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눈에 골리앗은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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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눈에 골리앗은 얼마나 크게 보였을까?(삼상17:41-49)
열자(列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위(飛衛)는 활의 명수로 100보 앞의 콩알을 쏘아 맞추는 신기(神技)를 가졌습니다. 기창(紀昌)이라는 젊은이가 그 재주를 배우고자 비위에게 나아가 그 뜻을 고했습니다. 그때 비위는 「뜻은 든든히 세웠는가?」「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어코 선생님의 재주를 배우고야 말겠습니다. 활과 살을 가져 오리이까?」 「아니, 궁시(弓矢)는 뒤의 일, 활을 쏘려면 먼저 겨냥을 똑똑히 뱌로 해야하고, 겨냥을 똑바로 하려면 눈을 깜박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돌아가 눈을 깜박이지 않는 법을 익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간 베짜는 부인의 발뒤꿈치에 송곳을 매어놓고 불가 머리카락 하나 사이에 눈을 대고 3개월간 훈련하는 가운데 눈을 깜박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훈련 과정을 마친 기창에게 다음에는 벼룩 한 마리를 실에 매어놓고 「크다, 크다」 생각하며 나중에 바위만큼 보이거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후에 기창은 스승을 다시 찾아와서 「반년만에 밥알만, 1년만에 콩알만, 2년만에 주먹만, 3년이 지난 지금에는 벼룩이 마치 바위만 하더이다」하고 보고 했습니다.
「음, 그런가! 그럼 궁시를 가져오라」 백보암에 공 한 알을 매달고 비위가 먼저 쏘니 3발에 3증, 콩알이 짜개졌습니다.
이어 기창에게 쏘기를 명함에 기창 또한 10발에 10중, 그 재주가 스승과 똑 같았습니다. 이 어찌 활 뿐이겠습니까?
무엇인가에 대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모든 정력을 쏟아 넣어야 합니다.
태양 광선이 렌즈를 통해 한 지점에 집결됨으로써 불이 일어나듯,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집중하여 목표한 바를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불같은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 속에 들어있는 잠재 능력 이외에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모세와 함께 하시여 홍해를 가르셨고, 죽은 자라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그의 선하신 뜻대로 무엇을 하겠다는데 우리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은 그 믿음을 가지고 골리앗을 바라보았을 때 골리앗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거구 골리앗 앞에서 무서워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을 때 어린 다윗은 물멧돌 한 개를 들고서 의연하게 나갔습니다.
아마 다윗의 눈에는 골리앗이 살찐 강아지 정도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맷돌을 던질 때는 산만큼 크게 보였겠지요. 빗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볼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한 믿음의 사람 눈앞에 무엇이 두려울 것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콩알을 작다고 보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단 1m앞에서도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골리앗을 크다고 생각하면 감히 그 앞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나 해 내고 말겠다는 불 같은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초인적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념의 마술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골리앗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크게 보입니까? 작게 보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주시해 보십시오.
1개월후 1년후 반드시 다르게 보여질 것입니다.
열자(列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비위(飛衛)는 활의 명수로 100보 앞의 콩알을 쏘아 맞추는 신기(神技)를 가졌습니다. 기창(紀昌)이라는 젊은이가 그 재주를 배우고자 비위에게 나아가 그 뜻을 고했습니다. 그때 비위는 「뜻은 든든히 세웠는가?」「예, 어떤 일이 있더라도 기어코 선생님의 재주를 배우고야 말겠습니다. 활과 살을 가져 오리이까?」 「아니, 궁시(弓矢)는 뒤의 일, 활을 쏘려면 먼저 겨냥을 똑똑히 뱌로 해야하고, 겨냥을 똑바로 하려면 눈을 깜박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니 돌아가 눈을 깜박이지 않는 법을 익혀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3개월간 베짜는 부인의 발뒤꿈치에 송곳을 매어놓고 불가 머리카락 하나 사이에 눈을 대고 3개월간 훈련하는 가운데 눈을 깜박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훈련 과정을 마친 기창에게 다음에는 벼룩 한 마리를 실에 매어놓고 「크다, 크다」 생각하며 나중에 바위만큼 보이거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후에 기창은 스승을 다시 찾아와서 「반년만에 밥알만, 1년만에 콩알만, 2년만에 주먹만, 3년이 지난 지금에는 벼룩이 마치 바위만 하더이다」하고 보고 했습니다.
「음, 그런가! 그럼 궁시를 가져오라」 백보암에 공 한 알을 매달고 비위가 먼저 쏘니 3발에 3증, 콩알이 짜개졌습니다.
이어 기창에게 쏘기를 명함에 기창 또한 10발에 10중, 그 재주가 스승과 똑 같았습니다. 이 어찌 활 뿐이겠습니까?
무엇인가에 대성하기 위해서는 거기에 모든 정력을 쏟아 넣어야 합니다.
태양 광선이 렌즈를 통해 한 지점에 집결됨으로써 불이 일어나듯,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집중하여 목표한 바를 이룩하고야 말겠다는 불같은 열의를 가져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는 자신 속에 들어있는 잠재 능력 이외에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 하십니다.
나의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모세와 함께 하시여 홍해를 가르셨고, 죽은 자라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고 그를 의지하여 그의 선하신 뜻대로 무엇을 하겠다는데 우리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윗은 그 믿음을 가지고 골리앗을 바라보았을 때 골리앗이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거구 골리앗 앞에서 무서워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있을 때 어린 다윗은 물멧돌 한 개를 들고서 의연하게 나갔습니다.
아마 다윗의 눈에는 골리앗이 살찐 강아지 정도로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물맷돌을 던질 때는 산만큼 크게 보였겠지요. 빗나간다는 것은 상상도 해 볼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한 믿음의 사람 눈앞에 무엇이 두려울 것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신입니다.
콩알을 작다고 보고 안 된다고 생각하면 단 1m앞에서도 맞출 수 없는 것입니다. 또 골리앗을 크다고 생각하면 감히 그 앞에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크고 작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이나 해 내고 말겠다는 불 같은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투입하고 초인적 에너지를 집중시켜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 믿는 사람들의 배후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만 있으면 두려울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신념의 마술이 아니라 믿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골리앗이 어떻게 보이십니까?
해결해야 할 문제가 크게 보입니까? 작게 보입니까?
믿음의 눈으로 주시해 보십시오.
1개월후 1년후 반드시 다르게 보여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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