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생물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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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0-05-20 17:12 조회 5,125 댓글 0본문
요한계시록
4:7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에스겔서 1장의 네 생물과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과는 분명한 연관이 있으며 동일한 것은 분명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시각으로 표현한 것과 사도 요한의 시각으로 표현한 것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것을 본 것은 확실합니다.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에스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순서의 차이와 날개 갯수의 차이가 있으므로 다른 것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관찰자의 시각에서 본 그대로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앞에 압도되어 버린 그들이 딱 한번 보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네 생물이 하나님의 천사들일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과 에스겔서의 공통점을 찾아보며 네 생물이 무엇을 뜻하는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갑작스런 등장
네 생물은 에스겔서 1장에, 그리고 요한계시록 4장에 등장합니다.
어떠한 예고나 사연 설명없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네 생물의 등장 또한 갑작스럽습니다.
우주 먼 곳에서 큰 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열리며"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공통점입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 보여주신 것으로 영적인 차원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네 생물의 갑작스런 등장에는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거나 신비한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은 반드시 "메세지" 전하시고자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깜짝 놀래켜주시려는 깜짝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때, 깜짝 놀랬지?"
이런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2) 압도적인 모습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 둘 다 공통적으로 압도된 상태를 보게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이었으며 사도 요한은 로마제국의 거센 박해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과 로마제국은 당시 세계를 움직이는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 또한 거대 제국의 압제에 오랜 시간 시달리면서 하나님의 권능의 위대함을 차츰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에스겔의 남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정복되어 수도 예루살렘은 멸망당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기원전 72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는 참상을 보게되었습니다.
오랜 포로 생활과 유배생활로 인해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들 또한 지치고 낙심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에게 예고 없이 갑작스러운 놀라운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호령하는 것이 거대 제국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잠시일뿐 오직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시요 절대 주권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네생물의 압도적인 모습에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은 할 말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더이상 로마제국 같은 거대제국의 압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팍팍한 현실과 생계 문제는 거대 제국보다 더 우리를 압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압도되어야 하는 것은 돈이나 건강의 염려가 아닙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권능 앞에 단 1초라도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늘을 열어 우리의 눈을 보게해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볼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압도될 것에 놀랄 것입니다.
3) 네 생물의 정체
네 생물에 대해서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 모두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 지구의 언어와 개념을 총동원하여 묘사한 것이 오늘 본문와 에스겔 1장의 결과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조금씩 다릅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더라도 제대로 볼 리가 없습니다.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어야 뭔가 비스무리하게 표현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본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200년 전 조선시대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오늘날 비행기를 보고 그대로 묘사해보라하는 것도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하물려 영적인 존재를 물리적인 차원에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림없을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본문의 네 생물에 대해 우리의 인식의 한계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묘사를 바탕으로 네 생물에 대한 완벽한 분석을 내리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입니다.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영적인 차원의 것들을 지나치게 수식화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경계해야 합니다.
네 생물의 비밀이네 뭐네 하면서 말도안되는 소리를 같다붙이는 여러 시도들을 철저히 주의해야 합니다.
4) 결론
네 생물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 본문을 통해 문자적인 표현 그대로 형상화환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괴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이를 토대로 우리가 영적인 존재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위한 정보를 얻게하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를 압도하는 놀라운 네 생물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존재임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지구를 포함한 우주 만물 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더 압도적인 영적인 존재들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온전히 통치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 생물의 정체는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자적인 해석으로 네 천사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뭐가 되었든 분명 네 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케일이 어떻하든지 반드시 그 이상을 넘어설 것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의 모든 피조물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며
지상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상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 등장하는 영적인 존재들을 수식화 도식화 형상화하여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딴판인 황당한 결론을 유도하는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만희는 네 생물을 자신의 심복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자 합니다.
이는 분명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자하는 본문의 의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언서와 계시록의 영적인 차원들을 인간의 문자와 기준으로 이리저리 짜고 맞추어 사람들을 통제하고 두렵게하고 혼란케하는 성경해석을 분명히 배격하고 오직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하는 뜻만을 찾아 붙잡는 올바를 성경해석의 테두리 안에 거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4:7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에스겔서 1장의 네 생물과 요한계시록의 네 생물과는 분명한 연관이 있으며 동일한 것은 분명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의 시각으로 표현한 것과 사도 요한의 시각으로 표현한 것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것을 본 것은 확실합니다.
4: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에스겔 1: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순서의 차이와 날개 갯수의 차이가 있으므로 다른 것일 수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관찰자의 시각에서 본 그대로 기록하게 하였습니다.
한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앞에 압도되어 버린 그들이 딱 한번 보고 정확하게 기억하고 묘사한다는 것 자체가 억지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네 생물이 하나님의 천사들일 것이다라고 주장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과 에스겔서의 공통점을 찾아보며 네 생물이 무엇을 뜻하는가 자세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갑작스런 등장
네 생물은 에스겔서 1장에, 그리고 요한계시록 4장에 등장합니다.
어떠한 예고나 사연 설명없이 갑자기 등장합니다.
네 생물의 등장 또한 갑작스럽습니다.
우주 먼 곳에서 큰 소리와 함께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이 열리며"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공통점입니다.
이는 성령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눈을 열어 보여주신 것으로 영적인 차원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네 생물의 갑작스런 등장에는 반드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시거나 신비한 환상을 보여주시는 것은 반드시 "메세지" 전하시고자하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깜짝 놀래켜주시려는 깜짝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어때, 깜짝 놀랬지?"
이런 차원이 아니라는 겁니다.
2) 압도적인 모습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 둘 다 공통적으로 압도된 상태를 보게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제국의 포로로 끌려가는 상황이었으며 사도 요한은 로마제국의 거센 박해에 시달리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바벨론 제국과 로마제국은 당시 세계를 움직이는 막강한 권세를 자랑하였습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 또한 거대 제국의 압제에 오랜 시간 시달리면서 하나님의 권능의 위대함을 차츰 잊어버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에스겔의 남유다는 바벨론 제국에 의해 정복되어 수도 예루살렘은 멸망당하였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도 기원전 72년 로마 티투스 장군에의해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는 참상을 보게되었습니다.
오랜 포로 생활과 유배생활로 인해 세월에 장사 없다고 이들 또한 지치고 낙심하였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에게 예고 없이 갑작스러운 놀라운 영적인 세계를 보여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호령하는 것이 거대 제국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잠시일뿐 오직 하나님만이 만왕의 왕이시요 절대 주권자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이 네생물의 압도적인 모습에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은 할 말을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더이상 로마제국 같은 거대제국의 압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팍팍한 현실과 생계 문제는 거대 제국보다 더 우리를 압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압도되어야 하는 것은 돈이나 건강의 염려가 아닙니다.
우리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권능 앞에 단 1초라도 두려워하고 놀라는 것이 지극히 정상일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하늘을 열어 우리의 눈을 보게해주실 때 우리는 비로소 볼 것을 보게 될 것이며 압도될 것에 놀랄 것입니다.
3) 네 생물의 정체
네 생물에 대해서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 모두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최선을 다해 지구의 언어와 개념을 총동원하여 묘사한 것이 오늘 본문와 에스겔 1장의 결과입니다.
두 사람이 같은 것을 보았어도 조금씩 다릅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았더라도 제대로 볼 리가 없습니다.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어야 뭔가 비스무리하게 표현이라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본 것은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200년 전 조선시대 사람이 타임머신을 타고 와서 오늘날 비행기를 보고 그대로 묘사해보라하는 것도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하물려 영적인 존재를 물리적인 차원에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림없을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본문의 네 생물에 대해 우리의 인식의 한계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와 사도 요한의 묘사를 바탕으로 네 생물에 대한 완벽한 분석을 내리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입니다.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의 영적인 차원의 것들을 지나치게 수식화 도식화하려는 시도는 분명히 경계해야 합니다.
네 생물의 비밀이네 뭐네 하면서 말도안되는 소리를 같다붙이는 여러 시도들을 철저히 주의해야 합니다.
4) 결론
네 생물은 에스겔서와 요한계시록 본문을 통해 문자적인 표현 그대로 형상화환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괴생명체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이를 토대로 우리가 영적인 존재들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위한 정보를 얻게하고자 하심이 아닙니다.
분명히 우리를 압도하는 놀라운 네 생물이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가는 존재임을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으로만 봐도 압도적인 지구를 포함한 우주 만물 뿐만 아니라 이보다 훨씬더 압도적인 영적인 존재들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들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온전히 통치되어진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네 생물의 정체는 영적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의도 안에서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문자적인 해석으로 네 천사장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 사복음서라고 합니다.
뭐가 되었든 분명 네 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스케일이 어떻하든지 반드시 그 이상을 넘어설 것입니다.
동서남북 사방의 모든 피조물을 상징할 수 있을 것이며
지상세계와 영적인 세계의 모든 피조물들을 상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그 또한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하나님의 주권하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성경에 등장하는 영적인 존재들을 수식화 도식화 형상화하여 하나님의 의도와는 전혀 딴판인 황당한 결론을 유도하는 시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이만희는 네 생물을 자신의 심복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들을 미혹하여 자신의 세력을 키우고자 합니다.
이는 분명히 우리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자하는 본문의 의도와는 다른 것입니다.
예언서와 계시록의 영적인 차원들을 인간의 문자와 기준으로 이리저리 짜고 맞추어 사람들을 통제하고 두렵게하고 혼란케하는 성경해석을 분명히 배격하고 오직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전하시고자하는 뜻만을 찾아 붙잡는 올바를 성경해석의 테두리 안에 거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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