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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증명서(마15:22) 김영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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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6,551회 작성일 07-08-1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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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대전 때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전사한 친구를 의젓하게 묻어주고 싶어서 브라운(Brown) 중위가 이끄는 미군들이 묘지를 갖춘 어느 천주교회를 찾아갔습니다. 신부는 사망자가 개신교도임을 알고 성전 울타리 안에는 안된다고 하여 울타리 바깥 장소에 전우를 매장하였습니다.
이튿날 그들은 그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전우의 무덤을 마지막으로 방문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보니 무덤이 안 보였습니다.
그때 신부가 나와 미군들을 반갑게 맞으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어제 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교파를 달리한다는 이유로 차별대우를 했으니까요?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에는 결코 차별대우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어젯밤에 울타리를 옮겨 버렸습니다. 저것 보십시오.
당신들 친구의 묘가 울타리 안쪽에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랬습니다.  낮은 나무 울타리가 밤새 약3m(약10feet)바깥으로 옮겨져서 친구의 무덤이 울타리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닮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은 한없이 넓고 깊어서 울타리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끌어안은 바다같이 넓은 사랑입니다.
바로 얼마 전에 한국계 유학생이 미국 대학교에서 총기을 난사하여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사건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학교에서  사망자를 위한 위령탑을 세우는데 총기를 난사했던 그 학생의 이름도 새겨 넣었다는 보도를 보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나쁘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 같으면 감히 그럴 수 있을까 의아스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마 유가족이 엄청난 반발을 했을 것이고 매스컴들도 안 된다고 떠들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은 묵묵히 죽은 자들을 위해 애도했습니다.
-그러한 사건이 일찍이(1958. 4. 25일) 교환 학생으로 펜실바니아 대학에 유학중이던 한국학생이 밤에 편지를 부치려 나갔다가 불량배들에게 몰매를 맞고 사망한 일이 있었습니다.
살인자들은 체포되고, 대학가의 높은 여론과 선민들의 분노로 사형구형이 내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피살자의 부모가 담당 판사에게 구명탄원 편지를 보내 온 것입니다. 살인한 청년의 생명을 건져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그 청년의 직업교육을 위하여 지금부터 즉시 저금을 시작하여 복역 후 자립을 돕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탄원을 하는 이유는 나를 멸망에서 건져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크리스챤이란 거룩한 인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인(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이란 계속해서 회개하는 죄인입니다. 가장 좋은 기도는 가나안 여인같이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마15:22)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만이 죄인의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랑의 울타리를 넓게 칩시다.  아니 하나님처럼 아예 울타리를 없애 버립시다.
우리도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라도 실천합시다. 바로 그러한 점이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아들을 죽인 원수의 생명 구원을 탄원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원수를 용서하고 위하여 저금을 시작할 정도라면 그 자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증명서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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