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당료(糖料) 마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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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당료(糖料) 마5:47
여행을 하다 보면 미국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도 인사와 미소를 나눕니다.
항상 무표정하고 서로 경계하는 것 같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좋고 부러운 습관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사회가 부드러워지겠습니까?
내 짧은 인생 경험으로도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발견했는데 "내가 베푼 친절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준 불친절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한국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께" 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꼭 준 것만큼만 오지 않고 부풀어서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친절한 말을 할 때마다 2천원씩 받을 수 있고, 불친절한 말을 할 때마다 천원씩 내어준다고 하면 10년뒤에 당신은 부자가 될 것 같습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습니까? 사실 친절만큼 효과적인 투자는 없습니다. 제가 지난 번 무안 청계에 있는 우리 용해동교회 엘림수양관을 다녀올 때 일입니다. 궂은 비가 내리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한쪽이 망가진 우산을 받고 터덕터덕 가고 계시기에 차를 멈추고 "어디까지 가시냐?" 고 물었더니 면소재지에 있는 아들집에 가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나와는 정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또 목포에서 바쁜 모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근처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서는데 검고 쭈그러진 노인의 손으로 언제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그때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백만원이 생겼다고 해도 이보다 더 기쁠까? 그 기쁨은 한달도 못되어 사라지겠지만 이 기쁨도 두고 두고 나를 뿌듯하게 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친절보다 더한 보상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친절은 입맛을 달콤하게 만드는 당료처럼 삶의 당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절이 있을 때 구석구석이 달콤해집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생애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작이었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친절한 말과 행위가 몇 사람의 가슴속에 저축되었는지를 세어보면 됩니다. 가계부를 검토해 보면 나와 내 가족을 위하여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을 위하여 좋은 일을 얼마를 사용했는가를 계산해 보면 압니다. 친절은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났을 때 빨리 실천해야 합니다.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것은 부자가 된 후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마5:47)고 반문하셨습니다. 한국말에 "인사 차린다"는 표현이 있지만 겉으로 차리는 인사는 사랑이나 존경심이 빠진 인사입니다. 더군다나 나의 사랑이 "형제들" 즉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미친다면 누구나 거의 본능적으로 주고받는 정(情)에 불가합니다. 사랑은 이해 관계가 없는 이웃에까지 연장될 때 정말 사랑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마르니까 사랑도 마릅니까? 아니 오랫동안 장마비가 짜증나게 내리까 반대로 사랑은 메말라 가는 것 아닙니까? "내가 베푼 친절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돌아오되 본전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친절같이 귀한 투자는 없습니다. 슬며시 웃어주는 미소는 나와 상대방을 흐뭇하게 합니다. 분명 우리의 삶은 달콤하게 만드는 당료(糖料)입니다. 지금 사랑의 미소를 지어보세요. 여러분은 사랑을 투자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미국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에도 인사와 미소를 나눕니다.
항상 무표정하고 서로 경계하는 것 같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는 얼마나 좋고 부러운 습관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그럴수만 있다면 얼마나 사회가 부드러워지겠습니까?
내 짧은 인생 경험으로도 한 가지 분명한 진리를 발견했는데 "내가 베푼 친절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준 불친절도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런데 한국 속담에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께" 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꼭 준 것만큼만 오지 않고 부풀어서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친절한 말을 할 때마다 2천원씩 받을 수 있고, 불친절한 말을 할 때마다 천원씩 내어준다고 하면 10년뒤에 당신은 부자가 될 것 같습니까? 가난뱅이가 될 것 같습니까? 사실 친절만큼 효과적인 투자는 없습니다. 제가 지난 번 무안 청계에 있는 우리 용해동교회 엘림수양관을 다녀올 때 일입니다. 궂은 비가 내리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한쪽이 망가진 우산을 받고 터덕터덕 가고 계시기에 차를 멈추고 "어디까지 가시냐?" 고 물었더니 면소재지에 있는 아들집에 가신다고 했습니다. 물론 나와는 정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또 목포에서 바쁜 모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집근처까지 모셔다 드리고 돌아서는데 검고 쭈그러진 노인의 손으로 언제까지 손을 흔들고 계셨습니다. 그때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 백만원이 생겼다고 해도 이보다 더 기쁠까? 그 기쁨은 한달도 못되어 사라지겠지만 이 기쁨도 두고 두고 나를 뿌듯하게 할 것 같았습니다. 사실 친절보다 더한 보상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래서 친절은 입맛을 달콤하게 만드는 당료처럼 삶의 당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친절이 있을 때 구석구석이 달콤해집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생애가 성공이었는지 실패작이었는지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의 친절한 말과 행위가 몇 사람의 가슴속에 저축되었는지를 세어보면 됩니다. 가계부를 검토해 보면 나와 내 가족을 위하여 쓴 돈을 제외하고 남을 위하여 좋은 일을 얼마를 사용했는가를 계산해 보면 압니다. 친절은 항상 기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났을 때 빨리 실천해야 합니다. 좋은 일에 돈을 쓰는 것은 부자가 된 후가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를 한다면 남보다 나을 것이 무엇이냐? (마5:47)고 반문하셨습니다. 한국말에 "인사 차린다"는 표현이 있지만 겉으로 차리는 인사는 사랑이나 존경심이 빠진 인사입니다. 더군다나 나의 사랑이 "형제들" 즉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미친다면 누구나 거의 본능적으로 주고받는 정(情)에 불가합니다. 사랑은 이해 관계가 없는 이웃에까지 연장될 때 정말 사랑다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행이 마르니까 사랑도 마릅니까? 아니 오랫동안 장마비가 짜증나게 내리까 반대로 사랑은 메말라 가는 것 아닙니까? "내가 베푼 친절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돌아오되 본전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친절같이 귀한 투자는 없습니다. 슬며시 웃어주는 미소는 나와 상대방을 흐뭇하게 합니다. 분명 우리의 삶은 달콤하게 만드는 당료(糖料)입니다. 지금 사랑의 미소를 지어보세요. 여러분은 사랑을 투자하고 계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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