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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과 헌신(여호수아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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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7,248회 작성일 07-05-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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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Browsing이란 말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결단을 못 내리고 기웃거린다는 뜻입니다. 물건을 살 의향도 없으면서 만지작거리고 다닌다거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고 군데군데 훑어 읽거나 소나 말, 양등이 연한 잎만 뜯어 먹고 다니는 것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교회생활)은 혹시나 Browsing 상대는 아닙니까?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에 보면 답답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코렌세브와 바렌카는 서로 사랑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필코 사랑한다고 고백할 것을 각각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왔습니다. 두 사람은 버섯을 따러 산으로 갔습니다. 사실 그들의 속마음은 버섯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피차가 결혼을 청혼하여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자 하는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말을 꺼내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결혼 이야기를 하려다가는 엉뚱하게 버섯 이야기만 하고 맙니다. 그들의 속마음과 버섯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결단하지 못하는 자는 흔히 관계없는 일에 맴돌다가 생애(生涯)를 끝내고 맙니다. 여호수아는 어떤 결단을 내렸습니까? 죽음을 앞두고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소집하여 최후의 유언을 남깁니다. 그는 후배들에게 어떻게 하라는 지시나 강요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그들의 선택에 맡기면서 자기 자신의 결단만을 피력했습니다.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23:15) 그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과 타협하여 결정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자기의 여생은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단을 확실하게 표명했던 것입니다. 그때 각 지파의 영도자들은 여호수아의 결단에 크게 감동을 받고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 하나님께 그들의 생애를 바칠 것을 맹세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촉구하셨습니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는 마음은 첫 번째 선택이고,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두 번째 선택 곧 결단과 헌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두 번째 선택을 마친 사람들입니다.
서양 격언에 “계란을 깨지 않고 오믈렛을 만들 수 없다” (you can't make an omelet without breaking eggs)는 말이 있습니다.
곧 막힌 담을 깨지 않고는 보람찬 생애를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껍질을 깨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것은 기웃거리는 신자가 아니라 뛰어드는 신자를 원하신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인간의 죄를 책임지신 것입니다. 책임에는 불가불 희생이 따릅니다. 희생적으로 책임지는 생애, 그것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길입니다. Browsing, 마치 짐승이 이리 저리 연한 잎만 찾아다니듯이 나에게 이익이 되는 일, 큰 희생이 따르지 않는 일만 찾아 기웃거리는 크리스챤이 바로 내가 아닌 지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웃거리는 사람 99명보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 한 사람으로 건설됩니다. 예수님께서 “내 사람” 이라고 부르신 사람은 십자가를 지는 책임 있는 사람입니다. 백화점에서 Browsing(기웃거림) 하는 것은 돈을 내고 사 버릴 투자의 결단이 없는 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인생을 기웃거리다 말 것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에게 투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죽는 순간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십니다. 안녕히 들 계십시오” (God is with me, Farewell)하고 미소를 띠고 웃으며 떠났다고 합니다. 기웃거리는 신앙이 아니라 이미 예수 안에 날마다 죽고 있던 자의 고별(告別)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나에게 주어진 내가 가야 할 人生길에서 이리 저리 더 이상 기웃거리지 맙시다. 신앙인은 대적자들이 볼 때 확신범(確信犯)입니다. 생명의 길을 알기에 죽어도 그 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처럼 푯대가 분명해야 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만이 오직 우리의 푯대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백화점이 아닙니다. 더 이상 기웃거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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