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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복음성가)이야기 및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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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순복 작성일 21-08-12 09:30 조회 3,2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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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이야기 / 기타 
2013. 12. 14. 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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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이정엽행정사입니다.

 행정사가 왠 CCM? 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저는 행정사이기 이전에 교회에서는 찬양대에서 봉사를 하고 있고 또 젊었을 때는 찬양인도도 하고 찬양분야에서는 많은 활동과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도 예전에 80년대부터 꾸준히 앨범을 모아 600여장의 앨범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아마 현재까지 발매된 앨범의 60%는 넘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찬양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갖고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현재도 가요보다는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신앙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복음성가가 제가 살아오면서 매우 힘든 순간에서도 같이 했기 때문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됩니다. 

 이에 뒤늦게 나마 같이 정보를 나누고자 그리고 인터넷을 보더라도 해외의 CCM 역사만 있고 국내에 대한 내용은 없어서 이렇게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85년부터 2000년까지는 주로 테이프를 구매했고, 이중에 더 좋은 앨범은 CD를 구매해서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에서는 CD 100여장는 빠져 있습니다. 이미 구워서 하드디스크에 저장을 해놔서 케이스도 다 버렸습니다.__)

 

  제가 검색을 해보니까, 복음성가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나오지 않아 이렇게 글을 올려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인 85년도인가 처음으로 복음성가 테이프를 듣게 되어 당시 큰형이 샀던 기타를 같이 어깨 너머로 치게 되었고 88년도에 고 1 약수동에 있는 신일교회에서 처음으로 고등부에서 찬양팀에 들어가 직접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89년 고2 때부터는 직접 찬양인도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린 나이에에 찬양인도를 하면서 작은 찬양집도 내게 되었고 노력을 많이 하였습니다. ^^  그래서 제가 가지고 있는 경험한 지식을 가지고 적게 되었습니다.



 <50년대, 60년대, 70년대>



 제가 태어나기 전인 50년대 한국전쟁이후, 미군을 통해서 한국에 들어왔다고 하네요. 이때 소개된 것이 "내게 강같은 평화"

"예수님 찬양" ,"주 예수 사랑 기쁨 나 마음속에" 등등이 있었다고 하네요..

 50년대~70년대의 내용들은  <전용대 목사님의 복음성가관련 논문>의 내용을 주신 것으로 기초로 적었습니다.

그리고 60년대에 미국의 복음성가가 소개되기시작되었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이 때는 정말 일부만 불렀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60년대에는 전국대학생선교회(CCC)에서 1963년에 한국최초의

복음성가집이 나왔다고 하네요. 그리고 십대선교회,극동방송복음성가도 이 때 한국 복음성가 전파에 노력을 하였고,

이들은 "나주의 믿음갖고" , "주님뜻대로 살기로 했네" 라는 너무나 친숙한 복음성가가 이때 들어왔네요.



 본격적으로 복음성가가 우리나라에서 교회음악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라고 합니다.

 1970년대 성령운동과 함께 많은 전도활동과 부흥회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이 때 교회 성도수가 증거하면서 전도집회 및

부흥집회에 맞는 음악이 필요했기에, 대중가수로 활동하신 크리스챤 연예인들이 찬송가를 부르면서 알려졌고, 학교 등에서

도 합창단과 선교단들의 활동이 7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역시 이 때에는 윤형주, 조영남, 윤복희, 서수남, 이종용, 허림, 방은미 등의 가수분들이 찬양도 열심히 불러주셨네요.



 제가 어렸을 때여서 모르겠지만, 민희라. 최귀라, 김희자같은 여성찬양가수분들의 테이프를 어머님이 들으신 것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검색창에 성함을 검색하면 나오네요.. 참 반갑고 벌써 40년이 넘는 것들이지 보니까 반갑네요)

 그런데 거의 찬송가나 오래된 복음성가 중심 위주으로 많이 불렀던 것 같습니다.

 (예전에 어렸을 때 순복음중앙교회->여의도순복음교회 전신 에서 나왔던 복음성가집도 생각나는데 아마도  제 기억에는

최자실 목사님과 조용기 목사님의 말씀이 있었고, 다음부터는 정말 오래된 복음성가 "오늘집을 나서기전 기도했나요."

"나는 알았네" 등의 곡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나고,이외에도 "내일일은 난몰라요.", "승리는 내것일세",  "이제는 나사는 것 아니요 주 내안에 사네", "복음을 심었습니다.", "나 자유 얻었네.", "예수님 찬양 예수님 찬양", "성경암송가", 신상근 목사님의 "실로암" 등이 주로 애창되었죠.. 바로 기도원에서 많이 부르던 찬송가 와 같이 했던 복음성가가 대중적으로 많이 불었던 것

같습니다.




 <80년대>

 

 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 직접 창작한 곡들이 80년대 초에 나오면서 80년대 후반에는 큰 전성기를 누렸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전용대목사님의 논문에는 김석균의 "사랑의 종소리", "사랑(정두영 곡)", "주여 이 죄인이(전용대 곡)"이 80년대 초반에 많이

유행하고 불리워 졌고 한국 창작 복음성가의 선구자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80년대에는 김민식, 주숙일, 김석균, 최미, 최용덕, 최명자, 손영진 등의 복음성가 가수들이 새로운 창작곡으로

크게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창작곡으로 무장한 노래선교단이 있었는데 아마 기존 찬송가와 해외에서 번역한 곡 중심이 아닌, 직접 창작한 곡들로

앨범을 내고 활동을 한 찬양단의 시작은 "주찬양 선교단"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 리더이자 작곡자인 "최덕신"이 등장을 했는데, 이 때가 1986년인 것으로 기억납니다

 대표곡이 "나"(송명희 시, 최덕신 곡) ,로 81년도에 만들어졌고, 80년대 중반에 본격적인 활동을 했던' 주찬양 선교단'을 이끌면서 지금도 불리워 지는 수많은 혁신적인 곡들을 만들어낸 명실상부한 현대 CCM의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이름", "너의 쓴잔을", "오기쁘도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는 소리요" 등 주찬양선교단에서 나온 거의 모든 곡이 당시에는 전국 교회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을 정도로 인기를 얻었고  교회음악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많은 교회 청소년들이 이 곡들을 연주하기 위해 기타를 구매하고 배우는 등, 교회음악의 새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젊은 청(소)년들은 주찬양 카세트 테이프와 큰 피아노 악보를 안 산 사람이 오히려 적었듯이 CCM 대중화에 힘쓴 것은 분명히 큰 일을 한 것보입니다. 

 

  그리고 1987년에 만들어진 "옹기장이 선교단"도 좋은 곡으로 창작복음성가 보급에 힘을 많이 썼고 저도 옹기장이 테이프도 나오는 족족 사서 늘어날 정도로 많이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 때 한국의 미니카세트는 엘지가 많았는데 꾹 눌러야 되는 반면, 일본에서

소니(SONY)나 아이와(AIWA) 미니카세트는 터치만해도 테이프가 재생되어 고가이기도 하였지만, 손상이 적어서 그나마 오랫동안 잘 듣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80년 후반에는 개인적이거나, 듀엣으로 많이 냈는데 대표적인 가수들이 "최덕신, 다윗과 요나단, 최인혁, 박종호, 송정미"등이 배출되었고 대중으로 들어왔고 이들의 전성기는 대부분 89년부터 90년, 91년 등 90년대 초반에 많이 불리워 졌습니다.



  저의 경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구입한 복음성가 테이프는 1985년도인가 조호선, 조호영 1집 "어린아이처럼"였습니다.

 그 전까지는 늘 교회에서 불리워왔던 해외에서 들어온 오래된 복음성가만 들었다가, 우연히 기독교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너무 반해서 바로 구입해서 집에 와서는 오래된 커다란 카세트레코더에 넣고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테이프 자체도 별로 없었지만 늘 기도원에서 교회 부흥회 때 부르던 단조로운 복음성가에서 더욱 기교있고 새로운 풍의 찬양곡을 접하니 충격아닌 충격을 받아서 은혜 가운데 밤새 듣곤 하여 결국은 테이프가 끊어져서 다시 구매를 했을 정도로  교회음악에 푹~ 빠진 적도 있습니다. 

 

  (현재도 어려운 때마다 당시에 느꼈던 감동을 다시 되살리고자 들으면서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 87년으로 기억이 되는데 "그 사랑", "하늘의 해와 달들아."가 수록된 "찬양하는 사람들 1집"은 주찬양과 함께 전국을 휩쓴 거의 초 베스트 앨범이었죠..(이정미 사모님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모두 푹~~ 빠져 헤어나질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때는 CCM 하시던 분이 적어서 최덕신, 박종호 등 달리 활동했던 분도 앨범제작에 참석하여 같이 활동을 했던 것을 보면 참으로 우정이 돈독했던 시대였던 같습니다.

 

  당시에는 거의 대부분의  교회의 고등부, 청년부는 찬양대회를 하면  여기에 있는 곡을 밤새 연습해서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도 벌써 25년이 지난 곡들이지만 아직도 감동으로 인해 향수에 빠져들어기도 합니다. (응답하라 1994를 넘어서 1988, 1989로 가는 분위기 입니다.)

  이제는 40세가 넘어 기타를 제대로 치지 못하지만 아직도 이 때의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서 듣으면서 다시 불러보곤 합니다.^^

 

  (한 때는 약수동에 크리스찬 카페를 만들어 제가 가지고 있던 복음성가와 CCM을 들려주어 전도를 하고 싶었는데 11월에 제가 몸담고 있는 안양석수교회 비젼센터 2층에 생겨서 너무 좋았습니다. 

  작은 꿈이 이루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리고 87년도에는 우리나라에 대중적인 찬양모임이 시작되었는데 바로 온누리교회의 "경배와 찬양"의 목요찬양이었습니다.

  하용인 선교사님이 이끈 당시 목요찬양은 미국식 찬양집회를 모델로 당시에 엄청난 부흥을 일으켰고 여기에 나온 예배를 위한 복음성가들은 거의 전국 방방곡곡에서 청년 예배 때 불리워지고 새로운 예배 문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두란노 경배와 찬양에서 나온 "전하세 예수"는 1집~15집까지 나왔는데 당시초창기의  "호산나 호산나", "전하세 예수", "먼저그의 나라와", "주 다스리네", "주님의 성령이", "예수사랑","오나의 자비로운 주여", "주사랑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주님의 시간에","예수사랑해요" 등 주옥같은 해외에서 만들어진 찬양 곡들이 대거 번역되어 국내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와 동시에 마라나타 싱어즈, 컨티넨탈싱어즈 등 해외 교회음악앨범도 바로 국내에서 소개되어 국내에 엄청나게 들어와 구매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대한민국의 CCM계를 이끈 주역들은 많으신 분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분들은 위에 언급한 분들 이외에도 복음성가 경연대회를 통해 등장한  "박종호", "송정미"과 "소리엘" 등 엄청난 가창력 소유자의 등장입니다.

       
  특히 박종호와 송정미는 전국 복음성가경연대회 대상 및 입상자로 당시 복음성가의 시작은 바로 여기라고 할 정도로 당시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나온 곡들은 바로 앨범으로 나오고 데뷔를 할 정도로 엄청난 무대였습니다.

     
  박종호의 "내가 영으로",  송정미의 "오직 주만이",  소리엘 "낮은 자의 하나님"은 25년이 넘어도 애창되어 계속해서 불러지는 대단한 곡들입니다.
             
 

  이외에도  80년대에는 "예수전도단", "임마누엘 선교단"(내입술로)이 있었었고 "옹기장이선교단"(영원히 찬양드리세), 이성균의 "골목길을 걸을 때" 등은 80년대 후반기에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력이 있는 단체와 복음성가 가수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CCM과 새로운 풍의 복음성가가 당시에 새로운 찬양의 혁명을 일으켰던  느끼게 해준 시대였습니다.  아직도 그 분들 중 박종호, 송정미는 매년 행사를 개최하는 등, 열심히  한국의 CCM계를 이끌고 있습니다.

 

  이 분들이 그만큼 당시에 한국교회음악 발전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고 새로운 다양한 장르를 통해 많은 앨범을 통해 우리는 정말 CCM에 빠져 정말 즐겁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 

 

 (요즘 학생들도 저처럼 찬양의 늪에 빠져서 청소년기를 보내면 커서도 어려운 일이 있어도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이겨낼 텐데 아쉬운 부분이 좀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보급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

 

  80년대를 넘어와서 90년대에는 찬양의 보급과 CD의 보급이 맞물려 엄청나게 발전을 해왔으며 80년대를 이어서 계속해서 90년대에도 위력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특히 "박종호", "최덕신", "최인혁", "소리엘", "두란노 경배와 찬양","예수전도단","주찬양선교단","소리엘","송정미","이성균"(주님이 주신 모든것)"찬양하는 사람들", "좋은씨앗" 들이 앨범을 대거 내놓기 시작하여 엄청난 CCM의 부흥을 일으킨 시대였습니다.

 

  특히 두란노 경배찬양 목요찬양은 지방에서 버스를 대절하여 올 정도로 거의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지금도 기억이 나지만 너무 많아서 강대상까지 모두 올라와서 예배를 드렸던 기억이 사무치게 떠오릅니다. 이렇게도 모자라서 잠실체육관과 올림픽 주경기장도 꽉 적이 있었던 당시 목요찬양의 위력과 영향력이 엄청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 초반에 영향력을 끼쳤던 주인공은 바로 "소리엘"과 "송정미"였습니다.

 소리엘은 남성이지만 매우 깨끗하고 고은 음성으로 통해 주옥같은 곡과 맞물려 너무 아름다운 선율을 구사하여 그들이 발매한 모든 앨범(악보포함)은 베스트 앨범이 될 정도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고, 송정미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호소력이 강한 음색으로 "축복송"과 "잃어버린영혼을 향하여" 앨범 전곡은 당시에 이 앨범을 듣고 선교를 위해 기도하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그리고 축복송은 모든 교회에서 교제송으로 부를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한 좋은 곡들로 거의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모든 교회의 환영곡이거나 축하곡의 대명사였죠.

 

  90년대 중반에는 엄청난 젊은 작곡가 "유상렬", "곽상엽", "김명식"의 등장으로 곡이 찬양들이 한 층 더 업그레이드되었고 좋고 특이한 곡들이 많이 나왔으며 "이성균", "오형아", "SAY", "빛과 소금", "다윗과 요나단" 등의 남성CCM가수 및 "김수지", "강서정", "김승희","창문","아침", "여성CCM가수들이 엄청난 활약을 했을 때입니다."

 

  그리고 90년대 초반에는 뭐니뭐니 해도 바로 "찬미예수"의 저자인 "최용덕 목사님"의 등장입니다. "낮엔 해처럼 밤에 달처럼"의 시와 같은 서정적이고 바로 개인의 심금을 울리는 찬양 장르의 시작은 바로 최용덕목사님의  "찬미예수 300"을 시작으로 "찬미예수 500", "찬미예수 1000", 급기야 "찬미예수 1500"시리즈는 무려 7집(저는 모두 구매함)까지 나왔고  "찬미예수 찬양곡집은 무려 2000곡이 넘는 대한민국 찬양곡의 집대성이어서 모든 교회가 이 찬양집을 저렴한(?) 가격에 대거 구입해서 부를 정도로 베스트 셀러 였습니다. 

 

  그리고 한 때 "대구에서 시작한 예수마을" 등을 운영했고 지금은 근황을 잘 모르겠지만 삼도봉에서 예수마을 하셨던 것도 생각이 납니다.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라는 곡은 많은 크리스찬에 잔잔하게 큰 힘을 준 대곡으로 지금 들어도 매우 큰 은혜가 되는 찬양곡 중 하나로 매우 큰 영향력을 미치는 곡입니다.

 

 
  그 이 외에도 좋은씨앗(이유정, 이강혁)은 "서정적인 노래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수많은 히트곡(아침안개 눈앞가리듯, 주님의 솜씨,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더 좋은 세상)은 정말 맑은 느낌을 갖게 해주는 감미로운 찬양으로 우리에게 아름다운 마음을 갖게 한 정말 귀한 보석같은 곡들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온누리교회의 경배찬양과 같이 "예수전도단의 "부흥"과 인터콥의 찬양집회실황도 당시 예배찬양을 한 층도 발전 시킨 곡들이 많이 나와서 당시 중국선교 및 해외 선교를 향한 찬양들이 많이 발표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90년대에는 70년의 본격적인 시작을 거쳐서 80년대 부터 창작 복음성가가 꽃을 피워 90년대에는 엄청난 발전으로 거쳐서 2000년대부터는 최신적인 찬양곡들이 많이 나오게 되는 등, 시대를 거치면서,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많은 CCM가수가 등장하였고 열심히 하시다가 다시 조용히 사역을 하신분들도 굉장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국 CCM은 80년대 중반에 불같이 타올라서 90년대 초에 엄청난 부흥을 겪었고 90년대 중후반에 원숙함을 나갔으나,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아무래도 인터넷으로 인한 무분별한 다운로드 영향으로 앨범을 판매가 부진하면서  전문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찬양CCM가수가 아무래도 타격을 입었고 활동이 많이 위축되어 90년대 처럼 활성화 되지 못하고 축소되어 갔던 것이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2000년대>

 

  2000년에 잘은 모르겠지만, 제 생각에는 90년대보다는 많이 줄어들지 않았나 싶은데,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히트한 곡들이 많이 있는데요.

  김명식(믿음의 가정, 승리, 봄, 오직예수)1집은 인기를 넘어 그 안에 있는 곡 대부분이 애창을 하게 되었으며,

워킹(기대), 4U(우린 하나죠),꿈이있는 자유(하연이에게),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등이 등장하였고 그리고 CCM연가처럼

'옴니버스 앨범'이 대거 출시되어 찬양의 대중화를 위해 힘썼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80년부터 불려왔던 찬양곡을 모아서 앨범을 만드는 등 선택적인 앨범이 등장하여 더욱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각종 아이템이 있는 앨범들이 출시되었습니다. 

 

  하지만 일반 대중음악계도 그랬지만, 인터넷의 보급으로 앨범 판매가 굉장히 힘들어서 CCM계에서도 영향력이 있으나 앨범을 만들어 보급을 해야 되지만 이러한 풍토에서 제대로 실력과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분들도 많아서 너무 안타까운 시대이기도 합니다.

 

  비록 2000년대에는 90년대보다 많이 시들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명맥을 이오고 있는 25년이 넘는 기간을 활동하고 있는 옹기장이선교단, 예수전도단이 있고, 마커스 (부르신 곳에서)  어노인팅,시와그림, 천관웅, 다리놓는 사람들, 조수아, 부흥 한국싱어즈, 등은 현재도 맹활약을 하고 있는 분들입니다.

 

  이처럼, 간단하게 나마 제가 가지고 있던 앨범을 정리하다보니, 올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이 대부분 90년대의 것으로 카세트 테이프이다보니, 이제는 늘어지고 휘발되어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아직까지도  시간이 될 때 마다 듣고 있으면 과거에 뜨거웠던 청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판매가 중단된 명곡이 담긴 앨범등도 가지고 있어서 가치가 

"전국복음성가 경연대회 8회(대상 송정미-오직주만이, 인기상-골목길걸을때)" "이성균1집(주님이 주신 모든 것)" 등은 이제는 구하기도 어려운 옛날의 명앨범들도 아직 듣고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뽑는 베스트 앨범은 

"주찬양 3집, 주찬양5집, 찬양하는 사람들 1집", "송정미1집","박종호1~2집", "꿈이 있는 자유1집", "바탕색1집", "현석주3집","이성균1집", "전하세예수1~15집", "잔잔한 물가로 1~4집" ,"SAY1집", "워킹1집", "4U1집", "좋은 씨앗 1집" ,"김명식 1집", "전국복음성가경연대회 8회", "청소년복음성가경연대회 2회~4회", "다윗과 요나단 1집", "찬미예수 1000 2집", "찬미예수 1500 1~7집", "김승희 1집", "강서정 1집", "이은수 전혜영 1집", "예수마을 2집" 등이 있습니다. 

 

  복음성가(CCM)가 일반 대중음악과 다른 점은 바로 신앙의 힘이 내재되어 있어서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우리의 힘이 되므로 일반 대중음악하고는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질이 다른 음악입니다.

 바로 신앙의 감동이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본향을 향하게 하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늘 찬송케하는 삶의 기본이 예배이고

그 예배를 꽃피우게 하는 것이 바로 찬양곡이죠. 그래서, 세상도 좋은 노래가 많고 감동도 주고 흥을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녀이니, 그래도 대중음악에만 몰입하지 말고, 어렵고 힘든 과정에 있더라도, 트로트나, 아이돌

노래 등 세상음악에 빠지지 말고 코로나로 많이 힘든 상황임에도 일부 개신교들의 거의 이단적인 행동을 하는 비정상적인 행동

을 하는 과정에서도 순수한 하나님의 신앙과 복음은 절대 잊지 말고, 예전 구약시대에도 다들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세가 구리뱀

을 보면 살라고 했을 때, 모세의 말을 순종한 사람들은 살고, 기독교인이라도 의심하고 안 본 자들은 죽었던 것과 같이, 현재 우리가

코로나의 비극적인 사태에 진정한 신앙이 있음은 여기에서 갈라지게 되는데, 환난에서 진정한 신앙인인지, 아닌 지는 극도의 상황에 닥치면 구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참신앙은 과거 일제강점기 때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하면서 소리없이 조용하게 기도하면서 속으로 찬송을 불렀던 우리

신앙의 선조분들이 보여주었던 그때가 가장 절실하고 뜨거웠던 순간이라고 생각하며, 그 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물질을 따라는 신앙이 아닌,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 본질을 찾아서 초심을 잊지 않은 우리들이 되기를 바라며, 같은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불러도, 누구는 은혜를 받지만 누구는 주문하듯이 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은 늘 우리들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 잊지 마시고, 정해진 인생인 만큼, 우리가 천국에 가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늘 찬양을 통해 신앙을 굳건하게 즐겁던

어려운 일이 닥치는 때이던 한결같이 기도와 찬송부르면서 죽는 날 까지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과 예수님같이 기쁘고 복되게 하나님

곁으로 가시기를 진심으로 말씀드립니다.



 보잘 것는 경험담이고 지식이지만 귀한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2013년 12월 14일 최초 작성, 2020년 8월 30일 수정



(*전용대목사님의 논문을 주셔서 일부 내용은 수정했습니다. 귀한 자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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