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요나단(삼상20:1-42절) B . C > 수요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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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요나단(삼상20:1-42절) B .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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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255회 작성일 10-03-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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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다시 나욧에서 도망하나 요나단에게 피신합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이야기를 나눈 후 다윗왕의 의중을 요나단을 통해 알아보기로 약속합니다. 그러나 사울 속에 들어간 악신은 끝까지 다윗과 요나단이 함께 거할 수 없도록 만들었으니 사울과 다윗은 이제 노골적인 정적관계가 되어 다윗은 계속 쫓기는 몸이 되고 맙니다.


1. 재확인된 우정 관계(1-10절)

다윗은 그때까지도 왜 사울이 자기를 그렇게 죽이려 하는 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나욧에서 사울을 피해 도망친 다윗은 요나단에게 찾아가 사울의 의중을 확인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요나단이 다윗을 감싸고 도는 것을 알고 다윗을 죽이려는 의중을 아들이 너에게도 숨길 것인즉 잘 알아보라고 합니다. 그 당시 다윗은 죽음 문제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라고 요나단에게 고백한 점입니다.(4절) 당시 매월 초하룻날(月朔)에는 온 가족이 한 자리에서 식사하게 될 것인데 다윗을 삼일 저녁까지 숨게 하고 왕이 물으면 요나단이 다윗의 간청으로 매년제(해마다 온 가족이 모여 드리는 종교 행사)를 드리려 고향(베들레헴)에 가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해보라 그때 왕이 노하면 지금도 죽일 의사가 있음이 분명한 것이니 대비하도록 알려 줄 것을 부탁합니다. 다윗은 그때도 요나단에게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여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에게 결단코 허물이 없음을 다짐하며 다윗을 들에 숨기고 부친의 의중을 떠보고 알릴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사람의 진정한 우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슬픔, 기쁨, 두려움, 소망, 의심, 조언, 참회와 고백까지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정의 결실은 모든 종류의 관심을 갖게 만듭니다.(Bacon)


2. 우정의 언약(12-23절)

18:3절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언약을 맺었는데 이 부분에서 다시 한 번 확증되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친이 다윗을 해치려고 한다면 요나단은 다윗 편에서 평안히 가게 해 주겠고 만약 그렇게 못하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벌을 내리실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13절) 또 다윗에게 요나단은 자기가 사는 날 동안 인자(헤쎄드)를 베풀어 주고 나아가서 “영영히 끊어지지 말게 하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15절) 그리고 다시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對敵)을 치실지어다”(16)하며 오직 자기 부친이라고 다윗의 대적자라면 하나님의 정당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을 인정하며 다시 한 번 진실 된 우정을 다짐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언약은 피차간 책임의식을 느끼게 합니다.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히12:24) “그리스도 안에서”(엡4:32) 우리는 철저한 신분과 생명의 보장을 받고 또한 언약 선민으로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서로 사랑하며 맹세했습니다.(17절) 요나단은 다윗을 들에 숨게 하고 활을 쏘아 그것을 신호로 사울왕의 의중을 알려주었습니다. 화살이 네 앞 편에 있다 하면 그것은 살의(殺意)가 있으니 피하라는 싸인(sign)이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이처럼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이렇게 피차간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3. 우둔해진 사울(24-42절)

세상의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양면성이 있습니다. 희지 않으면 검은 것입니다. 간혹 회색처럼 희끄무레한 색깔도 있지만 그것은 희지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한번 삐딱한 악한 생각은 계속 그 방향으로 치닫게 되어 있습니다. 창조주의 간섭 없이는 돌이키기가 쉽지 않고 진정되는 것 같지만 찌꺼기가 일어 날 지 모릅니다. 사울의 시기심을 이미 가인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아들 요나단의 충고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요나단까지 죽이려 했습니다.(33절) 그때 요나단은 다윗을 생각하며 슬퍼했습니다. 요나단은 약속대로 활을 쏘아 sign을 보내고, 심부름하는 아이를 보낸 후 함께 붙들고 피차 입 맞춘 후 울면 헤어졌습니다.(41절) 두 사람은 여기서 다시 맹세하고 “하나님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네 자손과 네 자손에게 하시리라”(42절) 복을 빈 후 다윗은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람이 악신이 역사하면 분별력을 잃습니다. 좋고 나쁜 사람, 유익과 불이익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합니다. 그래서 사울은 점점 더 우둔 해졌고 이제는 그 누구의 충고도 받아 드리지 않았습니다. 요나단과 다윗의 이별은 순간은 얼마나 고상한가? 상호 상반되는 이해관계 때문에 헤어진 것이 아니요, 이들의 이별은 “은밀하게 서로 동여매는 기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경건성에 기초한 우정은 세상이 변해도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의 우정은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을 위한 소망과 기도에서 헤어진 이별이었기에 비록 공간적으로 떠나 있지만 항상 “한마음, 한 뜻”으로 계속 있게 되며 기도로서 피차간 무한한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설령 등을 돌려도 한번 하신 언약은 변함없으십니다. 하나님은 여인이 태에서 난 아들을 잊을지 몰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손바닥에 이름을 새겼고 너의 성벽(性癖: 성벽과 버릇-character and habit, one's natural disposition)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다고 하셨습니다.(사49:14-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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