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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속인 야곱(창27: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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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926회 작성일 06-06-1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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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속인 야곱(창27:14-29)

 어떤 이유로도 자식이 부모를 속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이야기는 못됩니다.  교회에 못 가게 하므로 도서관에 간다고 속였다고 합시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것도 우발적이 아니요 고의적으로 부모를 속였습니다. 별미를 준비하고 변장까지 하여 시력이 쇠한 아버지를 속였으니 아무리 목적이 선하다고 하더라도 왜 꼭 그래야만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왜 야곱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았을까요?  만약 그때를 기다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하튼 오늘 본문은 이 과정이 아슬아슬한 스릴이 있어 이야기로서는 흥미를 끕니다. 말씀을 보면 이삭은 야곱의 속임수에 수상한 기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곧 바로 축복하지 않고 몇 번씩이나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속임수를 밝혀 내지 못했습니다.  눈이 어두워지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는 데 왜 발견 못했을까요?
또 성경은 이러한 야곱의 속임수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신앙이란 거짓된 방법까지 동원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내도 된다는 것입니까?  우리들의 상식과 이성으로서는 선뜻 이해가 안가는 의문점들이 많습니다.

1. 야곱을 위장시킨 리브가(14-17)
 어머니와 아들이 합작 공연으로 대담하게 남편과 아버지를 속이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가져온 재료로 남편의 입맛에 잘 맞는 별미를 요리했습니다.  그리고 에서의 옷을 꺼내어 야곱에게 입히고 목과 손에 염소 털을 붙여 위장을 시켰습니다.
오늘 본문을 한편의 드라마로 표현한다면 연출은 리브가, 주연은 야곱, 제목은 “눈먼 아버지를 속이다”가 될 것입니다. 리브가는 야곱에게 마음 준비와 연기를 잘 해 낼 수 있도록 믿음과 확신을 주려고 애썼습니다. 모든 책임은 자기가 지겠다고 다짐까지 했습니다.(13절)
야곱 어머니의 기대대로 천부적인 기질을 발휘해서 완벽하게 아버지를 속이는데 성공했습니다. 대사도 야곱은 잘 소화 해 낸 것 같습니다.  수상해 하는 이삭에게 그럴듯하게 대답했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까지 끼여 들였습니다.(20) 이삭은 아무래도 음성이 이상하여 직접 만져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음성을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고 머리를 갸웃거렸습니다.  바로 거기에 허점이 있었습니다.  “아무렴 자식이 부모를 속이겠느냐?” 믿음으로 이상하게만 생각했지 야곱일리야 있겠느냐고 넘어가 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는 성공적으로 끝나는데 연출자 리브가가 배후에 있었기 때문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어떻게 이삭이 속았을까요?
 이삭은 하나님의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이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그렇게도 감쪽같이 속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사무엘상에 보면(9장15절 이하)보면 청년 사울이 오기전날에 여호와께서 미리 알게 하시어 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했습니다.  선지자 아히야는 여로보암의 아내가 변장하고 찾아왔을 때 그 여자를 보지도 않은 채 “여로보암의 처여,  들어오라, 네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인 체 하느뇨?”(왕하 14:6)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알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선지자에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방법은 틀리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순발력을 통하여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삭이 야곱에게 그처럼 속았다는 것은 이삭의 영력이 흐려져 있었기 때문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외면하고 에서에게 축복하려는 고집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리브가에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는 맷세지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할 때 영력이 흐리고 사고가 혼돈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생활 속에서 기쁨과 감동이 어디에서 옵니까?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이삭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려는 사명감은 없고 인간적인 고집만 있었기에 영적 감동이 없었던 것입니다.  설교를 할 때마다 느낍니다만 교인이 많이 모이고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설교자가 먼저 사명의식이 생깁니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뜨겁게 증거가 되고 피차간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아멘을 크게 하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앉으라는 것입니다. 설교 말씀의 결과는 설교를 마친 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하면서 부터 느낌이 옵니다.  이야기는 곧 일을 맡은 자에게 사명감이 생기게 해 주어야 하고, 일 맡은 자가 사명감이 없으면 하나님의 영에 감동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삭이 정작 흐린 것은 시력이 아니라 영성에 문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도 끝나고 아는 것이 아니라 하기 전에 느끼게 되어 있습니다. 얼만 간절함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지 않은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긴 것입니다.
수상한 느낌을 가지면서도 이삭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자기 판단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빛이시며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매사에 그와 의논해야 될 것입니다.

3. 아버지를 속인 야곱의 기질
 약복강가에서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하신 사건을 볼 때 그때까지 야곱은 믿음보다는 기질로 버틴 사람이었음을 추측케 합니다.  야곱과 다윗을 비교 해 보면 다윗은 이미 기름 부음을 받았으면서도 사울 왕을 제거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일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직접 공격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신이 쫓겨 다니면서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런데 야곱은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설령 에서가 축복을 받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할 것이라는 순수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지고는 못 사는 기질, 마음먹은 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장내지 말려는 기질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가 외삼촌 집에서 아내를 구할 때나 부자가 된 것을 볼 때 미루어 짐작이 갑니다. 야곱은 속임수를 써서라도 하나님의 축복을 당장 자기에게 돌려놓으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야곱도 믿음의 조상이 되기에 부적절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를 하나님은 변화시켜 하나님의 예정대로 쓰셨습니다.  그것을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 자세하게 기록해 놓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그 기질을 바꾸시기 위해 피눈물을 흘리는 시련을 당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야곱과 같은 인간이지만 믿음으로 살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이삭의 잘못된 축복
 이삭은 아들을 축복하기 위해 먼저 음식을 먹고 포도주를 마십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회의 먼저하고 식사를 하지만 서양 사람들은 음식을 먹으면서 회의를 합니다.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먹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야곱도 음식을 먹고 기분이 좋아서 가까이 와서 입을 맞추게 했습니다. 축복은 대화와 다릅니다. 축복은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복을 빌어주는 것입니다. 회의와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음식을 먹기 전이 좋습니다. 이삭은 한참 기분이 좋아 감상적(感傷的)인 이야기를 한 후 축복한 내용을 보면 자손의 번성과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한다는 핵심적인 내용은 빠져 버렸습니다.  이 두 가지는 구약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일관된 교훈은?
①하나님의 감동이 우리를 떠나면 혼동이 옵니다
②그리스도인들은 기질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일해야 합니다
③축복을 받기 위하여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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