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원리(벧전4:12) 김영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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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원리(벧전4:12) 김영수목사
물론 오래전 이야기입니다만 이 세모(歲暮: year-and)에 한번쯤 다시 생각 해 보고 넘어갔으면 해서 소개합니다. 미국 Record지 스포츠 면에 크리스마스 스토리(story)로 보도된 내용입니다. 뉴욕매츠(METS-프로야구팀)의 투수 "팀 버크(Tim Burke)" 선수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이 젊은 부부는 양자 양녀를 입양할 것을 결심하고 세 아이를 맞아들였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에게 아이가 없어서 입양한다는 일반적인 목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 있는 아이들을 아들딸로 삼은 것입니다. 첫딸이 스테파니는 한국 고아인데 3개월이나 먼저 태어난 조산아(早産兒)로 본래 허약한데다가 심장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쉬운 수술이 아닌 심장에 구멍이 둘이 있어 혈관을 다른데로 돌리는 힘든 수술이었답니다. 두 번째 입양한 아들 라이안은 과테말라 출신으로 본래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 신체 뿐 아니라 정신 질환의 위험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세 번째로 입양한 딸 리콜은 한국 고아인데 나면서부터 오른손이 없었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아이들을 멀쩡한 백인 젊은이들이 입양을 했을까요? 버크 부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거듭났기 때문에 이웃의 고통을 함께 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수님께서 「내 멍에는 가볍다」고 하신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참가할 때 내 고통이 해결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버크의 부인인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 세 불쌍한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죽을 아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아이들은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오히려 이 아이들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에게 감사를 알게 하고, 행복을 깨닫게 하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참 크리스챤이 되게 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주제를 던져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버크 부부는 그들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빌거나 고통을 피하려고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의 고통을 알고 함께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법전4:12-13)고 독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 때 내가 치료됩니다. 이웃을 섬기는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해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인 것입니다. 주리 주님은 우리 인류를 과장 비통한 게 하는 죽음이라는 절망과 고난에 참예하시므로 죽음을 이긴 부활의 승리를 하셨습니다. 어언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이 세모(year-end)에 여러분은 어떤 상념(想念)에 잠겨 보십니까? 우리는 조그만 고통 앞에서 떨면서 불안한 한해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숨도 크게 못 썼던 이스라엘 군인들처럼 그렇게 마음 조이며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이제 더 이상 나의 고통을 골리앗처럼 확대시키지 말고 버크 부부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 보십시오. 그것은 이웃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 때 내가 치료됩니다. 어떤 성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환자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청소도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여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물었더니 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건강해져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십자가의 원리가 그 크리스챤이었던 그 여인의 생활 속에서 입증된 실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모에 나보다 더 불행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마음을 써 보십시다.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네팔 발라주교회는 자신들도 어려운데 4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은 불쌍한 고아들 30여명을 교회에 데려다가 돌보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곳의 비참함을 모르십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십자가의 원리가 작용되고 있음을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합니다. 금번 저희 교회에서도 어떤 분은 무릎을 질질 꿇으면서, 어떤 분은 얼굴 색깔이 새파랗게 떠 가지고도 그 많은 김장을 담구어 소리 없이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양로원에 보내주는 모습을 보고 “저분들이 예수 안 믿으면 왜 저런 고생을 하겠는가?” 생각할 때 가슴이 찡했습니다. 우리 이 세모에 “이웃을 섬기는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해결된다는 이 십자가의 원리”만은 다시 한 번 분명히 되새겨 보십시오.
물론 오래전 이야기입니다만 이 세모(歲暮: year-and)에 한번쯤 다시 생각 해 보고 넘어갔으면 해서 소개합니다. 미국 Record지 스포츠 면에 크리스마스 스토리(story)로 보도된 내용입니다. 뉴욕매츠(METS-프로야구팀)의 투수 "팀 버크(Tim Burke)" 선수의 가정 이야기입니다. 이 젊은 부부는 양자 양녀를 입양할 것을 결심하고 세 아이를 맞아들였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에게 아이가 없어서 입양한다는 일반적인 목적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문제 있는 아이들을 아들딸로 삼은 것입니다. 첫딸이 스테파니는 한국 고아인데 3개월이나 먼저 태어난 조산아(早産兒)로 본래 허약한데다가 심장수술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더욱이 쉬운 수술이 아닌 심장에 구멍이 둘이 있어 혈관을 다른데로 돌리는 힘든 수술이었답니다. 두 번째 입양한 아들 라이안은 과테말라 출신으로 본래 갑상선에 문제가 있어 신체 뿐 아니라 정신 질환의 위험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세 번째로 입양한 딸 리콜은 한국 고아인데 나면서부터 오른손이 없었답니다. 하필이면 왜 이런 아이들을 멀쩡한 백인 젊은이들이 입양을 했을까요? 버크 부부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거듭났기 때문에 이웃의 고통을 함께 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예수님께서 「내 멍에는 가볍다」고 하신 말씀을 실감했습니다. 이웃의 고통에 참가할 때 내 고통이 해결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어서 버크의 부인인 크리스틴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 세 불쌍한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아무도 돌보지 않으면 죽을 아이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아이들은 키우면서 깨달은 것은 오히려 이 아이들이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들은 우리에게 감사를 알게 하고, 행복을 깨닫게 하고,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고 참 크리스챤이 되게 했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서 우리 크리스챤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이며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하는 주제를 던져주는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버크 부부는 그들의 고통이 사라지기를 빌거나 고통을 피하려고 도망 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웃의 고통을 알고 함께 나누어지는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간증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법전4:12-13)고 독려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웃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 때 내가 치료됩니다. 이웃을 섬기는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해결됩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인 것입니다. 주리 주님은 우리 인류를 과장 비통한 게 하는 죽음이라는 절망과 고난에 참예하시므로 죽음을 이긴 부활의 승리를 하셨습니다. 어언 한 해가 다 저물어 갑니다. 이 세모(year-end)에 여러분은 어떤 상념(想念)에 잠겨 보십니까? 우리는 조그만 고통 앞에서 떨면서 불안한 한해를 보내시지 않았습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숨도 크게 못 썼던 이스라엘 군인들처럼 그렇게 마음 조이며 살지는 않으셨습니까? 이제 더 이상 나의 고통을 골리앗처럼 확대시키지 말고 버크 부부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해 보십시오. 그것은 이웃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을 알 때 내가 치료됩니다. 어떤 성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환자복을 입은 젊은 여인이 병실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청소도 하고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저 여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물었더니 암 말기 환자로 시한부 인생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건강해져 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십자가의 원리가 그 크리스챤이었던 그 여인의 생활 속에서 입증된 실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모에 나보다 더 불행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마음을 써 보십시다. 우리가 도와주고 있는 네팔 발라주교회는 자신들도 어려운데 4개의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은 불쌍한 고아들 30여명을 교회에 데려다가 돌보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보지 않은 사람은 그곳의 비참함을 모르십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십자가의 원리가 작용되고 있음을 한국교회가 주목해야 합니다. 금번 저희 교회에서도 어떤 분은 무릎을 질질 꿇으면서, 어떤 분은 얼굴 색깔이 새파랗게 떠 가지고도 그 많은 김장을 담구어 소리 없이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양로원에 보내주는 모습을 보고 “저분들이 예수 안 믿으면 왜 저런 고생을 하겠는가?” 생각할 때 가슴이 찡했습니다. 우리 이 세모에 “이웃을 섬기는 과정에서 나의 고통이 해결된다는 이 십자가의 원리”만은 다시 한 번 분명히 되새겨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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