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시선(눅10:39,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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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시선(눅10:39, 42)
미국 경영학의 대가인 드러커(Peter Drucher) 씨는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원인의 60%는 사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교통)이 잘 안 되는데 있다"고 했고, 부부 상담자인 퀴베인씨는 "이혼하는 원인의 50%는 부부 사이의 교통이 원활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범죄심리 학자들은 "범죄자의 90%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제 등 교통관계가 드물고 원만치 못함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전문가들의 통계는 교통이 인간관계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생활, 하나님과의 교통(예배, 기도 등)의 두절,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고통(위선적 신앙, 하나님을 속이려는 행위 등)은 곧 신앙 타락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도 그렇지만 특히 아랍인들은 사람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판별할 수 있다는 관습이 있답니다.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시선"이 향하고 있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나의 "마음의 시선"이 얼마만큼 하나님께 확정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Body Languagu)의 저자인 심리학자 파스트(Julius Fast)박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의 눈을 2초 이상 들여다본다면 당신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시선이 관심의 척도가 된다면 "마음의 시선"은 바로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내 "마음의 시선"이 하나님께 몇 시간 혹은 몇 분이나 쏠리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0:38절 이하에 언급된 마리아는 바로 주님께 "마음의 시선"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식사준비에 바빠 주님의 눈동자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바쁜 마르다가 마리아를 보내 자기를 도와 줄 것을 요구하자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하셨습니다.(41-42참조)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교통,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마리아는 "마음의 시선"을 주님께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의 시선"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 중 몇 시간, 몇 분이나 "마음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십니까? 피조물인 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얼마나 어떻게 교통하는가?"는 곧 그 만큼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데 절대적인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미국 경영학의 대가인 드러커(Peter Drucher) 씨는 "회사 경영이 실패하는 원인의 60%는 사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 교통)이 잘 안 되는데 있다"고 했고, 부부 상담자인 퀴베인씨는 "이혼하는 원인의 50%는 부부 사이의 교통이 원활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범죄심리 학자들은 "범죄자의 90%가 다른 사람과의 대화나 교제 등 교통관계가 드물고 원만치 못함을 발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전문가들의 통계는 교통이 인간관계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는 생활, 하나님과의 교통(예배, 기도 등)의 두절, 하나님에 대한 잘못된 고통(위선적 신앙, 하나님을 속이려는 행위 등)은 곧 신앙 타락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도 그렇지만 특히 아랍인들은 사람의 눈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을 판별할 수 있다는 관습이 있답니다. 말하는 사람의 눈을 보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의 시선"이 향하고 있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나의 "마음의 시선"이 얼마만큼 하나님께 확정되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Body Languagu)의 저자인 심리학자 파스트(Julius Fast)박사는 "당신이 어떤 사람의 눈을 2초 이상 들여다본다면 당신은 분명히 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육신의 시선이 관심의 척도가 된다면 "마음의 시선"은 바로 신앙의 척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루 24시간 중에 내 "마음의 시선"이 하나님께 몇 시간 혹은 몇 분이나 쏠리고 있는지 그것이 문제입니다. 신약성경 누가복음 10:38절 이하에 언급된 마리아는 바로 주님께 "마음의 시선"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언니 마르다는 식사준비에 바빠 주님의 눈동자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너무도 바쁜 마르다가 마리아를 보내 자기를 도와 줄 것을 요구하자 그때 예수님께서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마리아는 더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그대로 내버려두라고 하셨습니다.(41-42참조)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교통, 바로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바로 마리아는 "마음의 시선"을 주님께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마음의 시선"을 어디에 두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하루 중 몇 시간, 몇 분이나 "마음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십니까? 피조물인 내가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얼마나 어떻게 교통하는가?"는 곧 그 만큼 나 자신의 존재 가치를 결정짓는데 절대적인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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