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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상황(Eureka Stage) 김영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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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16,593회 작성일 06-04-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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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상황(Eureka Stage)  김영수 목사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대개 교인들을 실족시키는 경우가 약속 불이행 때문인 것을 많이 경험합니다.  예배를 마치고 작별인사를 할 때 ‘목사님 내일 몇 시에 심방 좀 해 주세요’ 하고 요청을 받을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과 이야기 하다 보면 깜박 잊어버리고 본의 아니게 약속을 어겨버립니다. 그후로 그 교인의 신앙생활이 예전 같지 못합니다. “나는 가난하니까 목사님의 안중에도 없다”고 단정하고 속으로 매우 섭섭한 감정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을 나중에 알고 나면 목사 편에서도 또 섭섭합니다. “그런 문제 가지고 소위 믿음이 있다는 사람이 토라져, 그렇게 쫌보 같아서야, 내 원 참” 은근히 괘씸한 생각까지 듭니다.  목사님이 얼마나 바쁘다는 것을 더 잘 아는 사람이 이해 해 주기는 커녕 서운 해 했다니 그럴 수 가 있느냐?고 다른 교우에게 통정까지 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있는 소리 없는 소리가 말(言)이 말(馬)을 타고 떠돌아다니면서 천파만파 교회가 어지러운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원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목사님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약속을 했으면 꼭 지켜야 합니다.
약속 때문에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더욱이 기독교에서 약속은 생명입니다. 오는 5월31일은 지자제 위원들과 자치단체장들 선거가 있는데 또 얼마나 많은 거짓 공약들이 난무할지 모르겠습니다.  또 갖가지 비방과 공격들이 시민을 어지럽게 할 것이 뻔합니다.  제발 이제 좀 따뜻해지려는 봄을 우울하지 않게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약속은 지켜야 다음번에도 신뢰를 받습니다. 성서가 성서인 것은 곧 약속의 신실성 때문입니다. 수천년의 역사를 거쳐 오면서 우리는 성경에 약속된 내용이 한 가지라도 성취되지 않은 점이 없기 때문에 성서를 신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약속도 꼭 성취될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저히 우리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납득이 안 되는 약속이라도 놀랍게 지켜졌고 성취되었기 때문에 성서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서 43장 1절 이하에 하나님은 “나는 너의 하나님이며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 못할지니라”고 말씀 하셨는데 하나님은 다니엘서에서 다니엘의 세 친구가 칠 배나 뜨거운 풀무불속에 던져졌어도 머리카락 하나도 그을리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6:7절에서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사도행전 2장에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약속하신 성령이 약속하신대로 불의 혀 같이 갈라지며 각 사람의 머리위에 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食言)치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또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고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시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신다고 했습니다.(민23:19)
그래서 예수님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단언하셨던 것입니다.(마5:18) 왜 성서가 거룩한 책(聖書)인가는 바로 이 약속의 신실함에 있는 것입니다. 결코 성서는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사람의 책일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이 약속의 실행 때문인 것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모든 판단의 기준을 사람에게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사는 사회문제, 사람의 경험, 사람의 이성, 사람의 지식에 근거를 두고 추론하고, 판단하고 단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이성을 초월한 초월자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부하고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속고 속이면서 살다보니 불신의 관성(慣性)에 젖어 있어 자기도 모르게 불신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간이나 한 솥밥을 먹으며 같이 생활하면서 예수님은 예사 사람이 아닌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반신반의(半信半疑)했습니다. 자기들의 지식과 경험에 맞지 않으므로 어리둥절했습니다.  죽음이라는 현실에 지배 받고 있었기에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만났다는 목격담을 들으면서도 도저치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루살렘 공기가 어수선하므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에 두 제자는 엠마오로 도망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그들에게 오셨고 여러 시간 동안 함께 걸어가면서 대화도 나누었지만 회의와 방황속에 있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입니까?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약속하신대로 우리 가운데 계시며 우리와 함께 동행하십니다. (마28:20) 정신의학자 헤리스(Tom Harris) 박사는 그의 명저 ('I m ok, you're ok)에서 인간이란 그 천성이 변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지만 “유레카 상황” (Eur'eka Stage)에서 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유레카란 헬라어인데 깨달음을 뜻합니다. 특히 이 말은 갑자기 무엇을 깨닫게 되었을 때 쓰는 용어입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와 베드로의 깨달음이 바로 유레카에 속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났을 때 인간은 갑자기 깨닫게 되며 자기를 인식하고 변화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슬픈 빛을 띠고 내려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이 함께 계셨던 것을 깨닫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황홀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길로 밤길을 되쳐 예루살렘에 가서 그 놀라운 기쁨의 소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눅24:33) 갈길리 바닷가에서 벗고 있던 베드로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혼비백산하여 겉옷을 두른 채 바다로 뛰어내렸다고 했습니다. 도마도 부활하신 주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고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라”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사건들은 그들에게 분명 Eure'ka 상황이었습니다. 부활 주를 만났고 확인되자 깨닫고 완전히 변했던 것입니다.  분명 부활은 주님의 약속의 성취였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은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이루어집니다.(마5:18) 부활주일이 다가옵니다(4월16일) 부활주님을 꼭 만나십시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유레카 상태” 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확변합시다. 베드로처럼 “기쁨이 충만하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행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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