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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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우리는 지난 시간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통해 간단히 성령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성령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과 동일한 본체이시나 독립된 위격을 가지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1. 성령님의 사역
성령[프뉴-마] pneuma 즉,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 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소개하실때, 참조:(요14:16, 14:26, 요15:26, 요16:7,)
보혜사 라고 소개하셨습니다.
“보혜사”는 원어로 (Paracletos) “파라클레토스”'도와주는자''변호자'의 뜻이 있습니다.
ㄱ.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성령 하나님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니라"(창1:2)
ㄴ. 믿는 사람 뿐만 아니라 불신자들에게까지 마음을 주장하시는 성령님
ㄷ. 성경이 기록될 때 기록자에게 역사하시고 그것을 읽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성령님
성경은 성령으로 쓰여 성령으로 읽는다.
ㄹ.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예수님과 연합하도록 접붙이시는 성령님
칼빈 기독교강요 "예수님을 통해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과 연합"
ㅁ.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하시고 지켜주시고 성장시키시는 성령님
ㅂ. 성도들에게 여러가지 은사(재능)를 부어주시는 성령님
2. 성령님에 대한 오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처럼 '아버지와 아들' 이라는 우리 인간들에게 친숙한 개념이 아니다보디 성령님에 대해 인간적인 추측과 오해가 많습니다.
ㄱ. 성령님은 단순한 능력이나 에너지 또는 동양의 기나 연기 또는 바람 비슷한 것이 아닌 우리와 소통하시는 인격체이십니다.
ㄴ. 하나님과 예수님의 비서 또는 심부름꾼이 아니라 창조사역과 구원사역과 통치사역의 공동주관자이신 성령님
ㄷ. 한 번 성령님께서 한 사람에게 들어오시면 결코 들락날락 하시는 것 없이 항상 함께 하십니다. -다른 데 계시다가 내가 부른다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ㄹ. 성령님께서 인간의 이성과 인지를 마비 쇄뇌시켜 조종하시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소통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우리의 결단과 자발을 이끌어 내십니다.
3. 성령님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한 교단의 차이
모든 교단들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입니다.
성령님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여러 교단들이 생겨났습니다.
특히 구원사역에 있어서 성령님에 대한 견해차이가 특히 심합니다.
거듭남과 성령세례와 성령충만, 즉 성령님의 사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가지각색입니다.
사람들은 성경의 특정 인물의 사례로 성령님의 구원사역의 순서를 규정하려고 하지만 다른 사례도 존재합니다.
이에 따라 여러가지 용어들을 만들어 자기들의 견해를 보퉁하려고합니다.
내적 성령세례, 외적 성령세례, 종말론적 성령충만, 역동적 성령충만, 구원론적 성령충만 등등은 더욱 사람들을 헷갈리게 만듭니다.
ㄱ. 인간의 시간에 속박된 인지체계로 하나님의 구원사역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ㄴ. 성령님의 구원사역을 특정한 패턴이나 방정식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침례교는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보기 때문에 물세례를 강조하다보니 전신입수를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사도행전 1장의 오순절 성령강림을 성령세례로 보느냐 성령충만으로 보느냐의 견해 차이로 심지어 순복음 교단 내에서도 갈등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특히 방언을 동반하는 성령강림을 성령세례라고 주장하며 이는 거듭남과 구별하여 또 다른 필수요소로 강조하는 순복음 교단은 오순절과 방언을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의 견해도 정답이 아니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원칙에 충실하고자 합니다.
ㄱ. 구원사역에 있어서 하나님의 역할, 예수님의 역할, 성령님의 역할을 인간이 정확히 구분하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ㄴ. 오순절 성령 강림이 중생이냐 아니냐 따지는 것도 시간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ㄷ.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결단과 회심을 강조하는 견해는 알미니안주의, 웨슬리안, 카톨릭에서 주장합니다.
인간의 결단과 회심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견해는 어거스틴, 칼빈, 마틴루터를 비롯한 개혁주의의 주장입니다.
유아세례에 유아 본인의 결단과 회심이 있을리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아기와 함께 하시고 아기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시도록하는 부모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개혁주의의 입장
성령님의 구원사역에 대한 인간의 응답과 인식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특정 방식이나 행위를 통해 눈으로 판별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ㄹ.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반드시 끊어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통해 한 번 임하신 성령님은 절대로 떠나지 않으신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방언을 못 받았어도, 뜨거운 눈물의 결단이 없어도, 심지어 물로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거듭남, 중생한 자일 수 있으며 이는 성령세례를 받은 자, 즉 성령의 인침을 받은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눈물 콧물 다 쏟아 회개했어도 진정 거듭나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론입니다.
(고후 1: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고후 1: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사람이 거듭날 때 이미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것으로 거듭남, 중생과 성령세례를 동일한 것으로 봅니다.
거듭남, 중생, 성령세례의 증거는 인간의 행위로 보일 수도 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제자들은 방언과 신유와 예언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의 인격이 변화받았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을 한 번 더 주시라고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은 단 한 번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오순절 성령강림의 후폭풍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단회적 사건이지만 그 역사하심은 지속적입니다.
우리는 한 번 성령세례를 받았으며 더 이상의 성령세례는 필요없습니다.
그러나 한 번 받은 성령세례는 그 순간 끝나지 않고 계속 우리 안에 영향을 끼칩니다.
바로 성령충만이라고 합니다.
성령세례의 증거는 눈에 보일 수도 있고 안 보일 수도 있지만 성령충만은 반드시 드러납니다.
성령세례는 가짜로 받은 것처럼 꾸밀 수 있습니다.
한 번만 울고 방언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오랜 시간을 두고 지속되는 성품과 인격의 변화이기 때문에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①사랑과 ②희락과 ③화평과 ④오래 참음과 ⑤자비와 ⑥양선과 ⑦충성과 ⑧온유와 ⑨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5:22~23)
성령의 열매는 '사랑' 으로 통합될 수 있으며 성령의 모든 은사(방언, 치유, 예언, 등등) 중 가장 크고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또 다시 옛사람의 습성이 되살아 납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성품이 성령님을 통해 우리 옛 사람의 습성을 압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세례 받은 자는 지속적으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반드시 성경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실천해야 성령충만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성령 하나님을 항상 느끼고 대화하며 구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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