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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해몽한 요셉(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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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4,816회 작성일 06-11-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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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해몽한 요셉(40:1-23)

 본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던 당시 바로 그 감옥 속에서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해 주므로 요셉이 전격적으로 승귀(昇貴)하게 된 내용입니다. 꿈꾸는 자인 요셉이 이제는 꿈을 해석하는 자로 바뀐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해명의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강간 미수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상황이었으나 요셉은 일절 원망이나 불평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한 단계 한 단계 꿈의 실현을 이루어져 가게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 이 요셉의 소명자적 자세를 통하여 인류 구속의 위대한 사역을 이루기 위해 모진 고난을 감내 하시며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셨던 주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1. 같은 감옥에 투옥된 두 관원장(1-4)
요셉이 투옥된 그 감옥에 마치 바로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왕을 측근에서 모시던 자들로 죄명은 알 수 없지만 노여움을 샀던 자들이었습니다. 시위대장의 집안에 있는 감옥이었기에 시위대장이 요셉으로 그들을 수종하게 했습니다. 당시 요셉은 자기 코도 석자나 빠져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생각할수록 분하고 억울했을 것이며 계속 자신에게 닥치는 문제들로 인하여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입니다. 더욱이 그곳은 살아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밝게 살았고 자기보다는 남을 돕는 정신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창39:33) 시위대장의 하명을 받은 요셉은 그들을 충성스럽게 섬겼습니다. 성경은 “무릇 네 손에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니라” (전9:1) 충고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형편 속에서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일단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요셉이 그들을 잘 섬겼고 그들에게 인정을 받았기에 그들은 꿈 이야기까지 해 주었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오늘날 각료급에 속하는 고급 공무원들이었고 요셉은 노예출신입니다. 더욱이 주인의 부인을 강간하려고 했던 파렴치범이었습니다. 어지간히 요셉을 신임하지 않았다면 어찌 꿈 이야기까지 할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요셉이 그들의 고통을 마치 자신의 고통처럼 나누며 충성스럽게 봉사했더니 놀랍게도 요셉의 운명이 바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상에 선한 일은 헛수고가 없는 것입니다. 마치 밭에 씨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어디서나 주어진 일에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생활 철학을 가집시다.

2. 꿈을 꾼 두 관원장(5-19)
두 관원장이 같은 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몽조(夢兆)는 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는 무언가 암시하고 있는 내용 같은데 해몽을 할 수 없어 은근히 근심하고 있었습니다.(5,6) 6절에 보면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 빛이 있는지라” 했습니다. 이 부분도 우리에게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자기 처지도 딱한데 남의 심부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짜증나겠습니까? 매사가 귀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인가 도울 거리를 찾았고 먼저 남의 기분을 살펴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얼굴에 근심 빛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려고 말을 걸었습니다. 여기에서 의외로 축복의 발단이 왔던 것입니다. 마귀는 악한 마음을 파고들지만 하나님은 선한 마음에 역사하십니다. 아마 요셉은 근심 빛을 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소개하고저 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표정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표정 때문에 오해 받고 또 시비의 발단이 되기도 합니다. 공자님도 효(孝)에 있어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색난(色難)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 앞에서 어떤 얼굴빛을 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용돈을 주면서도 얼굴이 밝지 못하면 부모는 받으면서도 깨름측 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봅니다. 두 관원장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으로 하여금 해몽하게 하므로 요셉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꿈의 내용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술맡은 관원장의 꿈은 포도나무에 가지가 셋이 있고 싹이 나니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자 포도를 짜서 즙을 내어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다는 것이었습니다.(9-11) 떡굽는 관원장의 꿈 내용은 흰떡 세광주리가 머리에 있고 그 윗 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식물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는 것이었습니다.(16-17) 그때 요셉은 꿈에 본 이상은 하나님의 계시로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반드시 그 뜻을 가르쳐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들이 꿈을 꾸었으나 해석할 자가 없다고 걱정할 때 요셉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해석은 하나님께 있으니 내게 고하라고 요구했습니다.(8절) 프로이드는 꿈은 “억압된 욕망의 표현”이라고 했지만 꿈은 일반적으로 세 종류가 있습니다. ①막 꿈으로 노루 잠자다 개꿈 꾸었다고 하듯이 평상시 억압되었던 문제가 별 의미 없이 꿈으로 표출되는 것이고 ②훈몽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또 생활하는데 교훈을 삼게 하십니다. ③영몽입니다. 오늘 관원장들이 꾼 꿈은 영몽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적인 계시(啓示)를 하여 주십니다. 관원장들도 그들이 꾼 꿈은 예사롭지 않는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신의 뜻이 있는 것 같은데 속시원이 해석할 수 없으니 몸이 달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보다도 꿈에 대하여는 일가견이 있을 수밖에 없고 또 영몽은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를 통해서만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의 비밀까지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꿈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꿈을 잘 꾸십니까?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절망하거나 근심하지 마셔야 합니다. 더더욱 남을 절망에 빠뜨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종류의 꿈인가를 기도하며 알아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으셔야 합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함부로 남의 꿈을 해몽한다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시면 안 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매사에 신중해야 합니다.

3. 요셉의 해몽(interpretation of dream)
그들의 꿈을 요셉은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1) 술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
포도나무 세 가지는 사흘이라 지금부터 사흘 안에 복직되어 바로의 잔을 그 손에 받들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40:12-13) 이 해석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입니다. 대충 짐작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애매모호하게 해몽하지 않았습니다. 그 해석 다음에 14-15절에서 요셉은 술 맡은 관원이 복직되면 바로에게 고하여 자신의 구명운동을 해 달라고 부탁까지 했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덕을 보겠다는 의미보다는 요셉은 그 사람의 복직을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관원장은 복직 후에 요셉의 은혜를 잊고 있었습니다.(23절) 그러나 요셉의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바로를 통해 구출하십니다. 사람이 나를 몰라주고 은혜를 배반해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젖먹이는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고 했습니다.(사49:15)
(2) 떡 굽는 관원장의 꿈 해몽
떡 맡은 관원장의 꿈 해몽을 듣고 떡 맡은 관원장도 은근히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해몽은 불길한 것이었습니다. 사흘 안에 그가 처형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요셉의 해몽은 명확했고 숨기는 것이 없었습니다. 계시의 해석자는 기쁜 것도 할 수 있고 고통스러운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떡 굽는 관원장의 꿈 해몽은 적당히 얼버무려 절망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더 지혜로운 방법일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 보다 더욱 큰 친절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앞으로 남은 3일 인생을 정리하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향하여 소망을 갖게 함이었던 것입니다.(40:19) 참된 해석자는 진리의 협조자로 기쁜 소식뿐만 아니라 슬픈 소식도 전하도록 하나님께 위탁되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단소리만 좋아하지 말고 쓴 소리도 감사하게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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