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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의 최후(왕상22:29-4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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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2,258회 작성일 11-10-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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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아합은 미가야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람과 전쟁을 벌였으며 미가야의 예언대로 길르앗 라못 전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37절)


1. 길르앗 라못으로 행진한 두 왕(29절)

(1) 하나님의 선지자를 미워한 아합 왕은 자기의 고집을 계속 주장했고, 400명의 거짓 선지자들의 아첨하는 예언만 믿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믿지 않았기에 결국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알아보았던 여호사밧(남왕국의 왕)도 고분고분한 성격 때문에 강력히 반대하지 못하고 아합 왕과 함께 어물어물 출정했습니다. 바나바도 그 성격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2:13절) 여호사밧 왕은 자기 나라에서 그런 협잡에 속아보지 않았고 또  두 왕이 성공하리라는 말과 패한다는 말이 400대 1이기에 아합의 기만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사악한 아합의 계교(30절)

아합은 자기는 병사처럼 변장하고 여호사밧 왕은 왕복을 입은 채로 출정하게 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여호사밧에게 총 지휘를 하도록 경의를 표한 것 같지만 아합에게는 나쁜 계교가 있었던 것입니다.

1) 선지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자기는 변장하여 위험을 피하고 하나님의 눈과 추적하는 자들의 표적을 벗어나므로 선지자의 경고(20절)가 허위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2) 선량한 여호사밧을 바보로 만들려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하나님을 신봉하므로 이합은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목자가 망해야 된다는 미가야의 예언이 맞는다면 여호사밧을 목자로 세워 죽어도 그가 죽게 하려는 얄팍한 속셈이었습니다. 남을 방패삼아 자신의 안전만을 꾀하려는 간악한 계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게 진실하지 못한 자가 어떻게 친구에게 진실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이 타락하고 명예로움이 전혀 없는 사람과 조금의 유사성이 있다고 하여 합류하는 것은 항상 위험부담이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조심합시다.

(3)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아합이 약삭빠른 계교로 경건한 여호사밧을 위험에 빠뜨렸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아람 왕은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고 명령했습니다.(31절) 이스라엘 왕 아합을 표적 삼아 공격하게 했던 것입니다. 벤하닷은 전에 아합이 자기를 살려 준 사실(왕상20:34절)은 잊어버리고 자기를 낳아준 어미를 뜯어먹는 독사의 새끼처럼 아합을 노렸습니다. 그래서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만 집중 공격을 당했습니다.

1)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위험에 직면케 함으로 아합과 동맹을 맺은(4절) 잘못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여호사밧을 위경에서 구해주므로 여호사밧을 미워는 하였어도 버리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게 했습니다.

다행히 여호사밧을 쫓던 지휘관들이 아합이 아닌 것을 알고 여호사밧 추격을 중지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여호사밧을 떠나가도록” 하신 것이라 했습니다.(역대하 18:31절) 여호사밧이 소리를 질렀다고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신앙심에서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과 같다”(4절)고 우정을 맹세했던 아합은 여호사밧을 전혀 구해 줄 생각조차 않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 진정한 친구입니다.


2. 전투 중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아합(34절)

왕복을 입은 여호사밧은 안전했지만 사병으로 변장한 아합은 오히려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습니다. 아무리 가면을 쓴다고 해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어떤 변장을 해도 주의 손이 모든 적을 찾아냅니다.

(1)아합이 생포 되었더라면 벤하닷이 살려 주었을지 모릅니다.

차라리 왕복을 입었더라면 생포 가능 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약은 꾀를 써서 병사의 옷을 입었기에 활에 맞아 죽게 되었으니 오히려 약은 꾀가 그를 죽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죽이기로 한자이기에 자기가 자기의 함정을 팠던 것입니다.

(2) 화살은 바로 정곡을 맞추었습니다. “아합의 갑옷 솔기”(옷 따위를 만들 때 두 폭을 맞대고 꿰맨 줄)를 쏜 것인데 이 죽음의 화살이 뚫고 갈 곳은 그 곳 뿐이었습니다. 어떤 갑옷도 하나님의 분노의 화살을 막을 수 없습니다. 강철 속에 범인을 집어넣어도 매일반입니다.

(3) 군대는 적에게 의해 분산되고 왕의 명령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36절)

그것은 17절에 미가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였습니다. 아합은 활에 맞아 바로 죽지 않고 전쟁의 과정을 보면서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아합은 그가 저질렀던 악행들을 떠 올리며 상처보다 더 아픈 고통속에서 죽어갔을 것입니다. 시드기야의 쇠뿔이 아람 사람이 아닌 자기를 찌르고 있음과 미가야 선자자의 에언이 실현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3. 아합왕의 시체가 사마리아 성에 장사 됨(37절)

드디어 나봇의 피 값이 치루어졌습니다.(삼상21:19절) 예언대로 사마리아 웅덩이로 아합이 탔던 병거를 씻으려고 왔을 때 개들이 피를 핥았습니다. 개가 핥는다는 것은 죽은 후에도 죄 있는 심령에 모욕을 주며 괴롭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아합은 악명도 높았지만 반면 정치적으로 많은 업적도 남겼습니다. 특히 그는 남왕국의 솔로몬 궁전과 견주기 위하여 사마리아에 상아궁을 건축하였습니다. 아합은 이렇게 그의 생애를 마감했으니 하나님을 떠나 헛된 우상을 쫓아가던 인생 말로가 어떠함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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