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해석과 대안 제시(창41: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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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해석과 대안 제시(창41:17-40)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게 깊은 교훈을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가 넉넉할 때 과용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풍년은 축복이 아니라 유혹인 것입니다. 절제력을 잃어버리고 낭비벽만 생겨 흉년이 오면 버틸 내성(耐性)을 잃어버리게 되어 지례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넉넉할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비해야 합니다. “비오는 날을 위하여 건초를 준비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어려워도 베풀고, 건강할 때 남을 도와 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 내일을 위한 투자요 저축인 것입니다. 한국의 IMF도 왜 왔습니까? 빚 얻어다 쓰는 형편에 유흥가에, 해외여행에, 고급 음식에 흥청망청 쓰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심지어 경제학자라는 사람들까지도 정부 비위 맞추기식 이론만 늘어놓았습니다. 실로 어느 시대고 요셉처럼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며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바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바로가 꾼 꿈의 내용
본문17절-24절까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가 꾼 꿈의 내용입니다. 소설 같으면 구태여 반복하여 이곳에 다시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요셉에게 설명한 꿈 내용이 다시 반복 기록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드라마(drama)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생생한, 구체적으로 일어난 그만큼 중요한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내용을 심도 있게 파악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읽고 넘어가 버려서는 안됩니다. 나도 성경 몇 번 통독했어, 다 아는 이야기 하는 식으로 성경은 읽고 보아야 할 그러한 세상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이 내용도 단순히 “바로가 심각한 꿈을 꾸었다”는게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꿈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를 원하시는 뜻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바로가 꾼 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꿈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꿈을 해석한 요셉
요셉은 바로가 두 번에 걸쳐 꾼 꿈은 실상 한가지 내용이라고 했습니다.(25절)
그것은 하나의 맷시지가 두 번 반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두 꿈을 하나로 묶어서 해석했습니다. 요셉은 술객들이나 무당들처럼 영적인흥분 상태에서 꿈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더더욱 외부의 경험이나 사례를 들어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해석했습니다. 이미 관원장들에게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했었고(창40:8) 이곳에서도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라(16)”로 계시의 제공자가 하나님이시며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속 시원히 알려주실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왜 같은 일곱이냐? 에 의미를 두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살진 일곱 암소와 충실한 일곱이삭을 같이 보고, 이것이 7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암소와 동풍에 마른 이삭도 같은 7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곱해 풍년이 들고 그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텐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맷시지로 주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넉넉할 때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살진 암소와 무성하고 풍성한 일곱 이삭에만 현혹되어 아멘, 아멘 할것이 아니라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이삭에 관한 하나님의 맷시지를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풍년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흉년이 온다고 했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밝을 때가 있으며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살았다고 생각 되시면 죽을 때가 온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월동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죽음 준비도 하셔야 합니다. 칭찬에만 귀 기울이지 마시고 책망하는 말에도 삼가 귀를 기우리시기 바랍니다. 풍년이 꼭 축복이 아니라 유혹일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식 때문에, 기름진 음식 때문에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풍년이 아니라 풍년 뒤에 찾아오는 흉년입니다. 카드도 긁을 때가 있으면 갚아야 할 때가 꼭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에 대한 대안 제시를 안 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시간 시간 나에게 닥친 문제에 대안(代案) 제시를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놓치지 맙시다. 우리는 지혜 없는자 같이 살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곳의 말씀에도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
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점을 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예측하며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3. 바로와 신하들의 내용
요셉은 10년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생활했고, 3년동안 중 죄인으로 감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요셉이 감히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당당하게 꿈을 해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했습니다. 어찌 있을수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요셉의 해석에 공감을 느꼈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음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요셉의 말을 청종하고 요셉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원래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된 것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받을 사람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궁무진하십니다.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연단하고 훈련시킬 훈련장(訓鍊場)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요셉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게 했습니다. 요셉을 보내신 하나님앞에 그들은 고분고분해진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님 말씀 안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한때 잘 나간다고 교만하다 지금은 얼마나 휘청거리고 있습니까? 그때 좀 더 파리한 암소나 재앙이나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에 귀를 기우렸어야 했습니다 .바로와 신하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대비 태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맷세지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보태거나 빼지 말아야 합니다. 버터를 발라서 달콤하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복 받을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주목(注目)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대안(代案)을 제시해야 하고 사람들은 바로와 그 신하들처럼 반응을 보일 때 기근없는 풍요한 미래가 보장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우리게 깊은 교훈을 제시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유가 넉넉할 때 과용하거나 낭비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어떻게 보면 풍년은 축복이 아니라 유혹인 것입니다. 절제력을 잃어버리고 낭비벽만 생겨 흉년이 오면 버틸 내성(耐性)을 잃어버리게 되어 지례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넉넉할 때 앞으로 닥칠 어려움에 대비해야 합니다. “비오는 날을 위하여 건초를 준비하라”는 격언도 있지 않습니까? 어려워도 베풀고, 건강할 때 남을 도와 주는 것은 따지고 보면 다 내일을 위한 투자요 저축인 것입니다. 한국의 IMF도 왜 왔습니까? 빚 얻어다 쓰는 형편에 유흥가에, 해외여행에, 고급 음식에 흥청망청 쓰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닙니까? 심지어 경제학자라는 사람들까지도 정부 비위 맞추기식 이론만 늘어놓았습니다. 실로 어느 시대고 요셉처럼 미래를 보는 눈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하며 하나님도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바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바로가 꾼 꿈의 내용
본문17절-24절까지는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가 꾼 꿈의 내용입니다. 소설 같으면 구태여 반복하여 이곳에 다시 기록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가 요셉에게 설명한 꿈 내용이 다시 반복 기록된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드라마(drama)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도 생생한, 구체적으로 일어난 그만큼 중요한 사건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 내용을 심도 있게 파악해야 한다는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충 읽고 넘어가 버려서는 안됩니다. 나도 성경 몇 번 통독했어, 다 아는 이야기 하는 식으로 성경은 읽고 보아야 할 그러한 세상 책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오늘 이 내용도 단순히 “바로가 심각한 꿈을 꾸었다”는게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꿈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언가 말씀하시려는 점이 있다”는 것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를 원하시는 뜻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직접 자신의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바로가 꾼 꿈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꿈속에 담겨져 있는 의미에 대하여 더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2. 꿈을 해석한 요셉
요셉은 바로가 두 번에 걸쳐 꾼 꿈은 실상 한가지 내용이라고 했습니다.(25절)
그것은 하나의 맷시지가 두 번 반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두 꿈을 하나로 묶어서 해석했습니다. 요셉은 술객들이나 무당들처럼 영적인흥분 상태에서 꿈을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더더욱 외부의 경험이나 사례를 들어서 해석하지도 않았습니다. 요셉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해석했습니다. 이미 관원장들에게도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고 했었고(창40:8) 이곳에서도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라(16)”로 계시의 제공자가 하나님이시며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속 시원히 알려주실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왜 같은 일곱이냐? 에 의미를 두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살진 일곱 암소와 충실한 일곱이삭을 같이 보고, 이것이 7년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암소와 동풍에 마른 이삭도 같은 7년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일곱해 풍년이 들고 그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텐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으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맷시지로 주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넉넉할 때 자기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를 대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살진 암소와 무성하고 풍성한 일곱 이삭에만 현혹되어 아멘, 아멘 할것이 아니라 파리한 일곱 암소와 마른 일곱이삭에 관한 하나님의 맷시지를 소홀히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풍년이 먼저 오고 그 다음에 흉년이 온다고 했습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밝을 때가 있으며 어두울 때가 있습니다. 살았다고 생각 되시면 죽을 때가 온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월동 준비를 하고 계십니까? 죽음 준비도 하셔야 합니다. 칭찬에만 귀 기울이지 마시고 책망하는 말에도 삼가 귀를 기우리시기 바랍니다. 풍년이 꼭 축복이 아니라 유혹일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과식 때문에, 기름진 음식 때문에 병이 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이 부분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풍년이 아니라 풍년 뒤에 찾아오는 흉년입니다. 카드도 긁을 때가 있으면 갚아야 할 때가 꼭 있습니다. 요셉이 바로의 꿈에 대한 대안 제시를 안 했다면 어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시간 시간 나에게 닥친 문제에 대안(代案) 제시를 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놓치지 맙시다. 우리는 지혜 없는자 같이 살지 말아야 합니다. 다른 곳의 말씀에도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
고 경고했습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점을 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세상을 예측하며 바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3. 바로와 신하들의 내용
요셉은 10년동안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생활했고, 3년동안 중 죄인으로 감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찮은 요셉이 감히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당당하게 꿈을 해석하고 대안까지 제시했습니다. 어찌 있을수나 있는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이 모두 요셉의 해석에 공감을 느꼈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간섭이 있었음을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요셉의 말을 청종하고 요셉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인 것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원래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하나님의 감동(感動)으로 이런 말을 한다는 사실을 받아 드렸습니다.
우리가 이성을 초월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게 된 것도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축복을 받을 사람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무궁무진하십니다. 새 이스라엘을 건설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민족을 연단하고 훈련시킬 훈련장(訓鍊場)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애굽이 요셉을 인정하고 받아드리게 했습니다. 요셉을 보내신 하나님앞에 그들은 고분고분해진 것입니다. 우리 민족도 하나님 말씀 안에 좀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한때 잘 나간다고 교만하다 지금은 얼마나 휘청거리고 있습니까? 그때 좀 더 파리한 암소나 재앙이나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말씀에 귀를 기우렸어야 했습니다 .바로와 신하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우렸습니다.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미래에 대한 대비 태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맷세지에 귀를 기울려야 합니다. 성경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교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보태거나 빼지 말아야 합니다. 버터를 발라서 달콤하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복 받을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주목(注目)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대안(代案)을 제시해야 하고 사람들은 바로와 그 신하들처럼 반응을 보일 때 기근없는 풍요한 미래가 보장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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