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에오신 예수(눅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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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에 오신 예수(눅24:33)
누가복음 24:33절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어느 골방에 모여 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골방은 걱정의 골방, 불신의 골방, 공포와 불안의 골방이었으며 방황과 절망의
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뒤의 골방은 그들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바꾼 출발 지점이 되
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자들은 그 골방에서 믿음은커녕 신념도 잃고
내일도 잃어버린 상황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2차 대전 때 두 명의 미국 비행사가 바다에 불시착하여 어느 무인도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들은 절망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동시에 지나가는 배를 만나기 위하여 신호가 되도록
배의 돛대로 십자가를 만들어 모래 위에 세웠습니다.
그중 한사람이 며칠 후에 그 십자가를 뽑아 거기에 의지하고 가는데 까지 헤엄을 쳐 다음 섬을 찾아보
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그론 노력보다는 십자가를 그대로 세워 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두 사람의 주장 중 누가 옳다고 판단됩니까?
결국 십자가를 뽑아 거기 의지하고 헤엄을 쳐서 탈출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상대방을 설득 시켰는데 그
의 지론은 이러했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은 산수에서 사용하는 더하기 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묻
어 두거나 세워 두지 말고 우리의 노력을 여기에 더할 때 부활과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
입니다. 물론 억지로 만든 이론이지만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골고다에 세워진 죽음의 십자가가 부활
의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우리는 골고다에 갈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루살렘
골방(교회)에 모여야 하지 않겠는가?
골방에 모인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부활에 주님은 오셨고 그 주님을 만났을 전격적인 방향
전환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산다는 자체가 답답한 골방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던 제자들
과 다름없는 정황이 아닌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갸냘픈 신앙이었지만 순종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어김없이 부활하신 주님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의 믿음이 한없이 여릴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항상 확신에 넘쳐 있지 못합
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떠나지 않고 안개처럼 깔려오는 어둠 속에서도 십자
가에 올라타고 창파를 헤엄쳐 가는 비행사들처럼 최선을 다 할 때 주님은 거기에 오시고 부활의 능력으
로 여러분 속에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의 골방을 지키십시오. 주님께서 몸 깨뜨려 세우신 교회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33절이하에 보면 제자들이 어느 골방에 모여 있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골방은 걱정의 골방, 불신의 골방, 공포와 불안의 골방이었으며 방황과 절망의
골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뒤의 골방은 그들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바꾼 출발 지점이 되
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제자들은 그 골방에서 믿음은커녕 신념도 잃고
내일도 잃어버린 상황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2차 대전 때 두 명의 미국 비행사가 바다에 불시착하여 어느 무인도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들은 절망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며, 동시에 지나가는 배를 만나기 위하여 신호가 되도록
배의 돛대로 십자가를 만들어 모래 위에 세웠습니다.
그중 한사람이 며칠 후에 그 십자가를 뽑아 거기에 의지하고 가는데 까지 헤엄을 쳐 다음 섬을 찾아보
자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친구는 그론 노력보다는 십자가를 그대로 세워 놓고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생각에는 두 사람의 주장 중 누가 옳다고 판단됩니까?
결국 십자가를 뽑아 거기 의지하고 헤엄을 쳐서 탈출하자고 주장한 사람이 상대방을 설득 시켰는데 그
의 지론은 이러했습니다. "십자가의 모양은 산수에서 사용하는 더하기 표(+)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묻
어 두거나 세워 두지 말고 우리의 노력을 여기에 더할 때 부활과 구원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던 것
입니다. 물론 억지로 만든 이론이지만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골고다에 세워진 죽음의 십자가가 부활
의 힘을 발휘하기 위하여 우리는 골고다에 갈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루살렘
골방(교회)에 모여야 하지 않겠는가?
골방에 모인 제자들은 다른 제자들처럼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부활에 주님은 오셨고 그 주님을 만났을 전격적인 방향
전환이 생겼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산다는 자체가 답답한 골방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던 제자들
과 다름없는 정황이 아닌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갸냘픈 신앙이었지만 순종
하며 기다리고 있을 때 어김없이 부활하신 주님은 약속대로 그들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때에 따라서는 우리의 믿음이 한없이 여릴 때가 있습니다. 목사님이라고 항상 확신에 넘쳐 있지 못합
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의 테두리 안에서 떠나지 않고 안개처럼 깔려오는 어둠 속에서도 십자
가에 올라타고 창파를 헤엄쳐 가는 비행사들처럼 최선을 다 할 때 주님은 거기에 오시고 부활의 능력으
로 여러분 속에 역사 하실 줄 믿습니다.
기도의 골방을 지키십시오. 주님께서 몸 깨뜨려 세우신 교회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나시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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