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멋진 결산(창50: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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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창세기 마지막 말미(末尾)에 도착했습니다. 마치 긴 항해를 마치고 피항에 입항하는 기분입니다. 창세기 전체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인공들을 택하여 구속의 역사를 전개 해 가는 한편의 드라마(Drama)라고 한다면 본문은 그 끝 장면으로 해피앤딩(Happy ending)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과연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이기에 요셉의 삶 자체가 아름답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 드라마라면 아버지 야곱이 죽었으니 이제 2부로 요셉의 멋진 복수극이 기대 됨 즉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전에 형들에게 근심하지 말라고 말했던 그대로(45:5) 과거를 깨끗이 청산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람다운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영화 같았으면 관객들의 감동어린 박수가 쏟아져 나올 수 있는 말미(末尾)가 아닐 수 없습니다.
1. 두려워하는 형들(15-19)
이제 야곱이 죽고 나자 아버지를 여윈 슬픔 대신 형들에게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서는 자기들에게는 구박 당했고, 나중에는 노예로 팔려와 지긋 지긋한 고생을 했을 요셉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불안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당연합니다. 그런 양심이 없다면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 입장에서 갖는 공포심이었고 요셉을 마치 자기들과 같은 인물로 여긴 기우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은 그릇으로 생각하며 오해를 하거나 과소나 과대평가하여 실례나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작은 그릇 같은 형들이었기에 불안을 견딜 수 없어 말을 맞추며 또 거짓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자기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36:5절 이하에서 요셉이 꿈을 꾼 지 얼마만입니까?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했던 그 꿈이 30여년 만에 어김없이 실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복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성경에서 그러한 사례를 몇 군데 찾아보십시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에서는 호시탐탐 야곱을 죽이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이 장수하여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사사기 9장에도 보면 첩의 소생이었던 아비멜렉이 평상시 본처의 아들들에게 설움을 많이 당했는데 아버지 기드온이 사망하자 오브라에 있는 아비 집에 가서 형제 70인을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된 기록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내면에 이러한 악성을 고려 해 볼 때 요셉도 충분히 복수 할 가능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과거에 지은 죄에 발목이 잡혀 불안한 세월을 살아 왔었습니다. 사람의 과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문득문득 꿈에라도 악몽을 꾸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영적 자극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겉 사람도 건강해야 하지만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겉 사람은 후폐해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고전4:16) 내면이 건강한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이며 결정적인 순간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위기 때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을 보면 진보가 없거나 느립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비로소 자신의 속이 병든 줄을 알고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금 얼마나 요셉의 후의(厚意) 가운데 혜택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까?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해 주면 잘 해 줄수록 더욱 불안하고 항상 위기 의식속에 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진 사람은 일이 잘 되고 형통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항상 악몽에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2. 과거를 청산하는 요셉(17절하-21)
요셉은 형들의 그러한 말을 듣고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고 곡해할 때 섭섭할 정도가 아니라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요셉은 그들에게 얼마나 잘 해 주었습니까? 우리 같으면 아마 그러한 형들이 야속하여 화를 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의 마음 때문에 가슴이 아파 울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형들이 친히 와서 엎드려 종이 되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19하)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은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하려 자기를 먼저 보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요셉 자신이 용서하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 두려워 마소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위로 했습니다. 요셉은 벌써 그들의 자녀 문제까지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시대를 앞서 갑니다.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도 마음이 평안하고 남도 용서하게 됩니다. 형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에 그 동안 얼마나 불안한 세월을 살았습니까? 막상 노예생활을 한 요셉은 편했으나 그들은 요셉을 만난 후에도 행복하기 보다는 더 괴로웠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좋은 세상에서 항상 불안과 초조 속에 떨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큰 죄를 짓고 잊으려고 술과 마약을 하며 자기 뿐 아니라 남까지 괴롭히는 지옥 같은 인생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고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실수해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그것을 바꾸어 결국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실수해도 너무 괴로워 마시고, 다른 사람의 허물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실수를 마구하거나 죄를 지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범죄(故犯罪)는 죄가를 치룬다는 것도 아시기 바랍니다.
3. 요셉의 죽음과 유언(22-26)
예수님을 예표하는 구약 중의 손꼽이는 인물이었던 요셉은 애굽 땅에서 일백 십세의 일기를 마치고 조용히 소천 하였습니다.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80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살았고 4대까지 보았습니다. 주후 1세기경 구약시대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히브리서11장중에 믿음의 영웅들 중에 성령님은 단연 요셉을 추천했습니다.(히11:22) 요셉의 믿음은 역시 하나님의 계약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창50:24) 그래서 히11장에도 임종시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하였고 지기 해골도 메고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죽었지만 그의 신앙생활의 향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풍겨오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기를 너희가 400년간 객이 되리라(창15:13)는 말씀이 있었음을 믿고 기한이 차면 반드시 돌아갈 것을 믿었기에 출애굽 때 이장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세상을 산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극심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었고 만민을 살리는 홍복(弘福)을 끼쳤던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그립습니다. 작지만 나 먼저 그 믿음을 전수받아 우리 서로 간에 영향을 끼치고 어두운 이 사회에 빛을 비춥시다. 맡기고 평안 합시다. 세상에 기준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 합시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 요셉의 기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도 신앙 안에서 매사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 땅으로 돌아갈 꿈과 비전을 가지고 힘차게 신앙의 행군을 멈추지 맙시다.
1. 두려워하는 형들(15-19)
이제 야곱이 죽고 나자 아버지를 여윈 슬픔 대신 형들에게는 두려움이 몰려 왔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려서는 자기들에게는 구박 당했고, 나중에는 노예로 팔려와 지긋 지긋한 고생을 했을 요셉이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그들은 불안해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런 생각은 당연합니다. 그런 양심이 없다면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기들 입장에서 갖는 공포심이었고 요셉을 마치 자기들과 같은 인물로 여긴 기우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을 자기와 같은 그릇으로 생각하며 오해를 하거나 과소나 과대평가하여 실례나 실수를 범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작은 그릇 같은 형들이었기에 불안을 견딜 수 없어 말을 맞추며 또 거짓 시나리오를 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요셉에게 자기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하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36:5절 이하에서 요셉이 꿈을 꾼 지 얼마만입니까?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 절했던 그 꿈이 30여년 만에 어김없이 실현되는 장면이었습니다. 복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성경에서 그러한 사례를 몇 군데 찾아보십시다. 에서와 야곱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에서는 호시탐탐 야곱을 죽이려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이삭이 장수하여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사사기 9장에도 보면 첩의 소생이었던 아비멜렉이 평상시 본처의 아들들에게 설움을 많이 당했는데 아버지 기드온이 사망하자 오브라에 있는 아비 집에 가서 형제 70인을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된 기록이 있습니다. 인간들의 내면에 이러한 악성을 고려 해 볼 때 요셉도 충분히 복수 할 가능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과거에 지은 죄에 발목이 잡혀 불안한 세월을 살아 왔었습니다. 사람의 과거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잠재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불안하고 문득문득 꿈에라도 악몽을 꾸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일종의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영적 자극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겉 사람도 건강해야 하지만 영혼이 건강해야 합니다. 겉 사람은 후폐해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야 합니다.(고전4:16) 내면이 건강한 사람은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긍정적이며 결정적인 순간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위기 때 책임을 질 줄 아는 것입니다. 사람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사람을 보면 진보가 없거나 느립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비로소 자신의 속이 병든 줄을 알고 고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지금 얼마나 요셉의 후의(厚意) 가운데 혜택을 많이 받고 있었습니까?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상처가 치료되지 않았기 때문에 잘해 주면 잘 해 줄수록 더욱 불안하고 항상 위기 의식속에 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진 사람은 일이 잘 되고 형통해도 그러면 그럴수록 항상 악몽에 시달리게 되어 있습니다.
2. 과거를 청산하는 요셉(17절하-21)
요셉은 형들의 그러한 말을 듣고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진심을 몰라주고 곡해할 때 섭섭할 정도가 아니라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요셉은 그들에게 얼마나 잘 해 주었습니까? 우리 같으면 아마 그러한 형들이 야속하여 화를 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요셉은 두려워하는 형들의 마음 때문에 가슴이 아파 울어버렸다고 했습니다. 형들이 친히 와서 엎드려 종이 되겠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19하) 형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은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하려 자기를 먼저 보내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요셉 자신이 용서하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절대 두려워 마소서,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고 위로 했습니다. 요셉은 벌써 그들의 자녀 문제까지 책임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시대를 앞서 갑니다. 미래를 예측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언제나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도 마음이 평안하고 남도 용서하게 됩니다. 형들은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에 그 동안 얼마나 불안한 세월을 살았습니까? 막상 노예생활을 한 요셉은 편했으나 그들은 요셉을 만난 후에도 행복하기 보다는 더 괴로웠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면 행복하고 즐겁게 살아야 할 좋은 세상에서 항상 불안과 초조 속에 떨며 살게 됩니다. 그래서 더 큰 죄를 짓고 잊으려고 술과 마약을 하며 자기 뿐 아니라 남까지 괴롭히는 지옥 같은 인생을 살고 마는 것입니다. 요셉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이고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는 실수해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람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실수하고 잘못해도 그것을 바꾸어 결국 선을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실수해도 너무 괴로워 마시고, 다른 사람의 허물도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실수를 마구하거나 죄를 지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범죄(故犯罪)는 죄가를 치룬다는 것도 아시기 바랍니다.
3. 요셉의 죽음과 유언(22-26)
예수님을 예표하는 구약 중의 손꼽이는 인물이었던 요셉은 애굽 땅에서 일백 십세의 일기를 마치고 조용히 소천 하였습니다.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어 80년 동안 총리직을 수행하며 살았고 4대까지 보았습니다. 주후 1세기경 구약시대 하나님의 구속사를 기록한 히브리서11장중에 믿음의 영웅들 중에 성령님은 단연 요셉을 추천했습니다.(히11:22) 요셉의 믿음은 역시 하나님의 계약에 대한 확신이 있었습니다. (창50:24) 그래서 히11장에도 임종시에도 이스라엘 자손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갈 것을 당부하였고 지기 해골도 메고 올라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죽었지만 그의 신앙생활의 향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풍겨오고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증조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기를 너희가 400년간 객이 되리라(창15:13)는 말씀이 있었음을 믿고 기한이 차면 반드시 돌아갈 것을 믿었기에 출애굽 때 이장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세상을 산 사람입니다. 그랬기에 극심한 고난도 극복할 수 있었고 만민을 살리는 홍복(弘福)을 끼쳤던 사람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한 믿음의 사람이 그립습니다. 작지만 나 먼저 그 믿음을 전수받아 우리 서로 간에 영향을 끼치고 어두운 이 사회에 빛을 비춥시다. 맡기고 평안 합시다. 세상에 기준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고 평안 합시다. 이렇게 해서 창세기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인물 요셉의 기사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우리도 신앙 안에서 매사에 유종의 미를 거두는 사람들이 됩시다.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새하늘과 새 땅으로 돌아갈 꿈과 비전을 가지고 힘차게 신앙의 행군을 멈추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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