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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장수 마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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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수
댓글 0건 조회 15,930회 작성일 00-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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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장수 마누라
중국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름 장수 마누라가 기름을 조금씩 모아두었다가 섣달 그믐날 돈 때문에 고민하는 남편을 도와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달력 장수 마누라가 그 해의 달력을 정성껏 모아 두었다가 남편에게 내 놓으며 돈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팔아 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흉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기름이야 언제 팔아도 돈이 되는 것이지만, 달력은 그 해가 지나면 휴지로도 쓸 수 없는 폐품이 아닌가?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 모습이 다르듯이 다 똑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떤 예술품을 평가할 때도 아무리 보기 좋은 작품이라도 모방한 것인가?  창작품인가? 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공도 흉내내서는 안됩니다.
성공은 자기만의 제품인 것입니다.  어느 위인의 전기를 읽고, 나도 꼭 그렇게 해 보리라고 단단히 결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비관한 흉내 내보려다가 뜻을 포기해 버리고 자기의 한계성을 비관한 나머지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위인과 똑같은 것은 생각하고 똑 같은 길을 밟았는데도 제대로 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에게 재능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의지력이 박약했기 때문이었습니까?  결코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상황 판단을 잘못한 달력장수 마누라처럼 착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옛날 사람이 걸어왔던 길은 황토 길이었거나 자갈길이었지만 지금 우리들이 걷고 있는 길은 아스팔트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성공의 길은 기성품이거나 모방품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제품이어야 합니다.  창작품이어야 합니다.
따라서 이름 있는 성공자의 경험과 나의 경험을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환경이 다른 만큼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요구가 다른 것이며 현실에 맞는 성공의 원칙에 따라 자기만의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동네 보따리 장사로 치부를 했다면 오늘날은 적어도 무역상인이 되지 않고 큰돈을 모을 수 없습니다.
기름은 모으듯 절약해야든지, 부지런해야든지, 성실해야든지 물론 삶의 원리는 고금동서(古今東西)에 변함이 없어야 하겠지만 성공의 원칙은 지금의 현실에 맞게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류의 발전은 반드시 진통을 고수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전통을 과감히 버림으로 역사의 진보적 전환기가 왔음을 참고해야 합니다.  봉건의 진통을 버림으로써 근대적 문화가 싹 텄고, 근대적인 전통을 버림으로써 현대의 민주주의가 탄생되지 않았습니까?
혹시 아직도 낡은 방법을 답습하며 변화되기를 바란다거나 어떤 성공을 꿈꾼다면 혹 달력장수 부인 같은 착각일 수 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오늘날에 알맞는 가깝고, 보다 확실하고, 보다 쉬운 성공의 길을 모색해야 합니다.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나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실에 맞게 개발해 나가야 합니다.
누에가 고치를 뚫고 나오듯 자기를 둘러싼 조건이나 환경이나, 문제들을 박차고 보다 넓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비상하는 자기 혁신이 창조적인 삶인 것이다.  역사와 전통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새롭게 적용하지 않고 그 굴레 속에 매어서 맴도는 인생에게는 결코 창작이라는 걸작품을 기대할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전도하다가 예수는 믿고 싶은데, 믿어야 하는 줄은 알면서도 잘못된 유교적 관념 때문에 종가 집이어서, 형제간의 우애 문제 때문에 교회에 나갈 수 없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종종 듣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얼마나 딱한지 알 수 없습니다.
아직도 자기 몫의 인생을 살지 못하고 체면이나 인정에 매여 자신을 기만하는 어거지 인생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우리는 나의 인생을 남의 흉내나 내며 살아서는 안됩니다.
달력장수 아내처럼 헛것을 모으느라 어리석어서는 안됩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10장1절 이하에 훌륭한 인물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은 점령군의 지휘관이면서도 예수가 진리인 것을 알고 과감히 독실한 크리스챤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출세나 영달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택했고, 옳은 것을 위해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예수가 누구인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의 처형을 선고하고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세수대야에 손을 씻었던 비겁한 빌라도에 비하면 얼마나 자신의 삶을 책임질 줄 아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까?
혁명(革命)이란 곧 변화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껍질을 벗고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듯 성경의 세계로 비상하는 것입니다.
결코 남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얼굴 모양이 다르듯이 행복도, 성공도 자기만의 제품인 것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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