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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아브라함의 노경과 죽음(창25: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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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회
댓글 0건 조회 6,191회 작성일 06-05-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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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노경과 죽음(창25:1-18)

 본문은 아브라함의 노년의 형편과 그의 죽음에 관한 기사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100세에 낳았고(23:1) 처 사라가 죽을 당시 그의 나이는 137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175세에 죽었으니 사라가 죽은 후 38년을 더 살았고 이삭이 결혼한 뒤 35년간 살았습니다.
이삭이 40세에 결혼했으니(25:20) 아브라함 사망시 이삭의 나이는 75세였던 것입니다.

1. 아브라함의 노경
 아브라함은 7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105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한 셈입니다.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닙니다. 그 기간 동안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참 믿음이 무엇인가를 잘 보여 준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이삭까지 제물로 드리려고 순종했던 사건은 그의 신앙의 극치라고 볼 수 있으니 그래서 성경은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인간인지라 죽음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삭의 신부를 간택할 무렵에 아내가 죽고 그 충격 때문이었는지 몸이 심히 나빴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창24:2-3참조) 그가 건강이 회복되어 재혼까지 하여 후처 그두라에게서 6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같으면 주책없다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인구가 적던 그 시대에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즈음은 축복이란 개념이 외면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삶의 질과 가치를 더 중요시 하지만 그 시절에야 가시적으로 나타나야 사람들이 와! 하고 놀라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감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노년에도 재물과 건강을 보장해 주셨고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게 축복을 확인시켜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즈음은 아무리 젊어서 떵떵거렸던 사람들도 늙어서 이가 빠지면 귀퉁이 방에 치어 앉아 냉대 당합니까?
마치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노부모님들을 공경합시다.  하나님도 복을 주셨지만 노년에 재혼하여 그렇게 자녀들을 많이 둘 수 있었다는 것은 이삭의 부부가 그만큼 잘 해드리고 마음을 편하게 해 드렸다는 사실도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하갈(여종)에게 낳은 이스마엘과 그두라가 낳은 아들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스마엘은 이삭을 낳기 전 얻은 아들이었기에 아브라함에게는 우상 같은 존재였습니다. 또 하갈은 인위적인 방법으로 씨받이 역할을 한 여자였다면 그두라는 사라의 대신인 반려자로 그가 낳은 아들들은 이삭 위에 더하여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아무것도 주지 않고 내쫓았지만 다른 서자들에게는 재물을 주어 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희생만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우리가 누릴 수 있을 만큼 축복도 주십니다.(요10:10)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노경도 외롭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하셨고 자녀의 축복까지 더하여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아브라함의 죽음
 아브라함의 한 생애를 돌아볼 때 성경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지만 역시 그도 인간이었음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는 결코 천사 같은 삶은 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의 뜻을 몰라 방황하기도 했으며 영적 침체에 빠지기도 했는고 의기소침 할 때도 있었습니다.
두려워서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한 때도 있었고(20:2) 인간적으로 염려하여 실수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귀한 것은 인생의 풍운(風雲)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쫓아 살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삶은 노래 가락 같았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길어졌다 짧아졌다 했습니다.  그러한 삶속에서 청아한 음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진정한 믿음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특별한 수학(修學)을 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붙들려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움직이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믿음이 변질되거나 식어지지 아니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심만 믿었습니다.(롬4:19이하) 곧 그의 걸음걸이와 움직있는 그 자체가 믿음의 노래였습니다.  믿음의 삶이란 어떤 것입니까?  별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삶입니다. 그러한 아브라함의 인생 연주가 여기서 끝납니다.  “그가 수(壽)가 높고 나이가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8절) 했습니다.  이것이 죽음 복입니다.  사고사도 아니요, 심히 중병에 시달리다 죽은 것이 아니라 기운이 진(盡)하여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전에 헤 족속에게 4백 세겔이나 주고 사서 사라를 장사지냈던 바로 그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어서 어디로 돌아갔다고 했습니까?(열조에게) 이것이 또한 믿는 자들에게 있어서 멋진 여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신자들만 아는 비밀 코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죽음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신자들은 죽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 신앙의 열조들이 사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세상 자녀들의 죽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3. 이스마엘의 계보가 주는 교훈(12-18)
 (1)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 그 출생이 육신에 속한 자이므로 영적인 장자권을 주지 아니했지만, 그의 출생전의 약속(16:10), 출생 후 약속(21:17)을 신실하게 지켜 열두 방백을 주었습니다.
(2) 이스마엘 자손도 창대 해 졌습니다
 후손이 창성해져서 애굽 앞 술까지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세상의 자녀들도 얼마든지 창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절대 보장을 받지 못하므로 창성했기에 불행해지는 결과를 초래하는 아픔을 봅니다. 이스마엘도 137세에 기운이 진하여 열조에게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에 있는 열조에게 갔겠습니까?(사14:9-20참조)
이와 같이 의인도 악인도 다 죽습니다.  그리고 열조에게로 갑니다.  그러나 종착지는 하늘과 땅 차이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더 낙원과 음부의 차이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 같은 삶을 살다가 아브라함처럼 죽어서 아브라함이 간 곳으로 갑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의 자녀들이십니다.  행여 가정에 불신앙의 씨인 이스마엘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 불신앙의 씨가 우리의 삶속에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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