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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장자의 명분(창25:2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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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868회 작성일 06-05-1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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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명분(창25:27-34)

 우리는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서 성격의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에서는 성격이 굉장히 남성적이고 현재 지향적이었으며 반면 동생 야곱은 성격이 평온하여 안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이었습니다.  물론 어떤 사람의 성격이나 직업만을 가지고 그 사람의 신앙에 대해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성격이나 요건들이 신앙생활에 큰 영향을 주고 또 작용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에서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가정의 통솔권 및 물질적, 영적 축복과 직결된 맏아들이 갖는 각종 상속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에서는 순간적인 흥정에 의해 단지 한 끼의 음식을 얻어먹고자 그 생래적 축복권을 헌신짝 버리듯 야곱에게 넘겨주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나도 감각적, 육욕적으로 물질과 현실에만 집착한 나머지 정작 가장 귀중한 영적 축복을 도외시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경계하는 좋은 실례(實例)가 아닐 수 없습니다. (히12:6)

1. 에서의 문제점
 누구나 에서가 너무도 경솔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에서의 경우가 되었을 때 어떠했을까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배가 고파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아무리 양반이라도 사흘 굶으면 담 넘어 간다는 말도 있습니다. 사냥에서 돌아온 에서에게 구수한 팥죽 냄새가 코를 간지럽힙니다.  너무도 배가 고픈 에서가 한 그릇 먹자고 달려듭니다.  그때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넘겨주는 조건은 팥죽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때 에서는 장자권이 말로 오고 가는 건가? 형은 영원한 형인 것이지!  그래 가져가라고 하지! 우선 배고프니까 먹고 보자고 쉽게 생각하고 약속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문제였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장자의 명분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부심과 긍지가 없었습니다.
장자니까 응당 받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팥죽 한 그릇 먹고 준다고 약속 좀 하기로서니 그게 뭐 대수냐? 우선 배고프니까 먹고 보자는 경솔한 생각이 결국 그의 인생을 실패로 가져 왔고 후회 막급한 통탄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곤비(困憊)했다고 하더라도 나면서부터 받은 그 소중한 축복권을 판 것은 형이기를 포기한 수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29-30  기독교는 약속의 종교입니다.  성경은 예언대로 성취되어 왔고 또 성취되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의 말은 바로 하나님이 보증자이십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팔게 된 동기가 이해는 되지만(32) 약속은 약속입니다.  에서는 명분보다 실리를 더 중요시했고 신앙보다 현실에 치중했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경홀(輕忽)히 여겼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자기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오히려 배설물로 여겼지 않습니까?(빌3:7-8) 에서는 나중에 산수갑산을 갈망정 먹고 보자고 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룟유다가 바로 그랬습니다.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예수와 함께 고난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했습니까?  은 30냥이 자기를 보장해 주지 못했습니다.  세상 것만 믿지만 세상은 신뢰할 만 합니까?
그렇지 못합니다(벧후3:11-13) 미래를 위해 오늘을 절제 못하는 사람. 우선 먹고 보자, 놀고보자, 갖고 보자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의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엄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에서의 문제점을 교훈 삼아야 하겠습니다.

2. 잘 나가던 에서(25-27)
 일단 태중에서부터 에서는 야곱을 이긴 사람이었습니다.  장성한 후 직업도 당시 고대사람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사냥꾼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가장 남성다운 사람이 사냥꾼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목축을 하면서 장막에 거했습니다.(27) 또 종용(慫慂)한 사람이었다고 했습니다. 야곱은 나약했고 잔머리만 쓰는 매사에 소심하고 합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요즈음 같으면 생물학자나 과학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거친 환경과 싸우고 타 부족과 싸우며 개척해 나가야 하던 당시는 별로 인기 없는 남자였던 것입니다. 생김새만 해도 에서는 전신에 털이 복숭복숭 나 있고 날쌔며 예리한 판단력과 순발력이 있는 남성중에 남성다운 사냥꾼이었던 것입니다.  누가 더 잘 나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누구를 더 사랑하셨습니까?  태어나기 전부터 야곱을 택하시기도 하셨지만(창25:23) 야곱은 하나님을 바로 보았고 약속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습관적인 기도의 사람이라기보다 전투적인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창32:24-32) 내성적이며 가정에서 어머니 주위나 맴도는 마마보이처럼 유약하고 무능한 사람 같았지만 외유내강한 끈질긴 의지의 사나이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에 번쩍 뛰고 일시적인 인기는 없었지만 야곱은 실로 강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하시지 않습니다.(삼상16:7) 세상에서 지위가 높아지고 많은 사람의 지지와 인정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과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 해 주시는데에는 그런 것들이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3. 매매(賣買)된 장자의 명분
그런데 이삭의 가정에 먼저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은 남자로서 에서의 남자다운 면과 나아가 거기에 자기의 음식취향에 맞는 고기를 가져오는 사냥군이었기에 에서를 더 편애했다고 했습니다. 또 장자이기에 든든한 마음으로 에서에게 정을 더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여성다움을 더 지닌 야곱을 더 사랑했다고 했습니다. 순하디 순하고 순종하니까 아무래도 여린 어머니 마음이 야곱에게 끌렸던 것입니다.(27-28) 또 태중에 있을 때 주신 말씀이 리브가의 정이 기울게 하기도 했을 것입니다.(23) 그러한 가정의 기류(氣流)는 보이지 않게 경계심과 경쟁심을 가져오게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편애는 단지 그 아이들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후대까지 두고 두고 악영향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교훈 삼게 하는 실례(實例)가 아닌 가 생각합니다. 이제 장자권을 매매한 사실에 관하여 한 번 더 생각 해 봅시다.  어디 장자권이 팔고 살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까?  첫째 사회적 관행으로서 장자권이란 부모의 재산을 배(倍를) 더 상속받을 수 있고 장자는 집안일에 대하여 재판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가족들을 위하여 최후의 축복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당시는 축복도 장차 실현될 재산의 형태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장자권의 영적 의미입니다. 장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고 그래서 그에게 감동과 뜨거움이 있었으며 죄 용서가 있었고 새로워지는 힘이 있었습니다.
대표권과 축복권이 있었습니다.  장자는 이렇게 영적계승자가 되며 그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맥을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이 장자권이야 말로 이처럼 하나님께 선택받은 특별은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자권은 결코 상품처럼 매매될 수 없고 매매 되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허나 본 사건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본인이 원치 않으면 빼앗기고 포기한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특별히 선택된 자들입니다.  엄청난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엡2:8) 에서처럼 그 은총을 경홀히 여기지 맙시다.
야곱처럼 끈질기게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가룟 유다처럼 헐값에 팔아 버리면 안됩니다.(마26:15) 세상 것을 우선하여 천국의 혼인잔치를 멸시하지 맙시다.(마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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