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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두민족의 싸움(창25: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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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5,857회 작성일 06-05-10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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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민족의 싸움(창25:19-26)

 본문은 이삭의 쌍둥이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삭은 결혼 후 20년간 무자(無子)하였습니다.
그러나 기도 후 (21절) 20년 만에 리브가가 임신을 했는데 희귀한 것은 복중에서 두 아이가 싸우므로 걱정이 되어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다고 응답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이삭이 60세에 두 아들 에서와 이삭을 낳았던 것입니다.

1. 기도한 이삭(19-21)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결혼한 이삭의 아내 리브가는 아름답고 이해심 많은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근심거리는 결혼하지 19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들어서지 않았습니다.
그랬을 때 아버지 아브라함은 어떠했습니까?  믿음이 좋았지만 아내 사라의 청을 거절 못하고 하갈을 보아 이스마엘을 낳았었습니다. 이삭도 얼마든지 축첩을 하여 아이를 얻어 보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는 기도했습니다. 아마 아버지의 실수가 대단한 귀감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좋은 쪽으로 교훈을 삼고 실수를 전철로 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조급할수록 하나님께 기도로 도움을 받아 해결해야 완전하고 복된 해결책을 얻게 된다는 교훈을 다시 한번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아내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아내를 위해 기도했던 이삭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실로 겸손하고 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도 시련이 면제된 자는 없습니다.
시련을 이기도록 기도해야 합니다.(약1:2-4)  성경에 보면 기도해서 얻은 아이들과 기도 없이 낳은 아이들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사무엘이나 이삭이 기도하여 낳은 야곱만 보아도 어떻습니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이시지만 기도로 준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방관하는 자세로 있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또 저절로 될 것이라고 믿고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놓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게 하십니다.

2. 뱃속의 두 아들
 하나님은 이삭의 기도를 들으시고 리브가에게 잉태케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속에서 싸우는지라 리브가가 너무도 고통스러워 “이 같으면 내가 어찌 할꼬”하고 하나님께 호수했습니다.  우리들도 이런 일을 당하면 선배나 경험자들을 찾아가 묻고 조언을 받고자 합니다.  그런 점을 본다면 두 부부는 경건한 사람들이요.  기도의 사람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 내용은 어떠했습니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쌍둥이가 잉태한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도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가르침 중에서 바로 가장 비밀스러운 것 중 하나가 예정설입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알고 계셨으며 미리 택하셨습니다.  그런데 잘못 생각하면 화 날 일입니다. 왜 우리 의사는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택하신단 말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이 예정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방법이 아니면 구원받을 사람이 한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 가운데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누구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은 한 평생 말씀으로 찾아오시고 은혜로 설득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어 놓고 맙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은 그가 처음부터 경건했거나 신앙생활을 착실히 했기 때문에 아닙니다.  오직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셨고 그의 죄성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찾아와 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고 예정입니다.  이처럼 예정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열정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은 왜 하나님께서 야곱만 선택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를 선택한 기준이 무엇이며,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主權)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셔야 할 의무나 책임이 전혀 없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구원을 통하여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일부는 버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결정하신 것을 그 누구도 이유 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택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게 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택함 받지 못한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멸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에 제멋대로 삽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경건하게 산 사람들과 결국 차별성이 있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그들은 세상에 누릴 것 다 누렸으나 세상에 끝나야 공평하지 않겠습니까? 야곱과 에서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세상에서 쓰라린 고생을 많이 겪었으며 하나님은 그 야곱을 끊임없이 간섭하셨습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인들은 따지고 보면 얼마나 피곤합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궂은소리 다듣고, 내 돈 헌금하면서 야단은 얼마나 맞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제멋대로 산 사람들과 결코 같이 취급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겠다고 한번 찍은 사람은 끝까지 추격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그렇게 택함 받은 것을 믿으시고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에서와 야곱의 출생(24-26)
 드디어 두 아들이 어머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붉고 전신이 털 많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갖옷 같았다고 했습니다. 마치 짐승인지 사람인지 모를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색깔이 유난히 붉어서 “에서”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생긴 모습 그대로 나중에 그의 생활이 전혀 짐승처럼 통제되지 않은 생활을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결코 말씀으로 길들일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먼저 나오려고 몸부림치다가 에서의 발꿈치를 붙잡고 나왔습니다. 아우는 털이 없이 맨질 맨질했습니다. 형은 우직한데 아우는 약삭빨랐습니다. 에서는 곰 같았고 야곱은 사기꾼 같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어머니 뱃속에서 싸웠으니 리브가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고대인들은 씨름을 자주했는데 씨름 기술 중 상대방의 발꿈치를 잡아 쓰러뜨리는 기술이 있었는데 그것은 상대방을 속이는 의미가 있었답니다. 그래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기 때문에 “야켑”(발꿈치) 곧 “야곱”이라고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야곱을 택하셨기에 그를 변화시키시어 성숙한 믿음의 조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서 중 야곱처럼 우리에게 많은 영적인 교훈과 은혜를 받게 하는 인물도 드뭅니다.
간사한 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되기까지는 엄청난 연단과 시련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것입니다.(엡2:8) 사람은 사람을 절대 못 바꿉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 외에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들 수가 없습니다. 구원의 문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복음을 듣고서도 복음을 업신여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며 자기 욕심대로 사는 사람은 자기의 미련함 때문에 결국 멸망당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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