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꿈을 꾸셨습니까?(창28: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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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꿈을 꾸셨습니까?(창28:13-14)
盧나라에 盧生(노생)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났는데 하루는 노인의 베개를 빌려 낮잠을 잤습니다. 꿈에 도시에 가서 공을 세우고 가문 좋은 부자집 딸과 결혼하여 그 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려 죽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노생은 조죽을 끓여 먹으면서 "부귀공명(富貴功名)도 별 것 아니구나" 하고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만 꾸다가 포기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목표하는 일에 몸을 던져 보기도 전에는 成敗(성패)를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신앙 생활이란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그 자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에나 전력투구(全力投球)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으면 설령 그렇지 않고도 이겼다면 통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죽자고 뛰고 부딪혀서 막판에 이겼을 때 그 기분을 우리는 "감격" 이라고 합니다.
지난 월드컵 16강 전에서 이태리에게 한 골을 내주고도 끝까지 몸으로 부딪히며 뛰다가 동점골을 넣고 나중에 연장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Golden Goal을 넣었을 때 선수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얼마나 열광했었습니까? 두뇌 플레이도 필요하지만 몸을 던지지 않는 사람은 좋은 축구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축구 코치 히딩크의 경영학 제1조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동국선수나 고정훈 선수등을 대표 선수 선발에서 탈락시킨 이유가 열심히 뛰지 않았기 때문이란 뒷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앙드레 모로는 "살아가는 기술이란 하나의 공격 목표를 골라 그것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큐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땀방울처럼 온다" 고 했고 지글러는 "꿈만 꾸고 일하지 않으면 공상에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십니까? 그러나 꿈의 내용과 질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꿈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그것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는가는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벧엘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그의 약속을 받은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할지라도 노력하지 않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몸을 던져 전력투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거부(巨富)가 되어 금의환향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꿈을 꾼 후 주먹을 불끈 쥐고 목적지 하란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무려 14년간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머슴살이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6년간 그야말로 뼈빠지게 일했었습니다. 그는 조급하게도 굴지 않았고 그렇다고 게으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외삼촌의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수로 손해를 보게 했을때는 자기 양으로 보충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외삼촌은 야곱의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 하였지만 야곱은 참으며 조금도 자신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았던 것입니다(창31:38-42절 참조).
이것이 야곱의 값진 투쟁이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변칙이나 비정도(非正道)를 택하지 않고 굳굳하게 믿음의 도리를 다하며 참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야곱의 부딪침은 결국 꿈을 성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40절에 보면 야곱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던 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하고 의심하는 외삼촌 라반에게 실토했습니다.
우리는 물론 좋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19세기 중엽 미국 동부에서 마차 두 대가 서부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은 달랐습니다. 한 대는 서부황금을 찾아 죽자 살자 달렸습니다.
황금을 생각하면 촌음이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한 대는 주일을 지키면서 여유 있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간 마차는 L. A로 갔고, 평온한 신앙생활의 꿈을 가지고 달린 한 대는 유타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L. A는 미국내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도시가 되었고 유타주는 가장 부유한 믿음의 도시가 되었답니다.
우리 좋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노생 처럼 꿈만 꾸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야곱처럼 시간이 좀 걸려도 기필코 쟁취합시다.
믿음 안에서 최선의 경주를 다할 때 구하는 목적 성취 외에 더 귀한 평안의 복을 하나님은 보너스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
盧나라에 盧生(노생)이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청운의 꿈을 가지고 고향을 떠났는데 하루는 노인의 베개를 빌려 낮잠을 잤습니다. 꿈에 도시에 가서 공을 세우고 가문 좋은 부자집 딸과 결혼하여 그 나라의 재상(宰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병에 걸려 죽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노생은 조죽을 끓여 먹으면서 "부귀공명(富貴功名)도 별 것 아니구나" 하고 한탄하며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만 꾸다가 포기하는 어리석은 인간을 풍자한 이야기임에 틀림없습니다. 목표하는 일에 몸을 던져 보기도 전에는 成敗(성패)를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로마서 12:1절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곧 신앙 생활이란 우리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그 자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슨 일에나 전력투구(全力投球)하지 않고는 승리할 수 없으면 설령 그렇지 않고도 이겼다면 통쾌한 기분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죽자고 뛰고 부딪혀서 막판에 이겼을 때 그 기분을 우리는 "감격" 이라고 합니다.
지난 월드컵 16강 전에서 이태리에게 한 골을 내주고도 끝까지 몸으로 부딪히며 뛰다가 동점골을 넣고 나중에 연장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Golden Goal을 넣었을 때 선수들은 물론 국민 모두가 얼마나 열광했었습니까? 두뇌 플레이도 필요하지만 몸을 던지지 않는 사람은 좋은 축구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당시 축구 코치 히딩크의 경영학 제1조는 바로 그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동국선수나 고정훈 선수등을 대표 선수 선발에서 탈락시킨 이유가 열심히 뛰지 않았기 때문이란 뒷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앙드레 모로는 "살아가는 기술이란 하나의 공격 목표를 골라 그것에 힘을 집중시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큐렌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는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갑자기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땀방울처럼 온다" 고 했고 지글러는 "꿈만 꾸고 일하지 않으면 공상에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또 어떤 꿈을 꾸고 계십니까? 그러나 꿈의 내용과 질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꿈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얼마나 그것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는가는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만약 야곱이 벧엘광야에서 하나님을 뵙고 그의 약속을 받은 생생한 꿈을 꾸었다고 할지라도 노력하지 않고 꿈을 성취하기 위해 몸을 던져 전력투구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거부(巨富)가 되어 금의환향 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되십니까?
아마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꿈을 꾼 후 주먹을 불끈 쥐고 목적지 하란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무려 14년간을 사랑하는 아내 라헬을 얻기 위해 머슴살이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6년간 그야말로 뼈빠지게 일했었습니다. 그는 조급하게도 굴지 않았고 그렇다고 게으름 피우지도 않았습니다. 외삼촌의 부당한 방법으로 취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실수로 손해를 보게 했을때는 자기 양으로 보충해 주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외삼촌은 야곱의 품값을 열 번이나 변역 하였지만 야곱은 참으며 조금도 자신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살았던 것입니다(창31:38-42절 참조).
이것이 야곱의 값진 투쟁이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변칙이나 비정도(非正道)를 택하지 않고 굳굳하게 믿음의 도리를 다하며 참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야곱의 부딪침은 결국 꿈을 성취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창세기 31장 40절에 보면 야곱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했던 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하고 의심하는 외삼촌 라반에게 실토했습니다.
우리는 물론 좋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꿈을 성취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해야 합니다. 19세기 중엽 미국 동부에서 마차 두 대가 서부를 향해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꿈은 달랐습니다. 한 대는 서부황금을 찾아 죽자 살자 달렸습니다.
황금을 생각하면 촌음이 아까웠습니다.
그러나 한 대는 주일을 지키면서 여유 있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간 마차는 L. A로 갔고, 평온한 신앙생활의 꿈을 가지고 달린 한 대는 유타주로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L. A는 미국내에서 가장 범죄가 많은 도시가 되었고 유타주는 가장 부유한 믿음의 도시가 되었답니다.
우리 좋은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노생 처럼 꿈만 꾸다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야곱처럼 시간이 좀 걸려도 기필코 쟁취합시다.
믿음 안에서 최선의 경주를 다할 때 구하는 목적 성취 외에 더 귀한 평안의 복을 하나님은 보너스로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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