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Tithe)정신 (마23:23) 김영수목사 > 사랑의 향기

본문 바로가기


십일조(Tithe)정신 (마23:23) 김영수목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6,996회 작성일 07-08-04 12:56

본문

예수를 믿고 교회의 예법과 규율을 제대로 지키며 살아보려는 사람들에게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가 바로 십일조 문제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은근히 강조하고 있는 이 십일조 정신은 단순히 물질에 관한 내용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절실히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미가서6:8) 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약 성경 마태복음23:23절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외식(外飾, show-off)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면서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義 )와 인(仁)과 신(信)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우리의 내면의 문제를 더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독교에서는 물질의 십일조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는 신자라면 하나님에게 물질적으로도 감사의 표시를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믿음이 있다는 신자들도 감사는 마음에서 우러나서 해야 하는 것이지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이냐고 못마땅해 하면서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교회의 중직 자들도 그러한 가르침과 설교를 못 마땅해 생각 하면서 구약 목사니, 극보수주의자라고 은근히 반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말씀을 신봉하는 기독교인들로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책망하신 말씀(마23:23)을 앞뒤로 미루어 볼 때 십일조 문제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마땅히 드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헌납금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적어도 그러한 의무 부담을 하게 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명히 해 두시려고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히 비교는 안 되겠지만 그 나라 국민이라면 마땅히 납세의 의무도 있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즈음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반군들에게 피랍되어 있는 서울 샘물교회 단기 선교단 23명 때문에 온 나라가 얼마나 떠들썩하며 가슴 조리고 있습니까? 정부에서 특사를 파견하고 미국과 우방국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며 그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다방면으로 애쓰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우리나라에 세금을 내는 백성들이요, 같은 동포이기 때문입니다. 말라기3:10절에 보면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책임지고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빌4:19절에서 바울사도는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했습니다. 매일 노사문제로 시끌벅적한 보도를 보십시오. 뉴코아백화점, 이랜드 등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는 자들은 언제 잘릴지 모르며 또 노력한 대가만큼 임금도 낮기 때문에 얼마나 불안하고 생활이 어렵겠습니까? 물론 영업이 부실하여 많이 못주는 사주들도 이해는 가지만 정당한 분배가 되지 못하는 정치 사회풍토에 더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사회 풍토 속에서 우리 크리스챤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십일조 문제만은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까지 하면서 필연적 의무 사항으로 교육 시키셨을까를 심도 있게 생각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2차 대전을 전후해서 왜 공산주의가 득세했습니까? 부의 불균형 분배 때문이었습니다. 전제 봉건주의에 눌려 죽지 않기 위하여 연명하던 사람들이 의식이 깨이자 부의 균등한 분배를 외치고 나선 사상이 공산주의입니다. 당연히 착취당하던 노동과 농민이 벌떼같이 호응했고 공산주의자들은 신지식인으로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만민을 위한 평등한 사회 건설은 꿈같은 환상이었고 그들의 구호는 시들해지고 말았습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생산력이 저하되었고 자연 공산주의는 쇠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승리했다고도 장담할 수 있습니까? 잦은 노사분규는 자본주의가 중대한 도전을 받고 있음을 절감해야 합니다. 내가 십일조 정신을 꺼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더 가진 자들이 사회와 인류를 위하여 십일조, 즉 소유의 10%만 내 놓을 수 있다면 복지세계는 충분히 가능할 것입니다. 미국의 경우 국가전체 부(富허)의 50%를 최고 부유층 5%가 장악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 우리나라도 모르면 몰라도 엇비슷할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그러한 부를 축적 할 수 있었던 것은 정경유착과 노동자들의 임금 착취 때문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박애정신이나 도의심까지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수입의 10%정도는 가난한 층을 끌어 올리는 일에 마땅히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십일조 정신은 어느 정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격차를 줄이고 평등한 사회를 만드시고저 제정하신 하나님의 차안적 율법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십일조는 없는 것을 강제로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소득의 십분의 일을 없는 자와 나누어 분배하라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요 거기에는 공정한 분배, 기회의 정의로운 공급을 지향해야 한다는 정언 명령이기도 한 것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십일조 콤퓨렉스(complex)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온전한 십일조 생활은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 됨을 떳떳이 밝히는 의무수행의 싸인(sing)이며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풍성히 받을 수 있는 창고의 문을 여는 아침의 기지개인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28건 6 페이지

검색

상단으로

엘림전원교회 |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 문화로 274-30
비영리단체등록번호:411-82-73048 | 대표전화:010-6691-0071 | 이메일 davidjbk@gmail.com

Copyright © elimtown.net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