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명령(地上命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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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왕 J.C penny는 1971년 95세로 죽을때 미국 전역에 1,660개의 점포를 남겼습니다. 그가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은 1889년 이었습니다. 콜로라도 주 롱몬트에 푸줏간을 냈는데 지방 호텔 주방장에게 뇌물을 주지 않으면 가게를 제대로 경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페니는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념이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 6:33)" 는 예수님의 황금률이었습니다. 페니는 이 황금률을 가게에 붙여놓고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모두가 그를 비웃고 고지식해서 장사를 못할 것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날마다 번창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원칙을 따라 살 것인가? 내 주고나대로 살며 신앙문제는 적당히 참고만 할것인가?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의 약속의 말씀도 확실히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를 바꾸어 살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구하는데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칙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Living Bible 에서는 마 6:33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곧 당신이 당신의 생명 첫 자리를 예수님에게 내어드리고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시는 대로 산다면 모든것을 너희에게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받기를 원하십니까? 순서를 바꾸어 살지 맙시다. 마음 복판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하여 경제 문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이 매우 혼란해졌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크리스천들의 신앙열이 식어진 점입니다. 6.25동란후 폐허된 잿더미 위에서 꿇어 엎드려 눈물로 부르짖던 그 기도소리들은 사그러진 채 엉뚱한 욕구들로 저마다 가슴들이 부글거리고 있습니다. 모두 코로나에 한방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즈음 교회들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핑계거리가 생긴 교인들이 얼씨구나 세상으로 넘어져서 출석률이 급격히 감소하자 교역자들마저 열정이 식어 버린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에 정신을 다 빼앗겨 버린 이때 그들에게 희망의 동력을 불어 넣어줄 사명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역사의 굴곡마다 그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왔지 않습니까?
이럴 때 교회들마저 순서가 엇갈려 비틀려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상”(빌 3:14) 만을 향하여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의 순서만은 확고해야 합니다. 바람 앞에서 알곡으로 남을 것인가? 쭉정이로 날아갈 것인가? 무게 중심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걱정하시 주님의 염려 앞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 식어진 신앙열에 성경의 불씨를 다시 일으킵시다. 무너지고 부셔지고 정신없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이 시대현상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포성처럼 듣고 벌떡 일어섭시다.
그런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순서를 바꾸어 살고 있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을 구하는데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원칙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Living Bible 에서는 마 6:33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곧 당신이 당신의 생명 첫 자리를 예수님에게 내어드리고 그리고 예수님이 바라시는 대로 산다면 모든것을 너희에게 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다 받기를 원하십니까? 순서를 바꾸어 살지 맙시다. 마음 복판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야 합니다.
요즈음 코로나 19로 인하여 경제 문제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의 삶의 가치관이 매우 혼란해졌습니다. 더욱 가슴 아픈 것은 크리스천들의 신앙열이 식어진 점입니다. 6.25동란후 폐허된 잿더미 위에서 꿇어 엎드려 눈물로 부르짖던 그 기도소리들은 사그러진 채 엉뚱한 욕구들로 저마다 가슴들이 부글거리고 있습니다. 모두 코로나에 한방 맞아 그로기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요즈음 교회들도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핑계거리가 생긴 교인들이 얼씨구나 세상으로 넘어져서 출석률이 급격히 감소하자 교역자들마저 열정이 식어 버린 것 같아 너무 안타깝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에 정신을 다 빼앗겨 버린 이때 그들에게 희망의 동력을 불어 넣어줄 사명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역사의 굴곡마다 그 역할과 사명을 감당해왔지 않습니까?
이럴 때 교회들마저 순서가 엇갈려 비틀려지면 안 됩니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상”(빌 3:14) 만을 향하여 달려갔던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의 삶의 순서만은 확고해야 합니다. 바람 앞에서 알곡으로 남을 것인가? 쭉정이로 날아갈 것인가? 무게 중심만은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고 걱정하시 주님의 염려 앞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우리 식어진 신앙열에 성경의 불씨를 다시 일으킵시다. 무너지고 부셔지고 정신없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이 시대현상을 직시하며 하나님의 지상명령을 포성처럼 듣고 벌떡 일어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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