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앞으로 있을 노정(路程)에 있어서 조건이 변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내 사자(使者)가 네 앞에서 가리라”(32:34절) 그리고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겠다고 응징을 유보하는 것으로 응답하였습니다.
그리고 33:1-6까지의 말씀을 보면 약속대로 가나안 땅을 들어가게 하되 하나님께서 직접 동행하지 아니하시겠다고 했습니다.(3절) 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행17:28절에 보면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아니하시면 기쁨과 즐거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시16:11) 하나님은 그들의 패역한 모습을 중도에서 또 다시 목격하면 그들을 진멸(殄滅)할까 염려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불신하는 노여움입니까?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황송하여 몸을 단장하지 아니했으니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은 외모를 꾸미는 일을 중단하고 진실한 태도로 죄를 붙들고 애통하며 회개하라는 의미였던 것입니다.

1. 진 밖 회막에 거하신 하나님(7-11절)
이스라엘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와 계속 교제함으로서 임재의 통로를 열어 놓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장막이 완성될 때까지 백성들이 여호와께 물을 수 있도록 임시로 회막을 만들어 진밖에 두었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다 진 밖 회막으로 나아와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까지 바라보게 했습니다. 회막은 하나님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기도의 전이었습니다. 진(陳)과 멀리 떨어져 있게 한 것은 타락한 세속적 모습과 소리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모세는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12절-16절) 그리고 백성들에게는 회막으로 나아가게 했는데 그것은 죄를 뉘우쳐 회개하는 자는 하나님과의 만남의 장소인 그곳을 사모하고 찾아오게 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도 가정에서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지만 성전에 모여야 한다는 엄연한 영적 교훈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성전을 두고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갈 때  백성들이 장막 문에 서서 바라보았다고 했는데(8절) 그것은 중보기도를 드리는 모세와 마음을 같이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대표기도를 하는 사람과 마음을 같이하고 함께 “아멘”해야 합니다. 찬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특송 할 때 딴전  부리는 것은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하나님께 대한 불경한 태도입니다. 회막문에 구름 기둥이 섰음을 보았을 때 장막 문에 서서 경배한 것은 하나님과 관계 회복을 위하여 기도하는 주의 종과 함께 마음을 같이하여 예배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인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경배하며 경건한 마음으로 예배 드려야 합니다.

2. 모세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12-17)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6)고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씨름하여 은혜의 약속을 받아 내었습니다.(17절)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모세는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겨 달라”고 간절히 호소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 앞에 약하십니다. 야곱의 매달리는 기도에 하나님이 지셨습니다.(창32:8) 히스기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셨습니다.(사38:5)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자녀의 기도에 약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구하라”고 하셨고 기도하다 중단하는 것을 심히 안타까워 하셨습니다.(눅18장 불의한 재판관 비유) 하나님의 응답의 내용은 어떠했습니까?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로 편하게 하리라”(14절) 모세의 간절한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게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임재의 유익을 체험했기에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15절) 재차 간청했습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시지 않는 출발은 곧 파멸의 길임을 알았으며 참된 평안(平安)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만이 보존과 보호의 근거가 되며 평안함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모세의 요구(18-23절)
모세는 또 좋아 했습니다.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18절) 모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백성의 속죄를 약속받고 난 다음 더 가까운 교제를 간청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의 소욕을 더 보기 위하여 노력하지만 선한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다 완전히 보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간격이 현저하며 차원이 다릅니다. 모세의 간청에 하나님은 어떤 답변을 하셨습니까? “네가 네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라”(20절)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과 존엄성을 의미하는 말로 거룩하신 영광을 직접 대면하면 육을 가진 인간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그러나 어디에서 하나님의 등이라도 볼 수 있다고 했습니까?(21-22절) 반석(盤石)위에 서 있으면 하나님의 영광이 지날 때 모세를 반석 틈에 두고 하나님 손으로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10:43절) 우리는 굳건한 반석 되시는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대할 수 없고 또 죽을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의 영광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회개 없이는 구원도 없다”(눅17:4절)는 사실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목전에서 너희 악을 버리며 악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라”(사1:16, 17절)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모세의 중재 기도도 헛되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단장품을 버렸듯이(6절) 우리도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마3:8절) 우리도 효력 있는 집요한 요구를 하나님께 합시다. 모세의 기도는 뜨거운 기도요, 사욕 없는 기도였습니다.(약4:3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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