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傷害)에 관한 율례(출21:18-27)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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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傷害)에 관한 율례(출21: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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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162회 작성일 07-12-19 15:40

본문

본문은 다른 사람을 상해하였을 경우(18-25절), 주인이 종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 어떠한 처벌을 가(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 처리의 근본정신은 사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사랑은 생명에 대한 경외에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형은 오로지 사람의 목숨을 귀히 여기지 않거나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경시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 규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상해하는 자는 그만큼의 형벌을 받아야 하나 그 대신 보상금으로서 형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율례는 죄와 형벌에 따른 정당한 형평의 원칙으로 적용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입법취지를 바로 깨달아 신앙생활의 기준을 어디에 두고 살아야 할 것인가를 결정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 일반 사람을 상해했을 경우(18-19절)
 세상 형법에서 상해란 타인의 신체에 폭행을 가하여 생리적 기능에 장애가 생기게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폭행을 가했으나 상해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는 폭행죄로 처벌하나, 사람을 상하게 하여 인체의 기능에 장애를 가져오면 상해죄에 해당됩니다. 본문에서는 자유인에 대한 상해죄를 지정한 법으로 싸우다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 적수(敵手)를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지팡이를 짚고 기동(起動)할 정도면 형사처벌은 면하되 민사처벌로 재산형에 처해져 그 피해자에게 그 기간의 피해를 보상해 주고 그가 완치 될 때까지 치료비를 부담해 주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가 받은 상해로 죽게 된다면 물론 12절의 율법에 의해 처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는 행형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상해와 같은 형사범도 재산형에 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은 마땅히 경중(輕重)에 따라 형사처벌도 겸하여 받아야 합니다. 문제는 가해자의 능력이 충분한 보상을 할 수 없었을 때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때나 지금이나 정의(正義)는 가해자가 자신의 과실을 뉘우치고 최선을 다해 몸을 바칠 때만 실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종에 대한 상해의 경우(20, 21, 26, 27절)
본문은 주인이 자기의 종을 폭행하여 상해로 인한 폭행 치사나 치상의 경우를 규정한 것입니다.
(1) 매로 종을 쳐 죽게 한 경우(20-21절)
이 경우는 살의(殺意)의 유무(有無)에 따라 처벌의 경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쳐서 당장 죽었으면 생명을 존귀히 여기는 하나님의 정신에 위배됨으로 포악한 주인으로 인정되어 살인죄의 형벌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허나 문맥상으로 보아(20절) 21:12절의 규정에 의하여 사형에 처했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렇지만 창세기 9:5절 말씀대로라면 그 사람도 사형에 처함이 마땅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상해를 입은 종이 하루나 이틀 안에 죽지 않으면 형벌을 면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주인이 살해의사가 없이 채벌을 가했다고 인정되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기독교는 동기(動機)를 중요시하는 종교입니다. 그것은 곧 사랑에 근거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이 경우 그 종은 주인의 재산의 일부라고 취급되었기에 종의 잘못으로 주인의 재물에 손실을 가져오게 된 결과라고 보아 형사처벌을 면제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종의 인권도 존중하면서 주인의 손실도 인정하는 하나님의 형평의 원칙에 따른 입법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상의 경우 모든 평가는 재판관의 판결에 따라 처벌 여에 따라 결정되었을 것입니다.
(2) 또 26-27절에 보면 주인이 상습적으로 종을 폭행할 수 없도록 한 훌륭한 법적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종이 주인의 매를 맞고 눈이 다치거나 이가 망가진 경우는 그 종을 놓아주어 자유케 하도록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정도는 경미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치료받을 의술이 없었기 때문에 영영 불구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타난 법 정신을 보면 아무리 종은 금전으로 취급되었다고 할지언정 엄연히 하나님께서 창조한 존귀한 생명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태형이나 형벌로 다스리지 않고 주인의 감정대로 함부로 때려 눈이나 이를 상해했을 경우 주인도 그만한 대가를 치루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노예가 한 사람이라도 자유를 찾게 하시려는 긍휼하심과 아무리 천한 노예라도 인권만은 보호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임신한 여인을 상해했을 경우(22-26절)
여기에는 철저한 탈리오 법칙(라틴어 Lex talionis, 영어 Law of retaliation)으로 눈에 눈, 이에는 이라는 표현으로 동형복수(同形復讎)의 법칙을 말합니다. 이 법은 원시미개 사회에서 행해졌던 응보형입니다. 그러나 모세 법은 개인의 감정에 의한 사직인 형(私型)에 의해 시행되기 보다는 공정한 재판절차를 걸쳐 공형(公刑) 제도로 시행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임신한 여인과 싸우면 얼마나 힘이 있겠습니까? 법은 공정하고 공평해야 하되 약자를 우선 보호해야 하며 또 복중에 있는 태아의 생명도 엄연한 한 생명체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혹 여기에서 낙태된 생명보다 산모의 신체에 비중을 더 두었다고 해서 하나님은 태중의 생명을 가볍게 여긴다고 오해하지 맙시다. 이미 그 생명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니 함부로 낙태한다거나 복중의 생명을 경시(輕視)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싸움으로 낙태했으나 산모의 신체에 해가 있을 경우는 남편의 청구로 정당한 재판절차를 밟아 벌금을 내게 했습니다. (22절) 그러나 임신한 여자가 싸우다가 다른 해가 있으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철저한 응보주의(應報主義)를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유의(有意)해야 할 것은 이 규례의 입법 취지가 사형(私刑)을 인정하고 복수(復讎)를 권장하고 정당화(正當化)하려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더욱이 약한 사람에게 상해를 입혔을 경우에 최선을 다해 대속(代贖)하라는 의미가 더 강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입법에 대한 올바른 해석을 예수님은 마태복음 5:38-42에서 정확히 말씀 해 주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는 말을 너희가 들었으나 너희는 약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누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속옷가지고 송사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고, 누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그 사람과 십리도 동행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들추어내어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려는데 목적이 있다면 복음(福音)은 예수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 해 주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려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세에게 주신 엄격한 율법 속에도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강하고 풍성하게 나타나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만큼 엄하게 다스렸다는 것은 그만큼 인권을 보호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반증(反証)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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