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설명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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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설(구정)_을 보내며 그 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설은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의 호칭입니다.
왜 설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지혜로운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믿습니다.
옛날 그 시절은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속절없이 한해를 보내고 한 살 더 늙어가는 것이 서러워 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새롭다. 설다(싱싱하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설날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으로 내려온 대단한 명절이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설날부터 대보름(음력 1월 15일) 명절까지 20여일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음식상을 차리고 온 동네가 함께 축제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떼 지어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고 덕담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 머리에 이고 골목골목 분주히 오고 가는 정스런 풍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림으로 아른거립니다.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재기차기, 쥐불놀이 등 민속놀이를 하며 온통 시끌벅적 했었습니다.
대보름날에는 해 뜨기 전 더위를 팔아야 일 년 내내 복이 들어오고 액운이 물러간다고 “내 더위 사라”고 서로 놀리며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습니다.
또 어른들은 농악을 즐기며 집집마다 돌면서 곡식을 협조 받아 어려운 가정들을 돕고 동네잔치 비용으로 사용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히 대보름날은 여러 집 밥을 먹어야 건강해 진다는 관습이 있어 조리를 들고 집집마다 오곡으로 찐 밥을 얻으러 다녔던 추억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슬기가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말이 막힐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가보면 사소한 이권관계로 맘이 상하고 섭섭한 말로 상처를 받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절의 그러한 풍습은 저절로 화합을 이루고 상처 받은 문제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는 치유의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년도에 쌓인 묵은 찌꺼기를 말씀이 씻어 버리고 새해는 더 새롭게 출발하자는 지험한 메시지가 담긴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지금의 사회풍토를 생각하면 그 때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인해 제대로 서로의 손도 마주 잡을 수 없어 주먹을 맞대야 하는 현실이 냉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쩔 수 없어도 마음만은 더 가까워지는 설을 보냅시다.
설은 음력으로 새해 첫 날의 호칭입니다.
왜 설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지혜로운 우리 조상님들의 깊은 뜻이 담겨져 있으리라 믿습니다.
옛날 그 시절은 먹고 살기가 너무 어려워 속절없이 한해를 보내고 한 살 더 늙어가는 것이 서러워 설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또 한 해가 새롭게 시작된다는 새롭다. 설다(싱싱하다)는 의미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설날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으로 내려온 대단한 명절이었습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설날부터 대보름(음력 1월 15일) 명절까지 20여일을 있는 것 없는 것 다 동원하여 음식상을 차리고 온 동네가 함께 축제를 보냈습니다.
어린 시절 떼 지어 동네 어른들을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렸고 덕담을 들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정성껏 음식상을 차려 머리에 이고 골목골목 분주히 오고 가는 정스런 풍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그림으로 아른거립니다.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재기차기, 쥐불놀이 등 민속놀이를 하며 온통 시끌벅적 했었습니다.
대보름날에는 해 뜨기 전 더위를 팔아야 일 년 내내 복이 들어오고 액운이 물러간다고 “내 더위 사라”고 서로 놀리며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습니다.
또 어른들은 농악을 즐기며 집집마다 돌면서 곡식을 협조 받아 어려운 가정들을 돕고 동네잔치 비용으로 사용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특히 대보름날은 여러 집 밥을 먹어야 건강해 진다는 관습이 있어 조리를 들고 집집마다 오곡으로 찐 밥을 얻으러 다녔던 추억을 잊을래야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와 슬기가 얼마나 대단하셨는지 말이 막힐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세상을 살다가보면 사소한 이권관계로 맘이 상하고 섭섭한 말로 상처를 받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절의 그러한 풍습은 저절로 화합을 이루고 상처 받은 문제들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리는 치유의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전년도에 쌓인 묵은 찌꺼기를 말씀이 씻어 버리고 새해는 더 새롭게 출발하자는 지험한 메시지가 담긴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지금의 사회풍토를 생각하면 그 때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더욱이 “코로나 19”로 인해 제대로 서로의 손도 마주 잡을 수 없어 주먹을 맞대야 하는 현실이 냉혹하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쩔 수 없어도 마음만은 더 가까워지는 설을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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