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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간의 상봉(창4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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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858회 작성일 06-12-10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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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간의 상봉(창42:1-25)



요셉이 해몽했던 내용대로 7년 대풍 후에 7년간 극심한 기근의 때가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지혜로운 경제 정책으로 애굽은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했으니 이 소식이 요셉의 아버지 야곱의 귀에도 들어갔던 것입니다. 당시 야곱에게는 66명의 식구가 있었습니다.(창46:26) 기근으로 이 대가족이 굶어 죽게 되어 야곱은 12번째 베냐민을 제외한 10명의 아들들에게 애굽에 가서 양식을 구매 해 올 것을 지시하여 10명의 형들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극적으로 요셉을 만나 일어난 드라마틱(dramatic)한 이야기 내용입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요셉은 과연 하나님께서 쓰시는 대인(大人)임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당장 형들에게 복수하거나 아니면 붙잡고 울면서 그동안 고생했던 한(恨)이라도 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기를 몰라보는 형들 앞에서 우선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끝째 베냐민 걱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베냐민도 자기처럼 왕따 당하고 혹 해(害)나 입지 않았는지 걱정되어 그 점부터 시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형들을 간첩으로 몰았고 세 번째 형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베냐민을 데려오면 식량을 팔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①요셉이 형들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꾼지 20년이란 세월이 흘러 늦은 감이 있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어김없이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②죄는 반드시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했듯이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무서워해야 하겠으며 혹 죄를 범했으면 빨리 회개해야 하겠습니다.

1. 귀가 번쩍 뜨이는 희망의 소식
말이니 그렇지 66명의 대가족이 기근을 만나 먹을 것이 없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해결방법은 전혀 없습니다. 천지사방이 다 배를 곯고 있는데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귀에 애굽에는 곡식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으니 꿈같은 한 가닥 희망이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소식만 들었다고 해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식량을 구해 와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식들을 파송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득 과거 잃어버린 아들 요셉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애굽까지는 먼 길 일 뿐 아니라 위험한 길입니다. 사랑했던 아내 라헬에게서 낳은 피부 치는 이제 베냐민 하나뿐입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제외하고 10명만 보냈으리라고 추측됩니다. 요셉처럼 해(害)를 당할 까 그 와중에도 걱정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에 대한 상처가 얼마나 컸음과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도 영적으로 극심한 기근에 처해있는 자신과 가족 이웃들을 위하여 그들을 구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관망만 해서는 그들을 살릴 수 없습니다. 힘들어도 두려워도 그들속에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먹고 소성케 해야 합니다.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소식은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야곱의 가족에게는 참으로 눈이 번쩍 떠지는 희망의 소식이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결국 죽게 되는 우리들도 “영생할 수 있다”는 소식에 영의 눈이 번쩍 뜨여야 합니다. 죽음을 그만큼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너무도 확실한 운명(殞命. death)이 아닙니까? 우리는 바울사도를 통해 말씀하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하신 말씀을 들으면 귀가 번쩍 뜨여야 합니다. 우리가 죽지 않고 영원히 살길이 있다는 이 소식 이상 인류에게 더 즐겁고 기쁜 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가만히 있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구경만 해서는 안 됩니다. 믿어야 합니다. 또 이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2. 요셉 앞에 머리 숙인 형들(3-8)
자기를 죽이려고 했다가 애굽에 팔아 치운 형들이 요셉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것도 요셉은 애굽의 총리 대신이요. 형들은 식량을 구매하기 위해 허락을 받으러 온 장사꾼 신세입니다. 그때 요셉의 심경이 어떠 했겠습니까? 웃을수도 울 수도 없는 쓰라린 감회가 파노라마처럼 교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대인 요셉은 그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께서 계시로 꾸게 해 주셨던 꿈이 생각났던 것입니다. 2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열한개의 곡식단이 자기에게 절하던 그 꿈 내용이 떠올라 과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이렇게 정확하다는 사실을 실감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결정적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야 합니다. 곡식문제로 어려울 때 요셉 자신이 해결해 주어야 한다고 꿈의 해석을 그때 다시 한번 깨닫고 서러웠던 감정은 햇볕에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의 빛이 비취면 모든 고통이 이렇게 사라집니다. 아픔도, 미움도, 서러움도 사라집니다. 믿음의 사람은 항상 섣불리 생각하면 안됩니다. 공연한 감정풀이나 우쭐하여 보복하려는 마음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때가 가장 위험한 때인 것입니다. 그때 요셉은 자기를 이곳에 보내고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고 살리기 위함이셨고 세세년년 살아있는 설교로 남기기 위함이셨음을 또한 오늘 우리들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20년 전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할 때 형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는 자가 되겠느냐?” (37:8)하고 경멸하며 쥐어박으려고 했습니다. 또 꿈꾸는 자가 온다. 구덩이에 던져 죽이자고 했습니다.(39:19) 그런데 오늘 실제로 꿈 내용대로 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동생 앞에 굴욕적인 자세로 엎드렸습니다. 억압자들이 피억압자의 위치로 여지없이 바뀌어 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 도전하던 자들, 재판하고 억압하던 자들도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고후5:10) 요셉의 사건은 바로 예수님을 통해서 재현될 그러한 예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형들을 시험한 요셉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슴을 진정한 요셉에게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같은 어머니에게 태어난 동생 베냐민의 생사문제 였습니다. 베냐민이 함께 오지 않는 것이 의아했고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자기가 당했기 때문에 가슴이 철렁했을 것입니다. 베냐민도 미움 받고 행여나 자기처럼 화를 당하지 않았는지 가슴이 조렸던 요셉은 형들을 고의적(故意的)으로 정탐꾼들로 몰아 세웠습니다. 또 간접적으로 20년 동안 숨은 죄악을 회개 시키려는 지혜자의 의도도 있었을 것입니다. 결코 형들을 괴롭히거나 복수하려는 동기에서 꾸며낸 연극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나 지위를 선용하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조금도 악용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성숙한 인격자입니다. 믿음의 사람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입에서 요셉 이야기와 베냐민 이야기를 나오게 했습니다.(13절) 요셉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의 죄가 떠올랐을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은 삼일동안 가두었다가 열두 번째 동생 베냐민을 데려오면 믿겠다고 돌려보내며 대신 시므온을 인질로 잡아둡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형제들에 서로 탓하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큰 형 르우벤이 요셉에게 득죄하지 말라고 할 때 형 말을 듣지 않았던 동생들을 책망하며 “그의 피 값을 내게 되었도다”(22) 하는 말을 듣고 요셉은 참고 있던 설움이 울컥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히브리어와 애굽어로 대화했기에 통변을 세워 이야기를 나누었으므로 형들은 요셉이 알아듣지 못한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때 요셉은 감정을 억제할 수 없어 밖에 나가 울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매사에 냉철했습니다. 형들에게 확실하게 회개할 기회를 줄 필요가 있었기에 시므온을 그들의 목전에서 결박하고 곡물을 가지고 온 그릇들에 가득 채우고 돈까지 다시 넣어 보냈습니다. 또 가면서 노중에서 먹을 양식까지 더  주어 보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의 내용 중에 우리가 유의 할 것은 막내 베냐민을 그들을 붙들어 매는 끈으로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지금 형들의 목적은 쌀만 구해가면 됩니다. 약간 뉘우치기는 했을지 몰라도 요셉에게 저지른 근본적인 죄를 회개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끈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그러한 방법을 쓰십니다. 병이 나서 교회 온 사람은 병만 고치면 떠나가 버립니다. 생활이 어려워서 온 사람은 가산이 조금만 넉넉해지면 훌쩍 사라집니다. 요셉의 형들처럼 목적만 이루면 떠나려 합니다. 그러기에 아픔을 참고 문제를 주어 붙들어 놓으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셔야 합니다. 형들이 요셉과 사랑으로 화해되어야 하듯이 우리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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