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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을 전한 네 문둥병자(왕하 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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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3,298회 작성일 11-12-1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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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쁜 소식을 전한 네 문둥병자(왕하 7:3-20)

 우리는 앞부분의 내용에서 사마리아성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위기를 느꼈습니다. 합분태(비둘기 똥)도 구하지 못해 먹을 수 없어 어머니들이 자식을 삶아 먹을 정도였으니 고사(枯死)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마리아성의 운명은 어찌 되었습니까?


1. 성문 어귀에 네 문둥병자(3-8절)

(1)하나님은 절망적인 위기에서 사마리아 성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성문 어귀에 있던 네 명의 문둥병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네 문둥이는 극단적인 굶주림의 고통 때문에 죽을 각오로 행동을 감행했습니다. 여기서 굶어 죽으나 양식이 풍족한 아람 진영에 가서 잡혀 죽으나 매 일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에 하나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은 비록 적진이라도 그곳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배가 고팠기에 그들은 삶을 찾아 행동을 결단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위기가 곧 기회라고 한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죽겠다고 포기하지 말고 어렵다면 다른 살 길을 찾아보세요. 더 기도하셔야 합니다. 어려움을 통해 더 큰 축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싸인(sign)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은 그 네 문둥병자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의 극단적인 결단은 자기들도 살고, 사마리아 성도 살렸습니다. 대적들에게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문둥병은 어떤 병입니까? 손가락 발가락이 썩어빠져 나가고 온 몸의 살이 문드러져 떨어져 나갑니다. 발가락이 없으니 걸음도 빨리 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취약점이 있는 그들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아니 그들의 결단과 용기는 하나님의 후원을 받을 만 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사람을 도우시고 쓰신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아마 네 문둥이가 굶주려 힘이 없으니 서로 의지하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아람 진영을 향해 나아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발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은 지축이 흔들리는 것 같은 소음이 나게 하여 아람 군들의 간담을 서슬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상상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오게 하여 자기들을 치려오고 있다는 공포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몰살당하느니 도망하자고 말과 나귀 및 모든 보급품을 고스란히 버려둔 채 몸만 빠져 달아나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도, 물도 무서운 무기도 얼마든지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약하디 약한 네 사람의 문둥병자의 살기 위해 전진하는 발자국을 더 위력 있게 사용하셨습니다. 그 시간은 황혼 무렵이었습니다.(7절하) 어두어도 계속 걸으세요. 하나님은 그 어두움도 이용하셨습니다.

(3) 여러분, 무엇인가 해 보려고 움직여 보십시오. 다시 시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무언가 해 보려는 사람의 의지와 행동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쓰지 않고 산 사람을 사용하십니까? 죽은 사람이라도 필요하시면 살려서 쓰시지 죽은 시체에게 무슨 일을 시키겠습니까? 정신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영이 살아야 합니다. 문둥병자들처럼 죽겠어도 일어나세요. 그리고 걸으세요. 산다는 희망만 있으면 칼과 총이 없어도 적군을 무찌릅니다. 마귀를 물리칩니다. 부자가 됩니다. 그들은 아람진에 이르러 실컨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의복을 내일을 위해 챙길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횡재했습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오늘 문제(현안)뿐 아니라 미래 문제까지 보장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네 문둥병자들은 훌륭한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1) 9절은 우리가 꼭 암송하고 그대로 행해야 할 복음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노곤했겠습니까? 발들이 부릅터 피고름이 흘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기들만 배부르다고 누워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때 굶주려 죽어가는 성안 사람들을 걱정했습니다. 성안 사람들은 평상시 자기들을 멸시했을 수 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배고픔을 자기들 고통처럼 생각했습니다. 밝은 아침까지 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벌을 주실 것이라는 양심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더욱 귀한 것은 그들 중의 한 사람만 나는 못 간다고 누워 버렸으면 성 사람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네 문둥이는 뜻이 일치했습니다. 힘이 없고 약해도 뜻만 일치하면 안 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밤은 캄캄하고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두움을 뚫고 다시 사마리아 성에 이 기쁜 소식을 전하러 갔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여러분도 천국 복음을 그런 기쁨으로 전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고달프고 피곤해도 이 문둥병자들 보다는 나으실 것입니다. 불도 없고 캄캄한 그 밤에, 길도 없는 그 밤에, 그들은 다시 되돌아가서 그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지금 세상은 꼭 먹을 육의 양식이 없어 싸우고 죽어가는 것만은 아닙니다. 영의 양식이 없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영이 굶주려 볼 것을 못 보는 것입니다. 영이 굶주려 사랑이 식어가고 은혜가 고갈되니 만족을 모르고 기쁨이 없어 아귀(餓鬼) 다툼질을 하는 것입니다. 영토분쟁이나, 경제 분쟁은 표면적인 현상이지 정작 근본 문제는 영의 양식의 고갈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생활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은혜스런 교인들은 작은 일에도 감사하고 생활이 어려워도 기쁘게 삽니다.  그러나 은혜를 상실한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과욕만 부리며 감사와 만족을 모르고 분쟁만 일삼은 그런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무조건 교회만 다 좋다고 미봉만 하려 하지 말고 이제는 교회도 솔직해져야 합니다. 교회가 정화되면 세상도 정화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 사회정화보다 교회정화가 시급함을 우리는 감지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머뭇거리지 말고 사마리아 성으로 가야 합니다. 네 문둥이는 어떤 핑계도 없었습니다. 고달픈 것도, 어두움도 핑계거리가 아니었습니다. 무조건 갔습니다. 어깨동무를 하고 마음이 하나되어 갔습니다. 죽어가는 도성, 굶주림의 도성 사마리아로 갔습니다. 기쁜 소식, 생명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갔습니다. 그들을 살리려는 소망 때문에 기쁨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우리도 갑시다. 저 세상으로--

(2) 믿지 못하는 성안 사람들(10-15절)

문둥병자들이 전한 소식은 성안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어떻게 그 많던 아람군인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갔단 말인가? 그 많은 군수 물자를 모두 놓아둔 채 고스란히 물러갔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전하는 사람이 고관이나 귀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목숨 같았던 문둥이들이 무슨 그런 소식을 알고 전할 수 있단 말인가? 누가 그들의 꿈같은 이야기를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복음을 이 세상 사람들이 어찌 쉽게 받아 드리겠습니까? 계속 죽기만 했던 사람들이 어찌 부활의 소식을 믿겠습니까?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전1:27)고 하신 것처럼 평상시 별 볼일 없던 예수쟁이 말을 그리 쉽게 받아 드리겠습니까? 그런다고 안 전하면 어떡합니까?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성안 사람들이 죽어라고 달려 온 네 문둥이 들에게는 매우 야속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잘한 것입니다. 할 일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할 일을 합시다. 기쁜 소식을 열심히 전합시다.

(3) 도저히 문둥병자들의 전하는 말을 믿지 못한 그들은 오해로 받아드렸습니다.

자기들을 성 밖으로 나오게 하려는 아람 군대의 유인책으로 곡해 했습니다. 여러분도 진실이 거꾸로 받아들여질 때 기가 막히지요. 우리 예수님을 생각 해 봅니다. 하여튼 하나님은 대단하십니다. 계속 말씀하시다 그래도 안 들으니 직접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포기할 줄 모르신 분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끝까지 그렇게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도 인간들은 오히려 자기를 살리려 오신 분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래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다시 살아나 직접 우리도 부활할 것을 몸으로 웅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틀림없이 그 하나님은 약속하신대로 다시 재림하실 것을 분명히 믿습니다. 너무도 꿈같은 소식이기에, 문둥병자들이 전한 소식이기에 도저히 믿기지 않은 여호람 왕과 백성들은 곡해를 하면서도 한편 솔깃했습니다. 그래서 신복을 한명을 보내서 사실을 확인해 보았더니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군수물자가 길에 가득한 것을 목격하고 숨이 차서 돌아와 이 사실을 전하자 성안이 발칵 뒤집어지고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우리 가정, 우리 고장을 그렇게 만듭시다.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3. 성문에서 밟혀 죽은 장관(16-20절)

사람은 항상 남의 말을 젊잖하게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창조 주 하나님의 말씀을 조심성 있게 들어야 합니다. 엘리사가 예언할 때 물론 이해는 되지만 한 장관이 건방지게 받아드리지 않고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의심하며 부정했었습니다.(왕하 7:2절) 그런데 엘리사의 예언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그 장관에게 어떤 예언을 했었습니까? 부정적인 그 장관에게 “당신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 못하리라” 예언한대로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말이 씨가 됩니다. 우리는 함부로 불신앙적인 말을 하거나 삐딱한 표현을 하면 안 됩니다. 생각 속에 마귀가 들어가고 그 생각이 그 사람을 병들게 하고 또 죽게 합니다. 성중 사람들이 일시에 쏟아져 먹을 것을 취하려 갈 때 그 장관은 성문에서 밟혀 죽고 말았습니다. 끝으로 하나님은 문둥병자들을 어떤 무기보다 강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작은 나라도 하나님께 어떻게 쓰여질 지 모릅니다. 남을 살리는 일에 쓰여 지는 사람이 됩시다. 숫한 기적과 이적을 보여 주었어도 계속 믿지 못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불신하지 말고 제발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말을 하되 부정적인 말은 하지 맙시다. 그런 말은 되도록 삼키시고 입 밖에도 나오지 말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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