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꾼 요셉(창3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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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꾼 요셉(창37:1-11)
아브라함의 증손자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내려가 400년간 체류하게 만들었던 주인공 요셉의 생애가 본장에서부터 장장 14장에 걸쳐 전개됩니다. 앞서 소개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실패와 좌절을 맛 보았던데 비해 요셉은 한 인간으로서 너무도 모범적인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겪은 인생 여정이 마치 예수의 공생애와 너무도 흡사하기에 흔히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본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偏愛)와 기이한 꿈으로 인해 형제들의 미움을 사는 그의 초기 생애를 보여주는데 그 꿈들은 단순히 자연적인 꿈이 아니라 요셉의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예시(豫示)해 주는 일종의 하나님의 특별 계시(啓示)였던 것입니다.
창세기 37장-50장의 주제는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다음 세가지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앞서 3대를 통하여 씨를 뿌리시고 맺게 하신 창세기의 열매로서 요셉의 역사(歷史)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사는 자의 생애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운명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나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사는 요셉과 같은 신앙인으로 만드십니다.(창45:8, 롬8:28, 빌4:11-13)
(2)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도 함께 하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종살이 할 때도(39:2), 옥중에서도(40:8), 바로의 꿈을 해석 할 때도, 총리가 될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41:16,25, 38-39)
(3) 요셉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환란은 아버지 야곱이 당한 환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죄값으로 당한 환난이었으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요셉의 죄가 지적된 곳이 없습니다. 요셉은 무죄했으면서도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눅24:44, 요5:46등) 모세의 기록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요셉의 기록도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1. 형들에게 미움 받은 요셉(1-4)
왜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습니까? 그것은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요셉을 더 사랑했을까요? 요셉은 야곱이 너무도 사랑하여 14년간이나 머슴살이를 해 주면서 얻은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셉이 하는 행위가 아버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비싼 세마포천으로 지은 채색옷을 입혀서 길렀고 아버지 야곱은 위로 열 형을 제쳐 놓고 요셉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상속자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또 요셉은 정직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과실(過失)을 아버지에게 고(告)했습니다.(2절)
거기에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의 꿈까지 꾸고 당연한 듯 이야기 하고 있으니 어찌 배다른 형들이 그러한 요셉을 미워하며 쥐어박지 않았겠습니까?
유대인들도 그런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오직 미웠으면 죽일 생각까지 했겠습니까?(20절참조)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하나님의 선언이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으면 애굽에 팔리지 않았을 것이며 어찌 그 하나님의 선언하신 말씀이 실현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요셉의 운명이 아니었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명을 탓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내일의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의지(意志)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어 우리의 죄가를 치루게 하시기 위한 속량제물(贖良祭物)로 죽게 하신 것입니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에는 인간들이 오만하여 예수님을 죽게 했다는 인본주의적인 그럴싸한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오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운명론에 빠져 낙심하지 말고 섭리주의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의 꾼 꿈의 의미
요셉의 꾼 꿈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1) 형들이 묶은 곡식단들이 요셉의 일어선 곡식단에 절했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노기가 발하여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미워했습니다.
(2)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고 그때 아버지와 형들이 요셉을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계시(啓示)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셉의 꿈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의 황당무개한 공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면 꿈의 내용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길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그 말씀에 붙들리게 됩니다. 요셉은 꿈을 꾼 후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꿈의 의미가 궁금해서 형들의 해석을 듣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건방진 동생의 과대망상증으로 치부했습니다.(8절) 우리는 여기서 꿈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목축업을 하는 그들에게 곡식단의 꿈의 꾸게 한 것은 분명 곡식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심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의 죄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세겜에서 어떠한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을 하였습니까?(창34:26-29참조) 큰 아들 르우벤은 야곱의 첩 빌하와 통간까지 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아들들의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아서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기에 모른체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야곱 자기로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으로 요셉을 희생시키므로 그들의 죄를 들추어 내고 회개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 됩니다. 요셉을 통하여 그들은 구원하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두 번째 꿈도 단순히 부모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의미보다는 요셉이 고생 끝에 영광을 누릴 영광을 보여주는 것만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영원한 지위를 영광의 자리에 앉을 것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그 앞에서는 죽은 라헬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이 살아서 영원토록 경배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비젼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그는 소년때 꾸었던 꿈에 붙들려서 말할 수 없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꿈을 해석하므로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미움 받았고 꿈 때문에 고생했고 꿈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모진 고생을 참을 수 있었고 결국 꿈 때문에 존귀해졌습니다. 요셉은 반드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주신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①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단번에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으나 구체적인 의미는 알지 못했기에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며 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만은 믿었기에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그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요셉이 감옥의 죄수에서 총리대신이 된 사실은 그가 감옥을 통과하여 꿈이 성취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죄의 쓴 맛을 못 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나라에서 영광스러워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주신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그 꿈(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결국 이루게 하여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말씀을 붙잡고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사람은 높아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용되기 위해서는 나도 잃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내려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박수는 안 쳤지만 산해 진미를 먹으며 연락하고 있던 사람이 천국에 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세상에서 욕심스럽게 내것 다 챙기고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은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작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요셉처럼 하나님 말씀 때문에 온갖 고난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고난의 쓴잔을 마셨기에 부홀의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증손자이며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 내려가 400년간 체류하게 만들었던 주인공 요셉의 생애가 본장에서부터 장장 14장에 걸쳐 전개됩니다. 앞서 소개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인간적인 연약함 때문에 실패와 좌절을 맛 보았던데 비해 요셉은 한 인간으로서 너무도 모범적인 믿음의 삶을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겪은 인생 여정이 마치 예수의 공생애와 너무도 흡사하기에 흔히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로 꼽힙니다.
본문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偏愛)와 기이한 꿈으로 인해 형제들의 미움을 사는 그의 초기 생애를 보여주는데 그 꿈들은 단순히 자연적인 꿈이 아니라 요셉의 이스라엘 민족의 장래를 예시(豫示)해 주는 일종의 하나님의 특별 계시(啓示)였던 것입니다.
창세기 37장-50장의 주제는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고 특히 다음 세가지 내용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1) 앞서 3대를 통하여 씨를 뿌리시고 맺게 하신 창세기의 열매로서 요셉의 역사(歷史)를 통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사는 자의 생애가 어떤 것인가를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운명주의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서나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를 믿고 사는 요셉과 같은 신앙인으로 만드십니다.(창45:8, 롬8:28, 빌4:11-13)
(2)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은 항상 우리와도 함께 하심을 확신시켜 줍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신 하나님은 애굽으로 내려갈 때도, 종살이 할 때도(39:2), 옥중에서도(40:8), 바로의 꿈을 해석 할 때도, 총리가 될 때도 함께 하셨습니다.(41:16,25, 38-39)
(3) 요셉의 생애를 통해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환란은 아버지 야곱이 당한 환난과는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죄값으로 당한 환난이었으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요셉의 죄가 지적된 곳이 없습니다. 요셉은 무죄했으면서도 많은 환난을 겪었습니다. 오히려 거룩하게 살려고 할수록 더 많은 고생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의 고난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을 미리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눅24:44, 요5:46등) 모세의 기록은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라고 설명한 것처럼 요셉의 기록도 예수님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1. 형들에게 미움 받은 요셉(1-4)
왜 형들이 요셉을 미워했습니까? 그것은 야곱이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요셉을 더 사랑했을까요? 요셉은 야곱이 너무도 사랑하여 14년간이나 머슴살이를 해 주면서 얻은 아내 라헬이 낳은 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요셉이 하는 행위가 아버지 마음에 쏙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는 비싼 세마포천으로 지은 채색옷을 입혀서 길렀고 아버지 야곱은 위로 열 형을 제쳐 놓고 요셉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상속자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또 요셉은 정직하여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의 과실(過失)을 아버지에게 고(告)했습니다.(2절)
거기에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의 꿈까지 꾸고 당연한 듯 이야기 하고 있으니 어찌 배다른 형들이 그러한 요셉을 미워하며 쥐어박지 않았겠습니까?
유대인들도 그런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오직 미웠으면 죽일 생각까지 했겠습니까?(20절참조)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창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게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그러한 하나님의 선언이 요셉의 생애를 통하여 실현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미움의 대상이 아니었으면 애굽에 팔리지 않았을 것이며 어찌 그 하나님의 선언하신 말씀이 실현 되었겠습니까?
그것은 요셉의 운명이 아니었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운명을 탓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문제를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고 내일의 승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의지(意志)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죽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어 우리의 죄가를 치루게 하시기 위한 속량제물(贖良祭物)로 죽게 하신 것입니다.
통일교의 원리강론에는 인간들이 오만하여 예수님을 죽게 했다는 인본주의적인 그럴싸한 해석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오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운명론에 빠져 낙심하지 말고 섭리주의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요셉의 꾼 꿈의 의미
요셉의 꾼 꿈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1) 형들이 묶은 곡식단들이 요셉의 일어선 곡식단에 절했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듣고 형들은 노기가 발하여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고 미워했습니다.
(2)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요셉에게 절했습니다
부모와 형제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고 그때 아버지와 형들이 요셉을 꾸짖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계시(啓示)의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면 요셉의 꿈을 과대망상증에 걸린 사람의 황당무개한 공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꿈을 주시면 꿈의 내용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길 뿐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 그 말씀에 붙들리게 됩니다. 요셉은 꿈을 꾼 후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그 꿈의 의미가 궁금해서 형들의 해석을 듣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은 건방진 동생의 과대망상증으로 치부했습니다.(8절) 우리는 여기서 꿈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목축업을 하는 그들에게 곡식단의 꿈의 꾸게 한 것은 분명 곡식과 관련해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심을 의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침묵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요셉의 형들의 죄를 다 알고 계십니다. 그들은 세겜에서 어떠한 살인과 간음과 도둑질을 하였습니까?(창34:26-29참조) 큰 아들 르우벤은 야곱의 첩 빌하와 통간까지 했습니다.
이때 야곱은 아들들의 죄를 죄로 생각하지 않아서 침묵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들은 너무도 사랑했기에 모른체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야곱 자기로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었기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앞으로 요셉을 희생시키므로 그들의 죄를 들추어 내고 회개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셉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모형이 됩니다. 요셉을 통하여 그들은 구원하신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하여 온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두 번째 꿈도 단순히 부모와 형들이 요셉에게 절한다는 의미보다는 요셉이 고생 끝에 영광을 누릴 영광을 보여주는 것만을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아가서 궁극적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영원한 지위를 영광의 자리에 앉을 것을 보여주는 계시입니다. 그 앞에서는 죽은 라헬 뿐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이 살아서 영원토록 경배하며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비젼
요셉은 꿈의 사람입니다. 그는 소년때 꾸었던 꿈에 붙들려서 말할 수 없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러나 꿈을 해석하므로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기까지 했습니다. 요셉은 꿈 때문에 미움 받았고 꿈 때문에 고생했고 꿈 때문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꿈을 버리지 않았기에 모진 고생을 참을 수 있었고 결국 꿈 때문에 존귀해졌습니다. 요셉은 반드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에 대한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주신 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①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 단번에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꿈을 꾸었으나 구체적인 의미는 알지 못했기에 무척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며 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만은 믿었기에 인생의 밑바닥에서도 그 하나님을 붙들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아지려면 낮아져야 합니다. 요셉이 감옥의 죄수에서 총리대신이 된 사실은 그가 감옥을 통과하여 꿈이 성취된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죄의 쓴 맛을 못 본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나라에서 영광스러워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꿈을 주신 하나님은 점진적으로 그 꿈(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사람에게 결국 이루게 하여 주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②말씀을 붙잡고 바닥으로 내려가지 않는 사람은 높아질 수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 사용되기 위해서는 나도 잃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내려가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박수는 안 쳤지만 산해 진미를 먹으며 연락하고 있던 사람이 천국에 갔다면 얼마나 부끄럽겠습니까?
세상에서 욕심스럽게 내것 다 챙기고 아무것도 잃지 않은 사람은 천국잔치에 참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작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 요셉처럼 하나님 말씀 때문에 온갖 고난을 받은 사람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 위에서 고난의 쓴잔을 마셨기에 부홀의 영광을 차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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