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는 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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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27-28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저번 시간에 우리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즉 24시간 문자적인 뜻에서의 시간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말씀의 능력으로 능히 이루고도 남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24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몇십 몇백억년동안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음을 믿어야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창세기 2장은 1장의 천지창조에서 사람과 에덴동산 및 각종 짐승과 새들의 창조를 집중하여 추가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2장이 1장과 상관없는 또 다른 창조신화라고 주장하지만 두 장이 진술하는 내용의 폭과 범위가 엄연히 다르기에 단순 반복이 아닌 추가설명에 해당합니다.
또한 두 장끼리 서로 충돌되는 부분이 없으므로 서로 다른 창조신화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은 곧 육체의 창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말합니다.
생령의 히브리어인 네페쉬 하야는 1장 21절, 24절, 28절, 2장 19절의 각종 동물들을 가리키는 생물과 같이 쓰였습니다.
똑같은 히브리어 네페쉬 하야가 사람에게는 '생령'으로, 동물들에게는 '생물'로 해석된 것입니다.
생령을 영혼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동식물들이 다 영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생령을 하나님의 생기로 부터 온 것이니 '영' 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본문의 맥락은 갑자기 인간의 영적인 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첫 탄생을 말하고자하는 본문의 맥락에서 본절의 생령은 영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 생명체가 되는 점에서 다른 동식물과의 차별성이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본문의 의도는 인간의 영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생명체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창세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의미를 벗어나 자의적인 뚱딴지 같은 해석은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께서 각종 어려운 비밀들을 각 절들, 각 단어들 사이사이에 숨겨놓으신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과장되거나 자의적인 의도를 배제하고 본문의 흐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사람들은 성경 한구절을 가지고 수만가지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은 수많은 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너무나 단순한 메세지를 전하시고자 합니다.
'사랑' 이라는 핵심 메세지를 놓친 채 무슨 특별한 비밀을 파헤치듯 성경을 쪼개고 나누는 행위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사람만 흙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동물들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 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들은 90%의 염색체를 공유하고 있음을 현대과학은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물들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과 동물은 똑 같은 네페쉬 하야, 즉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간의 생명이 왜 소중합니까?
인간의 생명을 죽일 수는 있지만 살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중요하듯 생명체로서의 동식물들 또한 중요합니다.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였더라도 생물을 죽여놓고 다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냉동시킨 후 해동하면 다시 살아나는 물고기처럼 가사 상태가 아닌 진짜 죽으면 어떤 생명체도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말로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생명체로서의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요?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 추가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 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에서 인간의 소중함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습을 말하는 데 외형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생물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바로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사람이 생물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오해한 것이 오늘날의 생태계 붕괴와 자연재해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지는 다스린다는 개념은 압제와 착취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다스린다는 개념은 다릅니다.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은 각종 생물을 다스리는 첫번째 단계로 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들의 이름을 붙여서 그것들을 사냥하거나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생물들의 이름을 부여함으로 관계를 맺으며 애착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사랑'을 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다스림은 '사랑'을 쏟아 붇는 것을 말합니다.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은 이름은 생물이 아니라 자신의 갈빗대로부터 만들어진 여자였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다스리되 근엄하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대신 사랑으로 다스렸습니다.
오죽이나 사랑했으면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할 정도였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자로서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랑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의 이름을 짓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진짜 다스림이며 진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자유를 제한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쏟아 부으시는 다스림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되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성도 여러분, 사랑으로 다스립시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다 해도 그냥 동물과 같은 네페쉬 하야 살아있는 생명체일 뿐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체이므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는 다스리는 권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생명체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립시다.
사랑을 쏟아 부음으로 다스립시다. 아멘.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저번 시간에 우리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즉 24시간 문자적인 뜻에서의 시간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배웠습니다.
물론 물리학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는 말씀의 능력으로 능히 이루고도 남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의 24시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몇십 몇백억년동안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음을 믿어야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창세기 2장은 1장의 천지창조에서 사람과 에덴동산 및 각종 짐승과 새들의 창조를 집중하여 추가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2장이 1장과 상관없는 또 다른 창조신화라고 주장하지만 두 장이 진술하는 내용의 폭과 범위가 엄연히 다르기에 단순 반복이 아닌 추가설명에 해당합니다.
또한 두 장끼리 서로 충돌되는 부분이 없으므로 서로 다른 창조신화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말은 곧 육체의 창조를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말합니다.
생령의 히브리어인 네페쉬 하야는 1장 21절, 24절, 28절, 2장 19절의 각종 동물들을 가리키는 생물과 같이 쓰였습니다.
똑같은 히브리어 네페쉬 하야가 사람에게는 '생령'으로, 동물들에게는 '생물'로 해석된 것입니다.
생령을 영혼으로 해석한다면 모든 동식물들이 다 영적인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많은 이단들이 생령을 하나님의 생기로 부터 온 것이니 '영' 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본문의 맥락은 갑자기 인간의 영적인 면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첫 탄생을 말하고자하는 본문의 맥락에서 본절의 생령은 영적인 존재가 아닌 살아있는 생명체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다만 인간은 하나님께서 직접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 생명체가 되는 점에서 다른 동식물과의 차별성이 드러납니다.
그렇지만 본문의 의도는 인간의 영적인 특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생명체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창세기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본문이 말하고자하는 의미를 벗어나 자의적인 뚱딴지 같은 해석은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께서 각종 어려운 비밀들을 각 절들, 각 단어들 사이사이에 숨겨놓으신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과장되거나 자의적인 의도를 배제하고 본문의 흐름 그대로 자연스럽게 해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사람들은 성경 한구절을 가지고 수만가지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그러나 실상 하나님은 수많은 절들을 통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너무나 단순한 메세지를 전하시고자 합니다.
'사랑' 이라는 핵심 메세지를 놓친 채 무슨 특별한 비밀을 파헤치듯 성경을 쪼개고 나누는 행위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사람만 흙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들도 흙으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동물들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 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과 동물들은 90%의 염색체를 공유하고 있음을 현대과학은 밝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과 동물들을 흙으로 만드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인간과 동물은 똑 같은 네페쉬 하야, 즉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인간의 생명이 왜 소중합니까?
인간의 생명을 죽일 수는 있지만 살릴 수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살릴 수 있습니다.
생명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체로서의 인간이 중요하듯 생명체로서의 동식물들 또한 중요합니다.
그것들도 하나님께서 생명을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하였더라도 생물을 죽여놓고 다시 살릴 수는 없습니다.
냉동시킨 후 해동하면 다시 살아나는 물고기처럼 가사 상태가 아닌 진짜 죽으면 어떤 생명체도 다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다른 말로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생명체로서의 동물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는 말도 됩니다.
그러나 무엇이 인간을 다른 동물과 다른 존재로 만드는 것일까요?
인간에게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것이 추가로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 26-28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생명체로서의 인간은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자라는 사실에서 인간의 소중함은 더 이상 강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의 모습을 말하는 데 외형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다른 생물들과는 다른 점이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사람은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린다고 합니다.
바로 다스리는 권세를 가졌습니다.
사람이 생물을 다스린다는 의미를 오해한 것이 오늘날의 생태계 붕괴와 자연재해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지는 다스린다는 개념은 압제와 착취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이 다스린다는 개념은 다릅니다.
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은 각종 생물을 다스리는 첫번째 단계로 생물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아담이 각 생물들의 이름을 붙여서 그것들을 사냥하거나 가두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생물들의 이름을 부여함으로 관계를 맺으며 애착을 형성하게 됩니다.
즉 '사랑'을 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다스림은 '사랑'을 쏟아 붇는 것을 말합니다.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아담이 가장 마지막으로 지은 이름은 생물이 아니라 자신의 갈빗대로부터 만들어진 여자였습니다.
아담은 그의 아내를 다스리되 근엄하게 지시하고 명령하는 대신 사랑으로 다스렸습니다.
오죽이나 사랑했으면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할 정도였을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자로서 다스리는 권세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잘 다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사랑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의 이름을 짓는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진짜 다스림이며 진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본능적으로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억압하고 구속하고 자유를 제한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전형적인 세상의 왕들이 다스리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쏟아 부으시는 다스림으로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되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성도 여러분, 사랑으로 다스립시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사람은 살아있다 해도 그냥 동물과 같은 네페쉬 하야 살아있는 생명체일 뿐입니다.
물론 살아있는 생명체이므로 소중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는 다스리는 권세,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생명체들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는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자들입니다.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들을 다스립시다.
사랑을 쏟아 부음으로 다스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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