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갈대(요8:7-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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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갈대(요8:7-0절)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다. 왜 하필이면 인간을 갈대에 비유했을까? 누구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각자 나름대로 깨달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해답은 자명(自明) 하리라 봅니다. 파스칼 시대에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어젯밤 서남 해안과 동해안 지역을 잔인할 정도로 핥키고 간 태풍 "Meamy" 같은 숱한 자연의 재해에 시달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밀리고 밀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아야 했던 생존의 정황(情況-Hardship)이 어찌 파스칼(pascal) 시대라고 예외였겠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pescal의 명언은 그저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얻어진 정의가 아님을 우리는 충분히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잡하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깊이 있는 충고를 듣기 싫어합니다. 어른들의 훈계는 무조건 고리타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간다움은 거센 세파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생각한다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사람이 생각 없이 살겠습니까마는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매사를 보다 더 신중이 사고(思考)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 1절에 이하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심판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율법대로 "돌로 치라" 하면 예수님께서 주창하시는 "사랑"의 논리를 깨뜨리는 것이요 "용서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 배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8절에 보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극히 대조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군중심리에 몰려 생각 없이 부하 뇌동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나갔다는 것은 젊은이들은 전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별 생각 없이 어른들을 따라 왔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별 생각 없이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깊이 생각했다고 했는데 내 판단이 틀렸을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스칼의 정의에 대입(代入) 한다면 "사람의 사람됨의 가치와 비중은 얼마나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 회사원이 공항으로 사장을 따라 손님을 맞으러 갔습니다. 자기 딴에는 깊이 생각하여 년노 하신 분의 큰 가방을 힘겹게 들고 왔는데 다음 날 사장이 불러 잘못을 충고했습니다. "왜 큰 가방을 들었나?" 작은 가방을 들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귀중품이 작은 가방에 들어 있을 것이 아닌가? 큰 가방은 포오터(porter)에게 맡겼어야 하네. 자네는 포오터의 일감을 빼앗아 우쭐대며 걸어갔어, 작은 가방을 젊은 사람이 꼭 쥐고 갔어야 날치기 당할 위험이 없을 것 아닌가?" 그때 비서는 사장의 가르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답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어른들의 생각과 젊은이들의 예리한 생각과는 아무리 샤프(sharp) 할망정 무게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어도 "예수님이라면 어떠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라면 크리스챤들은 "기도하는 갈대"입니다.
이 가을에 또 어수선한 이 세상에서 우리 생각하며 삽시다. 기도하며 삽시다.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했다. 왜 하필이면 인간을 갈대에 비유했을까? 누구든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각자 나름대로 깨달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해답은 자명(自明) 하리라 봅니다. 파스칼 시대에도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어젯밤 서남 해안과 동해안 지역을 잔인할 정도로 핥키고 간 태풍 "Meamy" 같은 숱한 자연의 재해에 시달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밀리고 밀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아야 했던 생존의 정황(情況-Hardship)이 어찌 파스칼(pascal) 시대라고 예외였겠는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한 pescal의 명언은 그저 평범한 생활 속에서 얻어진 정의가 아님을 우리는 충분히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가운데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복잡하니까 그냥 넘어가자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깊이 있는 충고를 듣기 싫어합니다. 어른들의 훈계는 무조건 고리타분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인간다움은 거센 세파 속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면서도 생각한다는데"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찌 사람이 생각 없이 살겠습니까마는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매사를 보다 더 신중이 사고(思考)하고 행동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경 요한복음 8장 1절에 이하에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 심판을 요구했습니다. 그것은 물론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술책이었습니다. 율법대로 "돌로 치라" 하면 예수님께서 주창하시는 "사랑"의 논리를 깨뜨리는 것이요 "용서해 주라"고 하면 율법을 어긴 배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시자 8절에 보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극히 대조적인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군중심리에 몰려 생각 없이 부하 뇌동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나갔다는 것은 젊은이들은 전혀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별 생각 없이 어른들을 따라 왔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별 생각 없이 행동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생각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깊이 생각했다고 했는데 내 판단이 틀렸을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파스칼의 정의에 대입(代入) 한다면 "사람의 사람됨의 가치와 비중은 얼마나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며 사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젊은 회사원이 공항으로 사장을 따라 손님을 맞으러 갔습니다. 자기 딴에는 깊이 생각하여 년노 하신 분의 큰 가방을 힘겹게 들고 왔는데 다음 날 사장이 불러 잘못을 충고했습니다. "왜 큰 가방을 들었나?" 작은 가방을 들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귀중품이 작은 가방에 들어 있을 것이 아닌가? 큰 가방은 포오터(porter)에게 맡겼어야 하네. 자네는 포오터의 일감을 빼앗아 우쭐대며 걸어갔어, 작은 가방을 젊은 사람이 꼭 쥐고 갔어야 날치기 당할 위험이 없을 것 아닌가?" 그때 비서는 사장의 가르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졌답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은 어른들의 생각과 젊은이들의 예리한 생각과는 아무리 샤프(sharp) 할망정 무게가 다른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챤들은 아무리 내 생각이 옳다고 판단되어도 "예수님이라면 어떠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이 생각하는 갈대"라면 크리스챤들은 "기도하는 갈대"입니다.
이 가을에 또 어수선한 이 세상에서 우리 생각하며 삽시다. 기도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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