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의 죽음과 여호야김의 통치(왕하23:28-2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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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의 죽음과 여호야김의 통치(왕하23:28-24:7절)
요시야는 왕상 13:1-5절에 나오는 예언(출생 약300년전)을 성취하였습니다. 왕은 성전과 율법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그 민족이 오랫동안 소홀히 해 온 유월절도 회복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백성이 “값으로 산 바 되었음”을 기억하기를 원했습니다. 요시야의 시대는 평화와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죄로 인하여 심판을 내리시겠다고 한 본래의 약속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왕하21:10-15, 23:26-27절) 하나님의 참으심의 한계가 지나게 될 때에 그 혹독함은 말할 수 없이 큰 것입니다.
1. 요시야의 죽음(28=-30절)
이 무렵 앗수르는 멸망의 문턱에 있었으니 앗수르의 왕권은 서서히 바벨론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다를 바벨론왕의 세력에 넘어가게 하는 역할을 한 사람은 애굽 왕 바로느고였습니다. 그가 유브라데강까지 세력을 확장하고자 할 때 요시야가 그를 대적했다가 므깃도에서 전사했으니 그의 죽음은 재앙이 아니라 여선지자 훌다의 예언대로 (왕하22:20)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였습니다. 때로는 죽음이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패배로 인하여 유다는 바로느고에게 복속되었으며 곧 바벨론 느브갓네살이 열강의 폐자가 되자 그에게 복속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2. 여호아하스의 통치(31-35절)
요시야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둘째인 여호아하스가 (본명은 살룸: 렘22:11절) 먼저 왕이 되었고(31절) 그 다음으로 맏형인 엘리야김이 왕위에 올랐으며 끝으로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이들의 운명은 모두 다 비참했습니다. 본문은 3개월 만에 애굽 왕에 의해 폐위된 여호아하스의 통치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는 왕이 되자 율법을 버리고 이전의 죄악 된 길로 돌아갔습니다.(32절) 훌륭한 왕이 되는 데는 ①훌륭한 부친 (요시야)을 두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요 ②훌륭한 이름(여호아하스: 여호와가 붙드는 자)이나 ③엄숙한 기름 부음(30절)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아무소용이 없습니다. 여호아하스는 불가 삼개월 왕으로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애굽으로 잡혀가 그곳에서 생을 마쳤습니다.(34절하) 여호아하스의 포로 됨은 국가의 포로 됨의 전조였습니다. 곧 쏟아질 폭우의 첫 방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3. 여호야김의 통치와 느브갓네살의 침략(35-24:7절)
이스라에은 다시 한 번 애굽의 속박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로느고는 자기의 권한을 마음껏 사용하여 백성들에게 신임을 얻지 못했던 요시야의 큰 아들 엘리야김의 이름을 여호야김(여호와가 세우신 자란 뜻)으로 개명시켜 유다의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했으니 이스라엘에게서 은금을 늑봉(勒捧: 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받아냄)했습니다.(35절)
(1)여호야김은 25세에 왕이 되어 11년을 통치 했습니다.
그도 열조의 행한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37절) 그때 바벨론은 강성해졌으니 여호와께서 갈대아, 아람, 모압, 암몬의 연합군을 보내어 유다를 멸하게 했으니 므낫세의 모든 죄로 인하여 결국 몰락 직전에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2) 1-6절은 이스라엘의 외형적 멸망 원인(1-6절)을 제공한 여호야김의 사적입니다. 당시 정치적 배경은 유브라데 서편의 방대한 영토를 점하고 있던 애굽의 바로느고는 신흥제국 바벨론과의 갈그미스 전투)렘42:2-12잘)에서 대패함으로서 근동지역은 새로운 바벨론의 영향권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서 애굽의 군신 관계를 유지했던 여호야김 역시 바벨론의 사주를 받은 이방의 침입에 굴복하고 말았으니 (대하36:58절) 사실 바벨론 느브갓네살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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