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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개구리 재앙(출8: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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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526회 작성일 07-05-0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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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 변한 나일 강을 목격하고도 바로왕은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애굽의 술객들도 술법(術法)으로 그와 같이 할 수 있다고 오히려 오만방자하여 궁으로 들어가 관념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출7:22-23)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 개구리 재앙을 내리셨습니다.(1-7) 그때야 바로가 처음으로 출애굽의 반응을 보였습니다.(8절) 개구리 재앙은 사실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애굽의 개구리들은 매년 6월~10월 사이에 나일 강이 범람한 후 새로 조성된 강변 충적토까지도 12월 중순경 쯤 무수히 기어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애굽인들은 풍요와 다산의 신(Heka, Heqt)으로 간주하여 숭배했다고 합니다. 결국 개구리 재앙은 애굽 우상의 허구와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내 준 사건인 것입니다.

1. 동물숭배의 어리석음
하나님께서 내리신 두 번째 재앙의 목적은 애굽인들의 허구적인 종교에 경멸감을 느끼게 하려는데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인들에게는 개구리가 거룩한 동물로 취급되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들 중의 하나인 Heka는 개구리의 머리를 달고 있는 여신입니다. 애굽인들은 개구리를 창조적인 능력의 거룩한 상징으로 여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개구리의 수효를 급증시켜 이젠 개구리들이 고민과 저줏거리가 되었으니 그들의 동물숭배는 어리석음과 조소거리로 판명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 당시 개구리로 표현된 그 동물은 라나 모사이카(Rana Mosaica)라는 학명을 가진 지금의 두꺼비와 비슷한 것으로 어슬렁어슬렁 기면서 계속 소리를 냈다고 합니다. 그 개구리들이 거리에 꼭 차 있고 부엌은 물론 침실까지 기어올랐으니 더 이상 신(神)일 수 없었습니다. 사방에 죽어서 썩는 냄새가 코를 진동시켰을 것이니 얼마나 역겨워겠습니까? 그럴싸한 생각으로 인간이 고안해 낸 신은 이처럼 어이없는 고통거리가 되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아야 합니다. 폭풍우가 심하여 바다에 나간 남편의 안전을 위해 뒷산 바위 밑에서 빌고 있던 여인이 바위가 떨어져 죽었답니다. 살아온 남편이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개구리신을 섬기던 애굽인들이 그 꼴을 당한 셈입니다.

2. 바로의 반응
술객들이 자기 술법대로 모세가 행한 것처럼 개구리로 애굽 땅에 올라오게 했다고 하였습니다.(7절) 그러나 그것은 무슨 유익이 되었겠습니까?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킨 결과만 가져왔을 것입니다. 사탄도 흉내는 내지만 결국 자기 죽을 짓만 하는 것입니다. 그때서야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 개구리를 자기와 자기의 백성에게서 떠나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그들이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겠다고 슬쩍 꼬리를 내렸습니다.(8절) 그러나 개구리 재앙인 멈추고 바로가 숨을 통할 수 있게 되자 또 약속을 파기 하였습니다.(15절)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믿고 순종하려는 마음보다는 자기 이해관계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욕구가 충족되면 하나님을 외면하고, 또 반대로 자기의 목적 달성이 불가능할 때는 하나님을 떠나 버립니다. 이런 신앙은 곧 하나님중심 신앙이 아닌 거짓 신앙인 것입니다.

3. 바로의 구체적인 죄악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창조하셨기에 또 그것을 통제하시는 능력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하여, 또 대적자를 굴복시키기 위하여 심판 하실 때는 무궁무진한 자원을 동원하십니다. 피로 변했던 나일 강이 7일 만에 원상회복 되자 바로는 아마도 자기의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도저히 상상도 못할 새로운 재앙이 그에게 내렸습니다. 하나님의 화살 통이 그렇게 쉽사리 들통 날 리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책벌하시는 매 단계마다 새로운 형태로 징벌하시는 능력이 무궁무진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의 구체적인 죄악을 볼 수 있는데 그는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고 후회에 그친 점입니다. 후회하고 항복한 듯 했지만 (8절) 숨통이 트이자 또 다시 완강해져서 약속을 곧 파기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후해와 회개는 다릅니다. 회개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행11:18, 딤후2:25) 지적으로 죄를 분별하고 감정적으로 죄를 미워하며 의지적으로 하나님을 향한 생활로서 그 죄를 반복하지 않고 온전히 죄의 길에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후회란 죄를 알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면서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손해 당하는 것만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을 말합니다. 회개없이 후회만 한 바로는 후에 여덟 번째 재앙이 내리자 “신하들이 그에게 고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할 줄을 알지 못하시니까?”(10:7절)라고 말할 때도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그 고집을 꺾어 회개하지 않고 그 마음이 강퍅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아니 하였다고 했습니다.(10:20절) 진정 회개함이 없으면 손해를 당할 때에도 후회만 계속하게 되고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죄와 죄악 된 길도 다시 행하게 됩니다. 참된 회개는 참으로 성령의 선물이요, 이러한 참된 회개 한 자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요, 귀히 쓰임 받는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심판의 목적은 “사람을 회개토록 인도하는”일입니다.(롬2:4) 하나님은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시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신다”(겔33:11)고 했습니다. 이중성을 지닌 사람은 언제나 불안정합니다. 애굽왕은 그의 행동에 언제나 확고하지 못한 채 불안정하기만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의 이중적인 불안정한 행동이 결국 자신과 애굽 백성들에게 어떠한 고통을 가져오게 했던가를 교훈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것으로, 어떻게 나를 가르치고 깨닫도록 싸(sing)인을 보내시고 계시는가를 빨리 감(感)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제2, 제3의 재앙을 자초하지 맙시다. 후회로 그치지 말고 회개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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