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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그 아들의 죽음(삼상31:1-1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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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619회 작성일 10-06-0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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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31장으로 사무엘상의 강해는 끝납니다. 사무엘상의 강해를 마치며 전체 내용에 흐르는 맥(脈)을 간추려 보면 사무엘상은 시골 여인 한나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무참히 멸망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 기록에서 우리가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성의 추대로 왕이 된 사울이 세운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었고, 사무엘의 정신을 이어받은 다윗이 세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신은 한나, 사무엘, 다윗의 정신의 계보로 이어집니다. 사무엘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미비한데서 시작하여 어떻게 장성하여 가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최후의 심판(1-6절)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방문한 후에 싸움에서 이스라엘은 대패하였습니다. 그때 다수의 용사가 길보아 산(이스르엘 골짜기에 잇는 해발 500m 높이의 산)에서 엎드려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사울의 세 아들(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도 살해 되었습니다. 사울도 그 전쟁에서 적의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게 되었는데 아마 사사기의 삼손 생각(삿16:21-25)이 났을지 모릅니다. “할례 없는 자들이...모욕할까 두려워”(4절) 병기 든 자에게 죽여 줄 것을 요구했으나 즐겨 행치 않았으므로 사울이 자기 칼로 찔러 자결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보존만을 위하여 그렇게도 악착같았던 사울은 그렇게 인생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할 때 사울은 죽기 전까지 종교적 선민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선민의식(意識)에는 선민 된 책임과 의무가 따르며, 그것을 행치 못하면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이 여기서 느꼈던 모욕감은 맹목적인 특권의식에서 생겨낫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이, 직분 자들이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음미해 볼 교훈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을 장중에 붙들어 승리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블레셋을 막대기로 사용하여 사울의 굽고 정당치 못한 행동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 때도 바다나 무덤도 죽은 자를 내어놓게 하고 반드시 행한 대로 보응 받게 한다고 했습니다.(요5:28-29, 고후5:10, 계20:13) 나아가서 한 사람의 죄가 무죄한 허다한 사람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준다는 것은 죄의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용감한 사내대장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아들 요나단도 이때 죽었으며, 얼마나 수많은 사람이 명대로 살지 못하고 죽었는가? 우리의 행동이 얼마나 책임성이 있는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울뿐만 아니라 자살 행위는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 받을 수 없습니다.

설령 회개의 죽음이었다고 해도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께 거역하는 행위 일 뿐 아니라 자기만 생각하는 도덕적으로 비겁한 행위인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징계(7-13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들의 뜻을 따라” 한 왕 밑에서 그들의 길을 갔을 때에 그들의 신적 왕이신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맡는 자를 택하여 그의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실(13:14, 행12:22)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환난과 어려운 시기를 지나서 온 백성이 경험으로 배운 후에 다윗을 그들의 지도자로 기꺼이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 상 끝부분인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한 비극적인 결과를 분명히 볼 수 있습니다.

(1) 그들의 우상(사울)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이스라엘 군대가 도망가고 사울과 그 아들들이 죽었음을 알고 모든 백성들이 성읍을 버리고 도망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보다 사울(왕)을 더 의지했습니다. 곧 사울왕은 그들의 우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정기간 그러한 우상을 방관 하시는 것 같지만 단호하게 없애 버립니다. 이제 왕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은 쓰디쓴 실망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들의 헛된 욕구는 결국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제 삶의 터전(성)을 버리고 도망가야 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자행자지(自行自止)의 결과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이 상황을 “네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하므로  폐하였노라”(13:11) 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의 우상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2) 그들의 원수만 신나게 했습니다.

전쟁은 불과 이틀 만에 끝나버렸습니다.(8절) 블레셋 사람들은 죽은 자를 벗기려 왔다가 사울의 죽임을 보고 머리를 베고 갑옷을 벗겨 자기들의 신당에 두고 자기 백성에게 알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의 승리인 것을 구가했고 온 백성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블레셋 사람들은 신 바랑이 났던 것입니다. 그들은 잔인하게 사울의 시체를 벧산(이스르엘 계곡과 요단 계곡이 교차하는 지점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읍) 성벽에 못 박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죄를 짓게 될 때 하나님은 그들의 원수에 의해서 자기 백성이 멸망당하는 고통을 겪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는 욕됨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심판은 무서운 우박이 쏟아지듯 온 나를 휩쓸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므낫세 지파에 속한 요단 동편 성읍, 벧산에서 약 13마일거리) 거민들이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화장하여 유골을 야베스 에셀 나무아래 장사하고 7일을 금식했다고 했습니다. 화장은 당시 고귀한 장례식이었답니다. 그들이 화장을 한 이유 중 하나는 혹 블레셋 사람들에 의하여 시체가 욕보이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7일을 금식한 것은 한 때 그들의 왕이었던 사울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했음을 말해줍니다. 끝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뜻과 반(反)하는 길을 갈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뜻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 뜻의 수행방법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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