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편(눅10:42)
페이지 정보
본문
더 좋은 편(눅10:4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라는 한 촌을 지나실 때 마르다란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
였습니다. 마르다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 정신
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이름하는 여동생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
을 듣느라고 정신 팔려 있었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예수님 내동생에게 빨리 와서 나를 도와주라고 야단 좀 쳐주세요"하고 불
평하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하시면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좋은 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양식보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세상 쪽이 아닌 주님 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편"이
어디인가 확실하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 쪽에 서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
짐은 아닙니까?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더 좋은 편을 택하지 못하고 사람의 비위만 맞
추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이 계시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
6:66) 말씀을 사모하십니까? 세상에서도 선인인줄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악의 편
에 손을 들진 않습니까? 섬기는 편을 좋아합니까? 섬김 받기를 더 좋아하진 않습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이 좋은 편"을 택하시므로 주님께 칭찬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최상의 예의인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마리
아가 "이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칫 판단이 빗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고 예수님 가장 가까운 쪽, 예수님 곁, 예수님 쪽이 항상
"이 좋은 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17년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 때의 일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공산 혁명군들이 교회를 포위하고 "너희 예수쟁이들아, 예배를 중지하고 다
나오라, 문밖에 너희가 믿는다는 예수의 사진이 놓여있다. 누구든지 나오면서 이 사진을 밟
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나오라 불복하는 자는 총살하겠다"고 엄포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신도들은 벌벌 떨며 공산군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노파가 나오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니 침으로 얼룩졌고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그 노파는 사진 옆에 주저앉아 "주님이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를 위
하여 십자가를 지시고도 부족하여 이렇게 침 뱉기우고 발로 밟혔으니 이 죄를 어찌 다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 예수님을 위해 죽겠으니 어서 나를 총살시켜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공산군들이 가만히 보니 진짜 예수쟁이는 이 노파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때 공산군중의 책임자가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들 중에 진짜 예수쟁이는 이 노파뿐이었군
아 너희들은 모두 가짜로 교회 다니며 브르조아들에게 아첨이나 하고 우리를 괴롭혔군아"
하고 총은 난사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결국 이 노파 이외는 다 죽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 노파는 죽음 앞에서도 분명 "예수님 쪽"을 택했던 것입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편에서고 "이 좋은 편"을 택
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가짜 신자란 언제든지 자기에게 편리한 쪽, 자기에게 유익한 쪽만 택하는 그런 사람일 것입
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베다니라는 한 촌을 지나실 때 마르다란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
였습니다. 마르다는 이것저것 음식을 준비하여 대접하려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동분서주 정신
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이름하는 여동생은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 예수님의 말씀
을 듣느라고 정신 팔려 있었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예수님 내동생에게 빨리 와서 나를 도와주라고 야단 좀 쳐주세요"하고 불
평하자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하시면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더 좋은 편"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육신의 양식보다 생명의 말씀입니다.
세상 쪽이 아닌 주님 쪽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마리아처럼 우리는 언제나 "더 좋은 편"이
어디인가 확실하게 자리 잡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 쪽에 서 있으면서도 몸과 마음은 세상 쪽으로 기울어 있는 불편한 몸가
짐은 아닙니까? 교회에 들어와 있으면서도 더 좋은 편을 택하지 못하고 사람의 비위만 맞
추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이 계시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요
6:66) 말씀을 사모하십니까? 세상에서도 선인인줄 알면서도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악의 편
에 손을 들진 않습니까? 섬기는 편을 좋아합니까? 섬김 받기를 더 좋아하진 않습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이 좋은 편"을 택하시므로 주님께 칭찬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마르다는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최상의 예의인 줄 알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듣는 마리
아가 "이 좋은 편"을 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도 자칫 판단이 빗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어떤 경우에고 예수님 가장 가까운 쪽, 예수님 곁, 예수님 쪽이 항상
"이 좋은 편"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917년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 때의 일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공산 혁명군들이 교회를 포위하고 "너희 예수쟁이들아, 예배를 중지하고 다
나오라, 문밖에 너희가 믿는다는 예수의 사진이 놓여있다. 누구든지 나오면서 이 사진을 밟
고 그 얼굴에 침을 뱉고 나오라 불복하는 자는 총살하겠다"고 엄포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던 신도들은 벌벌 떨며 공산군들이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노파가 나오면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니 침으로 얼룩졌고 이리 밟히고 저리 밟혀
처참한 상태였습니다. 그 노파는 사진 옆에 주저앉아 "주님이 어찌된 일입니까? 우리를 위
하여 십자가를 지시고도 부족하여 이렇게 침 뱉기우고 발로 밟혔으니 이 죄를 어찌 다 감당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이 예수님을 위해 죽겠으니 어서 나를 총살시켜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공산군들이 가만히 보니 진짜 예수쟁이는 이 노파밖에 없다고 느꼈습니다.
이때 공산군중의 책임자가 교인들을 향하여 "너희들 중에 진짜 예수쟁이는 이 노파뿐이었군
아 너희들은 모두 가짜로 교회 다니며 브르조아들에게 아첨이나 하고 우리를 괴롭혔군아"
하고 총은 난사했다는 실화가 있습니다.
결국 이 노파 이외는 다 죽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 노파는 죽음 앞에서도 분명 "예수님 쪽"을 택했던 것입니다.
살았느냐? 죽었느냐" 가 문제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편에서고 "이 좋은 편"을 택
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 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가짜 신자란 언제든지 자기에게 편리한 쪽, 자기에게 유익한 쪽만 택하는 그런 사람일 것입
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