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의 반역과 아마사의 죽음(삼하20:1-13절) B.C 98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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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바의 반역(1-2절)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세바라는 베냐민 지파에 속한 불량자 하나가 다윗을 따라가 보아야 자신들이 누릴 분깃이나 기업이 없다고 나팔을 불며 더 이상 다윗을 추종하지 말 것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선동하며 반역을 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삼하7:11-16절)을 멸시한 행위였습니다.
(1) 시므이나 세바는 에브라임 산지의 거민이었으며(21절 참조) 사울의 친척들로 그들은 평상시 은근히 원한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압살롬의 반역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기대했으나 허무하게 무너지자 다윗을 따라가야 푸 대접 받을 것을 제멋대로 생각하고 그러한 무모한 반역을 했던 것입니다. 사탄의 후예는 상속받을 분깃이 없기 때문에 메시야의 왕국을 대적하며 멀리합니다.(시2:1-3절참조) 그럴때 하나님은 웃으신다고 했습니다.(시2:4절)
(2) 그들은 다윗 왕을 모셔올 때 유다 장로들에게 시비를 걸었었습니다.
자기들은 다윗왕의 복위를 원치 않았으며 사태만 관망하고 있었다가 유다지파가 앞장 서 모셔 오자 자기들의 숫자가 더 많은데 왜 의논도 하지 않았느냐? 그것은 자기들을 멸시한 것이 아니냐? 고 시비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유다 사람들의 공로를 더 인정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하19:43절)
(3) 어느 단체에나 세 부류의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①일꾼 ②구경꾼 ③방훼꾼입니다.
대개 남이 봉사하고 수고할 때 구경만하고 있던 사람들이 트집을 잡고, 방훼꾼들은 처음부터 불평하고 일이 잘 되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세바를 따르던 사람들은 ②와③에 해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바는 압살롬의 반란에 중요 인사였으며 지지파 였으리라 생각됩니다.
(4) 여하튼 시비는 금물입니다.
“다투는 시작은 방축에서 물이 새는 것 같은 즉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시비를 그쳐야 합니다”(잠17:14)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사건을 일으킵니까? 악용되는 말이 평화를 파괴합니다. 유다지파가 "왕은 우리의 종친인 까닭이다"(42절중) 라는 말에 이스라엘의 반발심을 일으키기도 했으리라 추측됩니다.
(5) 사람들은 흔히 극단에서 극단으로 급선회 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다지파에게 왕을 도적하여 갔다고 자기들도 심히 왕을 경외하는 것 같더니 숨도 쉬기전에 우리는 그에게 (다윗왕) 속하지 않았으니 다윗을 추종하지 말라는 세바의 선동에 금방 매료되어 다윗을 쫓지 않았습니다.(2절) 이것이 인심이고 군중심리입니다.
2. 별실에 감금된 후궁들(3절)
다윗은 예루살렘 본궁에 돌아와 왕궁을 지키게 했던 후궁들을 잡아 별실에 가두고 그들이 죽는 날까지 생과부로 살게 했습니다. (3절) 삼하16:21절에 보면 모사 아히도벨이 압살롬을 충동하여 아버지 다윗에게 철저히 도발하는 결심을 굳히도록 그 후궁들과 동침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억울한 희생자도 같으나 그들의 일면에는 다윗이 돌아오지 못할 것으로 알고 압살롬의 음욕에 쉽게 놀아났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죄는 어두운 곳에 장사되고 의와 분리된다는 영적 교훈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3. 아마사의 죽음(4절-13절)
아마사는 요압의 이종형(이모의 아들)이고 (17:25절) 다윗왕의 조카였습니다. 아마사는 처음에 반란군 참모였습니다. 그러나 마하나임에서 그를 만나자 용서하고 요압대신 그를 군장으로 삼았습니다.(17:25상) 다윗은 아마사의 마음을 돌리려는 호의였으나 요압에게는 질투와 경쟁의식의 유발을 초래하여 나쁜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1) 아마사는 다윗 왕에게 세바의 반란을 진압할 군대를 급속히 소집하라는 허락을 받았습니다.(4절)
원래 유다 사람들은 다윗의 승리를 고대하기는 했지만 예루살렘에 왕을 모시는 일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전투에서는 후방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사는 왕이 정한 기간에 소집에 다하지 못하고 지체했습니다.(5절)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일에는 적극적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2) 다윗은 세바의 반란이 압살롬의 반역보다 더 위험함을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아비새에게 신복들을 데리고 가서 세바가 성으로 피할 시간을 주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요압 부대와 아비새 부대는 세바를 쫓으려고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기브온 큰 바위 곁으로 갔을 때 아마사가 맞으러 나왔습니다.(8절)
(3)아마사가 살해 됨
그때 요압은 칼을 뽑기 좋은 곳에 꼽고 아마사에게 인사를 나누면서 오른 손으로 수염을 잡고 입을 맞추는 체 하며 재빨리 칼을 뽑아 아마사의 배를 삘러 창자가 터져 나와 죽었습니다.(10절 상) 군인으로서 더욱 장군으로서 너무도 비열한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입을 맞추며 팔기 위한 군호를 삼았던 가룟유다가 생각납니다. 사실 다윗은 요압이 너무 자기 공만 생각하고 방자 한듯 하여 견제하려고 아마사에게 군장을 시켰던 것입니다. 요압은 전에도 다윗의 명을 무시하고 아브넬을 죽였으며 압살롬도 살해했습니다.(18:14절) 요압은 변덕스런 아마사를 군장으로 세운 것에 모욕감을 느끼고 그를 살해 할 기회를 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압의 행동은 왕실을 무시한 오만한 처사일 뿐 아니라 모반죄에 버금가는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 요압이 그런 방법으로 아브넬을 죽이고 처벌받지 않았기에 용기를 얻어 또 이런 대범한 살인을 한 것 같습니다.
자기의 소행에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없는 상습적이고 저질적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곧 다윗왕에 대한 불만의 노출이기도 했습니다.
(5) 요압을 지지하던 소년 하나가 아마사의 죽음을 감추려고 옷으로 덮어 가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피흘린 곳을 덮었다고 세상의 눈으로부터 숨겨지겠습니까? 원한의 소리가 하나님 귀에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요압의 행위는 따지고 보면 다윗이 우리아를 죽일 때 요압을 이용했기 때문에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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