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통치(왕하24:8-20절) B. C 60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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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야긴과 시드기야의 통치(왕하24:8-20절) B. C 600년경
여호야김은 애굽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또 우상을 섬기다가 바벨론의 침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왕 위에 올랐을 때(18세) 유다는 몹시 불안정한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한 위기 속에서 여호와를 의뢰하기보다 오히려 우상 숭배의 죄악을 엄승했습니다.
1.여호야긴의 인물됨(8-9절)
여호야긴도 여호아하스와 같이 석달 밖에 왕위에 있지 못했습니다. 역시 그도 “부친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9절) 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몇가지 좋은 성품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의 포로 생활동안에 그는 느브갓네살왕의 뒤를 이은 바벨론 왕의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왕하25:27-30절)
1. 바벨론의 2차 침공(10-16절)
여호야김 때 1차 침공한 바벨론은 또 다시 2차 침공을 했습니다. 그때 왕을 비롯하여 왕족들, 정치가 군인들, 기술자들이 모두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914절) 그때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8년이었고 B. C 597년이었습니다. 또한 성전의 금은 기명 일부를 약탈하였습니다.(13절) 바벨론왕은 제1차 침입시에도 (24:1, 단1:1-6절) 많은 포로를 사로잡아갔으며 성전 보물들을 약탈해 갔습니다. “제1차 포로”(B. C 605년)로 잡혀간 자들 중에 다니엘이 있었으며, 에스겔은 “제2차 포로” (B.C 597년)로 잡혀갔습니다.(15-16년)
3. 시드기야의 통치(17-20절)
여호긴을 사로잡아간 바벨론왕은 여호아긴의 숙부 시드기야(요시야의 3남)를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나 엄격한 의미에서 그는 왕이 아니라 섭정자였으므로 유다 최후의 왕은 여호야긴으로 보는 것이 옳습니다.(왕하25:27절, 겔1:2절) 시드기야 역시 이러한 위기속에서 혼합주의적인 우상숭배의 길을 답습하였습니다.(19절) 무능했던 그는 예레이먀의 충고를 무시한 채(렘34:1-5, 38:14-23절)바벨론을 배반하고 친 애굽정책을 택하였습니다.(20절하) 결국 그 정책은 바벨론 군대를 예루살렘으로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말에 귀를 기울렸다면 예루살렘의 최후의 날은 달랐을 것입니다.(겔38:14-28절) 하나님은 시드기야가 그처럼 행동하도록 내버려 두심으로 나라가 망하도록 했습니다. 빛을 따르거고자 아니하는 자는 빛을 잃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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