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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음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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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281회 작성일 12-10-14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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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8장 1-11절

우리는 본문에서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과 죄의 용서라는 두 가지 딜레마를 보게 됩니다.

주로 구약의 하나님은 어떤 죄든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죽음으로 죄인의 책임을 묻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신약의 하나님은 모든 종류의 죄를 상관없이 다 받아주시는 예수님의 아버지로 묘사합니다.

본문에 보면 간음한 현장에서 잡혔다고 했습니다. 

차고 넘치는 풍기문란 가득한 요즘 영화와 드라마들에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여러가지 정황들이 추측되어 봄직합니다.

예를 들면, 간음 혐의를 미리 포착하고 혐의자들을 추적하여 현장을 급습했지 않았나 정도는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는 거죠.

물론 이에 따른 여러 질문들이 있겠지요, 간음 상대 남자는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되었나, 

혹시 탈출하여 도망 갔나, 아니면 상당한 권력층인지라 사회 안정을 위해 덮어 두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현장에서 즉결 처분으로 형장의 이슬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남자야 어찌됐든 바리세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에게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그녀의 죄를 심판하게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당혹스런 재판 요청에 예수님도 상당히 당황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이라는데 모세의 율법대로 무조건 죽이라고 하면 그간 사람들이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라고 알고있던 이미지가 한 번에 무너질 것입니다. 

아니, 단지 이미지 손상의 문제를 넘어, 만약 율법대로 진짜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선고한다면 율법으로는 합법적이지만 로마 제국의 식민 지배하에 처한 당시의 상황으로서는 로마법에의해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렇다고 죽이지 말라고 선고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기게 됨과 동시에 윤리와 도덕의 관념이 없는 것으로 낙인 찍히게 될 것입니다.

간음 현장에서 붙잡혀왔기 때문에 혐의에 충분한 물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대충 얼버무릴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평소에 항상 자신있고 당당하셨던 예수님도 이번에는 상당히 시간을 지체하시면서 땅에 무엇인가 쓰시기만 합니다.

7 절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기다리기에 지쳤는지 예수님을 재촉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그리고 예수님은 놀랍게도 여인의 간음죄를 향해 사형을 선고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총 4가지의 캐랙터들이 존재합니다.

바로 심판자 예수님과 용서받은 죄인, 그리고 사형수 예수님과 용서를 거부한 죄인입니다.

7절에서 우리는 심판자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됩니다.

성경에 대해 모르면 구약의 공의의 하나님과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은 마치 상반된 모습으로 보입니다.

성경을 제대로 살펴본다면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동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아멘.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 전체를 통해 죄를 철저하게 심판하시고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죄를 지으면 죄인이 되며 오직 죽음만이 그 죄의 댓가임은 구약과 신약 상관없는 불변의 법칙입니다.

오늘 본문의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입장 또한 동일합니다.

그래서 신명기 말씀에 의거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그 여자를 둘 다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할지니라"(신명기 22:22)  

간음한 여인의 댓가는 오직 사형선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좀더 자세히 본문을 읽어보면 이 사형선고는 간음한 여인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니라 그 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내려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형선고의 집행을 자기 자신에게 감당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요한복음 12:47)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공의의 심판자이십니다. 

죄의 문제에 대해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면서까지 그 죄라는 놈을 척결하셨습니다.

사형을 면제받은 우리는 모두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죄인들이었습니다.

심판자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심으로 이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용서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렇습니다. 이제는 죄 짓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거룩해져야 합니다.

죄와 예수님은 절대 같이 공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고자한다면 이제는 죄와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이웃의 죄를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태복음 18:21-22)

용서는 단순히 죄를 묵인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의 죄를 묵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여인에 대한 사형집행 자체가 취소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사형집행을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용서 또한 이와 같습니다.

형제 자매가 나에게 죄를 범하면 우리는 복수하려거나 앙갚음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 죄의 댓가는 이미 예수님께서 대신 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결코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만이 진정한 심판자이시며, 동시에 심판의 댓가를 치루신 유일한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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