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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약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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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수 작성일 02-09-19 10:54 조회 17,31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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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심(약4:17)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두가지 종류의 죄가 있습니다.
법으로 금지된 것을 범하는 죄(sins of commission)와 법이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는죄(sins of omission)입니다.  후자는 무관심과 태만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것이 더 범하기 쉽고 무서운 죄입니다.  불란서의 실존주의 문학가였던 알베르 까뮈는 그의 소설 "전락"에서 이러한 현대인의 무관심 죄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주인공 클라망스가 어느 날 세느강을 지나 집으로 가고 있을 때에 다리 난간에 기대어 슬피 울고 있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직감적으로 이 여인은 슬픔을 못 이겨 강물로 뛰어들 것이라는 예감을 느끼고 구원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뒤에 야기 될 여러 가지 귀찮은 일이 생각나서 모른 척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다리를 다 지나왔을 때 풍덩하는 소리가 들렸고 사람들이 놀라서 몰려드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빨리 서둘러 집으로 오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이 사건은 지나갔고 잊혀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언젠가 부터 클라망스는 전락하기 시작했는데 강물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 때문에 잠도 잘 수 없었고 미친 듯이 헤매야만 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소설 속의 내용이지만 오늘날 우리 자신에게서 클라망사의 모습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귀찮아서 또는 나중에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하거나 지나쳐 버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간혹 거리를 지나칠 때 "목격자를 찾습니다.  후히 사례하겠습니다" 하는 글들을 봅니다.
그러나 목격했으면서도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사고 현장에서 증인이 되어 주겠다고 연락처까지 적어 주고도 막상 재판 때는 출정을 하지 않거나 와서도 "잘 모른다"고 흐지부지 대답해 버린다고도 합니다. 이유는 귀찮다는 것입니다.
괜스레 골치 아픈 일에 끼어 들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사고를 당하여 엄청난 피해를 입고 고통 속에 있는 이웃의 형편은 딱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클라망스는 지금도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고 바로 우리의 가슴속에도 클라망스가 자리잡고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리고에서 강도 만난 사람 앞에서 "누가 네 이웃이냐?" 물으셨습니다.
우리나라가 태풍 "라마"로 엄청난 수해를 당했습니다.  우리는 적은 사랑이지만 재난 당한 이웃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전라도가 아닌 경상도, 강원도의 일이라고 무관심해서도 안됩니다.  내일 모래면 또 추석절입니다.  우리 주위를 돌아보며 물질로 도울 형편이 못 되면 마음으로라도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내가 무슨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도 자문해야 하겠지만 또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안 하므로 짓는 범죄도 분명히 큰죄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선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이니라」고 지적한 것입니다.  인간이니까 죄를 안 지을수는 없지만 적게 지읍시다.
무관심의 죄도 분명 무시 못할 큰 죄인 것을 잊지 맙시다.  내 속에 클라망스는 없는지 돋보기로  찾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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