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실래에 보상한 다윗(삼하18:31-43절)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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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실래에 보상한 다윗(삼하18:31-4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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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412회 작성일 10-11-17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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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르실래는 다윗이 마하나임에 피신 해 있을 때 식량을 비롯한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여 다윗 일행을 대접하였습니다. 이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다윗은 바르실래에게 예루살렘왕궁으로 갈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1. 다윗을 존경한 바르실래

그가 다윗을 존경한 것은 다윗이 선한 사람이어서 뿐 아니라 의로운 주권자이므로 존경했습니다. 당시 바르실래는 80세 노인이었으나 거부였습니다. 그는 대범한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압살롬의 반란이 성공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의로운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바로 쓸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재산을 주신 것은 선을 행하라고 주신 것 외에 다른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그는 다윗이 부담스러운 위치였지만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했고 존경할 자를 존경했습니다.(롬13:9)


2. 바르실래를 왕궁으로 초대함(33-37절)

다윗은 그와 동행 해 주면서 은혜를 입은 사람과 기쁨을 나누려고 그를 초대했습니다. 다윗은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1) 당장 다윗은 보상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고 그의 인격 전체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보통 왕이나 정치인들처럼 받은 은혜를 그대로 삼켜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바르실래는 이제 나이 80이 되어 늙었으니 오히려 왕께 누(累)를 끼칠 것을 염려하며 사양했습니다. 선한 사람은 남에게 폐가 될만 한 요구나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부모의 묘 곁에서 죽었으니 자신의 김함(아들이나 손자)에게 그 축복을 달라고 제안했습니다. 그것도 부담을 느끼시지 말고 왕의 처분대로 하여 달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왕의호의에 감사하면서 그들이 다윗의 왕가에 도움이 되기를 원하는 충심에서 나온 배려였다고 봅니다.

(2) 이 내용은 성도들에게 하늘나라가 상속될 때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한대로 보상을 받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봉사한 것과 상급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봉사한 사람은 몰랐으나 주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마25:27)

(3) 바르실래와 작별한 다윗(39절)

극구 사양하는 바르실래에게 다윗은 입을 맞추고 복을 빈 후에 그를 자기 성으로 돌려보냈습니다.(39절) 다윗은 김함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다윗은 38절에 약속한대로 시행했으니 예레미야 41:17절에 보면 다윗이 김함에게 베들레헴 근처 땅을 주었으니 그의 가족이 오랫동안 그곳에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유다와 이스라엘의 충돌(삼하19;40-43절)

(1)다윗은 유다 백성들에게 호행(扈行)을 받으며 요단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러나 길갈까지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절반이나 (장로들과 귀족들)왕을 영접하러 와서 그의 손에 입 맞추고 다윗 왕이 돌아옴을 환영했습니다.

(2) 그러나 그들이 늦게 왔기 때문에 유다 사람들에게 왕을 쫓는 우선권을 빼앗겼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일로 유다 지파 사람들과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충돌이 생겼습니다. 유다지파 사람들은 왕의 지친(至親)인 까닭인데 어찌 분내느냐?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혜택이나 이권을 얻었느냐고 따졌고(42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들은 왕에 대하여 십분(유다와 시므온 지파를 제외한 열 지파란 뜻)을 가졌는데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왕을 모셔 오는데 의논하지 않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들의 우리는 의무를 다 했을 뿐인데 왜 시비하느냐고 논박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3)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수였습니다. 그들은 사실 입이 열이라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을 추방하는데도 다수의 힘으로 앞장섰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왕을 경배하고 모셔오는 일에도 앞장서려고 샘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참고 견디었기에 선한 사람은 결국 양쪽에서 신임을 받았습니다. 선한 사람은 어느 쪽에서 신임을 받습니다. 또 싸움은 어디로부터 옵니까? 모욕감이나 초조감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대부분이 등한시한 때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등한 시 했던 점을 고려하지 않고 유다 사람들이 의논하지 않았다고 시비했습니다. 유다 사람들은 옳은 일을 했기에 이스라엘이 아무리 다수라도 그들의 해명은 더 강경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43절) 우리는 이기적인 다수보다는 오실 예수님을 위하여 오늘 나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를 얼마나 충성스럽게 수행하는 가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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