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려지는 기독교인(sprinkling christ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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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려지는 기독교인(sprinkling christian)
미국에서 사용되는 농담 중에 「뿌려지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의 연결은 평생에 세 번뿐인데 아기때 물이 뿌려지고(유아세례) 결혼식 때 쌀이 뿌려지고(미국 풍습으로 식이 끝나고 교회 문을 나설 때 신랑 신부에게 쌀을 뿌림), 죽으면 흙이 뿌려진다는 것입니다(하관식 때 참석자들이 흙 한줌씩을 뿌림) 그렇습니다. 교회에도 엄연히 교인(교적부에 등재된 사람)과 신자(예배자, 봉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등급의 신자가 있습니다. 그 신분은 제자입니다.
그러면 신자와 제자의 차이는 무엇이 다를까요?
신자는 정규적인 예배 참석자로 뜻 그대로 믿는 자라면 제자는 따르는 자요, 함께 가는 파트너(partner)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의 길은 헌신(commitment)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8:19절에 부활하신 후 지상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교인 삼거나 신자 삼으라고 하시기보다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우리가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자와 신자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1. 신자는 자기 혼자의 영혼을 겨우 건지나 제자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
2.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우기를 다소 쑥스럽게 여기나 제자는 큰소리로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외칩니다
3. 신자는 쌀값을 지불하고 살며 제자는 비싼 값을 치르며 삽니다
4. 신자는 혼자 기뻐하고 혼자 만족하나 그러나 제자는 눈물과 기쁨을 남과 함께 나눕니다. 신자와 제자는 겉은 비슷하나 속이 다릅니다.
에수님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은 신자의 상태에서 제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생각과 행동을 같이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파트너가 된다는 말은 형식이 아니라 진짜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움직임이 내 속과 내 생활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심자가 제단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할아버지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휫 체랄드(Fitzgerald)는 애란에서 살았습니다.
그곳 농촌은 길가에 바람을 막기 위하여 높은 담이 쌓여 있었는데 소년들은 자주 그 돌담에 올라가는 것을 놀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휫 체랄드는 겁이 많아 올라갈 생각을 못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그의 모자를 빼앗아 담 위에 올려놓고 가버렸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모자를 찾기 위해 돌담에 도전했고 한번 성공한 뒤에는 더 높은 담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투자(혹은 헌신)가 있어야 몸이 움직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이 먼저 이루어져야 제단에 나를 먼저 올려놓아야 행동이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뿌려진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인이 된데서 결코 멈추지 말고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신자보다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파트너는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교회에서 전도와 봉사와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려는 적극적인 교육임을 아셔야 합니다. "뿌려진 기독교인"으로 남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겠습니까?
미국에서 사용되는 농담 중에 「뿌려지는 기독교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와의 연결은 평생에 세 번뿐인데 아기때 물이 뿌려지고(유아세례) 결혼식 때 쌀이 뿌려지고(미국 풍습으로 식이 끝나고 교회 문을 나설 때 신랑 신부에게 쌀을 뿌림), 죽으면 흙이 뿌려진다는 것입니다(하관식 때 참석자들이 흙 한줌씩을 뿌림) 그렇습니다. 교회에도 엄연히 교인(교적부에 등재된 사람)과 신자(예배자, 봉사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등급의 신자가 있습니다. 그 신분은 제자입니다.
그러면 신자와 제자의 차이는 무엇이 다를까요?
신자는 정규적인 예배 참석자로 뜻 그대로 믿는 자라면 제자는 따르는 자요, 함께 가는 파트너(partner)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제자의 길은 헌신(commitment)과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28:19절에 부활하신 후 지상에 40일 동안 계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라고 당부 하셨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교인 삼거나 신자 삼으라고 하시기보다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우리가 제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제자와 신자의 차이는 어떻게 다를까요?
1. 신자는 자기 혼자의 영혼을 겨우 건지나 제자는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
2. 신자는 그리스도의 사람이라 불리우기를 다소 쑥스럽게 여기나 제자는 큰소리로 "나는 크리스챤이라"고 외칩니다
3. 신자는 쌀값을 지불하고 살며 제자는 비싼 값을 치르며 삽니다
4. 신자는 혼자 기뻐하고 혼자 만족하나 그러나 제자는 눈물과 기쁨을 남과 함께 나눕니다. 신자와 제자는 겉은 비슷하나 속이 다릅니다.
에수님이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은 신자의 상태에서 제자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생각과 행동을 같이하는 파트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의 파트너가 된다는 말은 형식이 아니라 진짜로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움직임이 내 속과 내 생활을 채우는 것을 말합니다. 또 예수님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심자가 제단에 자기를 올려놓는 것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할아버지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의 할아버지 휫 체랄드(Fitzgerald)는 애란에서 살았습니다.
그곳 농촌은 길가에 바람을 막기 위하여 높은 담이 쌓여 있었는데 소년들은 자주 그 돌담에 올라가는 것을 놀이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휫 체랄드는 겁이 많아 올라갈 생각을 못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그의 모자를 빼앗아 담 위에 올려놓고 가버렸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모자를 찾기 위해 돌담에 도전했고 한번 성공한 뒤에는 더 높은 담에도 도전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곧 투자(혹은 헌신)가 있어야 몸이 움직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이 먼저 이루어져야 제단에 나를 먼저 올려놓아야 행동이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뿌려진 기독교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인이 된데서 결코 멈추지 말고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신자보다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파트너가 되는 것입니다. 파트너는 헌신과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교회에서 전도와 봉사와 헌신을 강요하는 것은 바로 여러분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게 하려는 적극적인 교육임을 아셔야 합니다. "뿌려진 기독교인"으로 남으시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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